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스모 선수가 두른 천에 야마구치파 6대 보스인 시노부(司忍)에서 따온 인(忍) 자가 쓰여 있다. 사진출처=주간포스트 |
스모계를 잘 아는 관계자들은 스모선수들이 야쿠자가 벌이는 도박에 연루된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한다. 일본 간사이에 있는 야쿠자 간부는 “현역 선수들뿐 아니라 전 요코즈나와 이사회 사람들도 야구도박을 즐겨 한다. 조직의 관계자들과 함께 여행을 가서 도박을 하기도 하고, 부부가 함께 참가하는 경우도 있다. 야구도박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야구도박은 옛날부터 야쿠자의 자금원으로 이용되어 왔다. 야쿠자 정보에 밝은 일본의 저널리스트는 “60년대부터 간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해, 80년대에는 전국적으로 퍼져갔다. 지금도 한 시합에 수천만 엔에서 억 엔 단위의 돈이 오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박이 이뤄지는 방식은 단순히 어느 쪽이 이길까 질까에 돈을 거는 것이 아니다. 강한 팀에는 핸디캡을 걸어 양쪽의 승패를 가늠해야 하는 것이 게임의 룰이다. 예를 들어 일본 야구 정상권 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한신 타이거즈의 시합이 있다고 하자. 자이언츠에서 에이스를 선발투수로 등판시킨다고 하면 보통 자이언츠 승리가 불 보듯 뻔한 게임이 된다. 하지만 거기에 자이언츠에 핸디캡을 2점 얹어 자이언츠가 3점 이상의 점수차를 내서 이기지 않으면 패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핸디캡을 결정하는 것은 핸디사(핸디캡의 줄임말에 사(師)를 붙인 것)라고 불리는 프로가 담당한다. 핸디사는 그날의 선발뿐 아니라 모든 정보를 총동원해서 핸디캡 점수를 정한다. 야쿠자 관계자는 “핸디캡은 시합 당일 오후 12시쯤 야쿠자 조직원을 통해 휴대전화 문자로 보내진다. 그걸 바탕으로 선수들이 오후 2시까지 돈을 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야구도박은 최저 3경기 이상 참가해야 하며 내기에 건 금액은 매주 월요일에 지불하는 것이 원칙이다. 내기에 거는 금액은 1만 엔부터 수백만 엔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며 참여하는 사람도 기업인, 운동선수, 연예인 등 다양하다. 내기 대상이 되는 시합은 프로리그는 물론이고 고교야구까지 해당된다. 도박자금을 실질적으로 결산하는 곳은 간사이에 있는 야쿠자다.
스모계가 야구도박에 빠져든 것은 야쿠자와 맺어진 오랜 관계에서 시작된다. 한 스모 관계자는 “옛날 스모 지방순업(스모의 흥행이나 수익을 위해 경기가 없는 날 선수들이 지방을 순회하며 이벤트 등을 하는 것)은 지방 실세들이나 야쿠자가 돈을 전액 지원해주기도 했다. 선수들이 묵는 숙박비와 식사비까지 뒤에서 대주는 대신 지방순업의 이익을 챙겨 갔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히 간사이 쪽의 지방순업은 야쿠자의 주요 수익원이 되었다. 84년부터 3년 연속으로 개최된 후쿠오카의 지방순업은 스모계와 폭력단이 밀접한 관계를 맺는 계기가 됐는데, 조직 관계자들이 스모 선수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문제가 커지지 않도록 뒤를 봐주면서 그들의 관계는 더욱 은밀하고 깊어져 갔다”고 말했다.
물론 스모선수들이 원래부터 도박에 약하다는 말들도 있다. 한 스모 관계자는 “선수들의 승부사 기질 때문인지 뭐든지 내기를 하려고 한다. 시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역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이 여잔지 남잔지에 수십만 엔을 거는 것도 봤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암암리에 유지되던 그들의 관계가 일본 사회에 큰 파장을 몰고 온 사건이 벌어졌다. 작년 7월, 나고야바쇼에서 유지원석에 앉아 관람하고 있는 홍도회(야마구치파에 속한 조직 폭력단의 이름)의 간부들의 모습이 NHK스모중계에 비춰진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15일간 약 50여 명의 야쿠자들이 관전했다고 한다. 유지원석은 스모협회에 일정의 금액을 기부하고 얻는 특별좌석을 말한다. 그런 유지원석을 야쿠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모습은 일본 사회에 충격을 몰고 왔다.
▲ 선수들이 돈을 걸기 전 양팀 간의 핸디캡을 정해 문자로 전송했다. |
검찰이 야쿠자 티켓의 입수루트를 조사한 결과 떠오른 자는 스모 지도자, 일명 오야카타로 활동하던 기세라는 인물이었다.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며 기세 오야카타는 협회의 처분을 받았고 지도자 선출 규칙도 더욱 엄격하게 개정되었다.
간사이에 있는 기세 오야카타의 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기세가 “나는 홍도회와 연결망이 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전화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게다가 내 운전사는 조직의 막내”라며 자랑하듯이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후원회 멤버들이 모인 음식점 밖에서는 아직 어린 나이의 야쿠자 조직원이 차에서 오야카타를 기다리는 모습을 간혹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기세 오야카타는 그에게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는 “기세오야카타의 선수가 게쇼마와시(스모 경기 의식 때 선수가 두르는 천)를 두른 사진이었다. 게쇼마와시에 쓰인 ‘인(忍)’은 야마구치파 6대 오야분(보스)인 시노부(司忍)에서 따온 한자”라고 말했다.
스모계와 야쿠자 사이의 유착 관계를 드러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1996년 전 오나루토 오야카타는 스모계와 야쿠자의 유착과 경기조작 등을 일본 대중지 <주간포스트>에 고발했다. 이어서 스모계를 폭로한 책도 출판해 스모계를 동요시켰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려 했던 그는 돌연 급사했다. 한 전문 스포츠 기자는 “그를 협력했던 한 남성도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급사했다. 결국 병사로 사건이 마무리됐지만 시기가 시기였던 만큼 모두가 조직의 짓이라며 공포에 떨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김지혜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