이번 수사는 ‘가짜 마스크 같다’는 소비자 신고 덕분에 이뤄질 수 있었지만, 암암리에 불법적으로 생산된 마스크가 더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 그나마 수사당국 관계자는 “무허가 마스크 업계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시작한 지는 꽤 됐다. 이제 하나씩 수사 성과가 나오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최근 가짜 마스크 1000만 장 이상을 정식 보건용 마스크(KF-94)인 것처럼 속여 판매한 일당을 적발해, 업체 대표를 구속하고 관련 일당 4명을 불구속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식약처가 적발한 가짜 마스크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업계에서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최근에는 마스크 공급 과잉으로 시중에서는 보건용 마스크 가격이 300원 아래까지 떨어지는 등 기형적인 상황도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불과 5~6개월 전만 해도 마스크 대란을 이유로 정부가 공적 마스크 매입 비중을 의무화하고 가격도 후려치기를 했던 터라, 업계는 불만이 적지 않다.
#마스크 대란 틈 타 ‘불법’ 횡행
식약처가 약사법 위반 혐의로 무허가 보건용 마스크 제조·판매 업체 대표를 구속한 것은 10월 중순이다. 이들 일당은 6월부터 10월까지 약 4개월 동안 보건용 마스크 1002만 장(시가 40억 원 상당)을 제조했고 이 가운데 402만 장을 유통·판매한 혐의다. 하지만 이들이 만든 것은 공인되지 않은 마스크였다.
원래 보건용 마스크는 정부에서 허가한 공장에서만 생산을 할 수 있는데, 이들 일당은 허가받지 않은 공장에서 마스크를 대량으로 생산한 뒤 이미 허가를 받은 업체들의 마스크 포장지를 공급받아 포장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무허가 KF-94 마스크를 제조했다. 시중에 유통되지 않은 600만 장에 대해서는 식약처가 현재 추적 중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적발한 마스크. 사진=식약처 제공
이번 수사를 지켜본 마스크 업계 관계자들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지적한다. 이번 사건의 경우 구매한 마스크가 가짜인 것 같다는 소비자의 신고로 수사가 진행된 것일 뿐, 암암리에 무허가 보건용 마스크가 시중에 유통된 사례가 훨신 더 많을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마스크업계 관계자는 “올해 초 마스크 품귀 현상이 벌어졌을 때 일부 마스크 제조 공장들은 이미 확보한 필터의 마스크 1장당 사용량을 줄인다거나, 불법으로 수입한 필터를 통해 마스크를 제조하는 방식으로 가짜 마스크를 시중에 유통시켰다고 들었다”며 “당시 정부가 마스크 공적 매입 등으로 단가를 낮추는 상황에서 수익을 보기 위해 불법을 저지른 생산, 유통업자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실제 코로나19 유행을 틈타 벌크 마스크를 불법 유통해 차익을 남긴 일당이 9월 중순, 서울중앙지법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기도 했다. 이들은 코로나19 유행으로 의약외품인 보건용 마스크 가격이 폭등하자 마스크 제조업체 운영자로부터 의약외품의 명칭, 제조번호, 사용기한 등이 표시되지 않은 일명 벌크 상태의 보건용 마스크 60만 장을 3억 6000만 원에 매수해, 비싼 가격에 재판매한 혐의로 기소됐다.
현행법은 의약외품을 판매하는 경우 약사법에서 정한 명칭, 제조업자 등 사항이 기재되지 않은 물품의 판매를 금지하고 있는데, 마스크도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법원은 일당 2명에게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징역 5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식약처는 특별사법경찰을 활용해 올해 초 마스크 대란 당시 불법적인 수익 창출 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마스크는 필터부터 생산까지, 모두 정부의 허가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 제품이라서 허가받지 않고 보건용 마스크를 불법 제조·판매하는 행위나 수입 제품을 국산인 것처럼 속여 파는 행위 모두 처벌이 가능하다”며 “구체적인 수사 성과들을 말해줄 수는 없지만 마스크 관련된 수사가 식약처 주도 하에 계속 진행 중이고, 구속자가 추가로 나올 만큼 진척된 사건도 있다”고 덧붙였다.
#떨어진 가격에 업계 ‘볼멘소리’
마스크 대란일 때는 필터 등 핵심 원료가 부족해 생산하지 못했던 보건용 마스크 공장들이 이제는 ‘공급 과잉’으로 가동을 멈추는 상황이 됐다. 업계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가격이 올랐을 때는 통제하더니, 이제는 공급이 늘어 생산 비용을 맞추기 힘든 상황까지 왔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국내 전체 마스크 생산량은 10월 4주 차 기준, 1억 7000만여 개 수준까지 급증했다. 공적 마스크 제도는 7월 폐지됐는데 당시보다 생산량이 50% 이상 늘었다. 마스크 대란이 한창이었던 3월 초에 비교하면 3배 가까이 급증한 수치다. 마스크 사업에 진출한 기업들이 적지 않은 데다,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 마스크 유입까지 겹치면서 시중 판매가는 급락했다.
마스크 대란이 한창이던 때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박정훈 기자
식약처 인증을 받은 보건용 마스크(KF-80·KF-94)가 일부 온라인 쇼핑몰에서 장당 3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판매되기도 했다. ‘마스크 대란’이 한창이던 2~3월에는 온라인 평균 판매가격이 개당 4000원대였던 것이 4월 3000원대, 5~6월 2000원대, 7~9월에는 1000원 초반대로 낮아졌다. 그리고 10월 3주차에는 식약처 기준으로, 장당 평균 가격이 처음으로 900원대로 내려앉았다.
마스크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초반 생산 및 유통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해외 수출을 엄격히 금지하면서 기존 거래처들이 떨어져 나갔고, 지금은 거래가 가능하다고 해도 해외 출장이 제한되는 상황이라서 그마저도 쉽지 않아졌다”며 “코로나19가 1년 가까이 영향을 주면서 전세계적으로 마스크가 품귀인 곳도 줄어드는 만큼 가격도 낮아져 이제는 생산 원가를 맞추기도 힘든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