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BS ‘미운우리새끼’에서 김준호는 후배 개그맨들과 대화하던 도중 “이제 개그맨이라는 말이 없어질 거야. 기수 이런 게 없으니까”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미운우리새끼’ 방송 화면 캡처
#박지선 비보로 울음바다
그렇지 않아도 우울한 개그계에 충격적인 비보가 들려왔다. 바로 개그우먼 박지선 모녀의 사망 소식이다. 2007년 KBS 22기 공채 출신인 고 박지선은 KBS ‘개그콘서트’와 ‘폭소클럽 2’ KBS Joy ‘엔터 뉴스 연예부’ 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등의 방송을 통해 큰 사랑을 받았던 개그우먼이다.
개그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언론을 통해 비보가 전해질 무렵 라디오 생방송을 진행 중이던 안영미는 휴대폰으로 사망 소식을 접한 뒤 눈물을 흘리며 더 이상 방송 진행을 이어가지 못해 게스트들이 방송을 마무리했다. 다음 날인 3일 MBC 라디오국은 ‘두시의 데이트 뮤지, 안영미입니다’는 뮤지의 단독 진행,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는 가수 행주가 대신 진행을 맡는 방식으로 배려해줬다. 고인의 친한 동료 개그우먼인 안영미와 김신영이 너무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익명을 부탁한 한 KBS 공채 개그맨은 “장례식장 분위기야 어디든 비슷하겠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더 침울하다. 평소 개그맨들은 장례식장에서도 유가족과 조문객이 조금이라도 힘을 낼 수 있도록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편인데 이번에는 그냥 모두가 울었다”라며 “워낙 충격적인 사망 소식인 데다 고인의 평소 아픔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요즘 개그계가 워낙 슬픈 분위기이기도 했다”고 빈소 분위기를 전했다.
개그우먼 박지선과 모친의 빈소가 11월 2일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화장실 몰카 사건
‘미운우리새끼’ 방송 내용에서 언급됐듯 개그맨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KBS 개그맨 공채의 중단이다. 1990년대 중후반 들어 기존 코미디 프로그램의 인기가 꺾이며 위기를 겪은 개그계는 1999년 KBS ‘개그콘서트(개콘)’와 함께 화려하게 부활했다. 2003년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이 방송을 시작하며 2000년대 중반 개그계는 최고의 호황을 맞았다. 대학로 소극장과 연계돼 수익 구조도 탄탄했고 매년 방송사 공채를 통해 인기 개그맨들이 꾸준히 배출됐다. 기존 공채 개그맨들이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 진출해 큰 인기를 얻으면 다시 새로운 공채 개그맨이 그 공백을 메우는 선순환 구조였다.
SBS ‘웃찾사’의 인기가 시들해지며 개그계가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개콘’은 꾸준한 인기를 유지했고 KBS 개그맨 공채는 확실한 개그맨 등용문으로 자리잡았다. 그렇지만 거듭되는 시청률 하락으로 결국 ‘개콘’마저 폐지됐다. 1982년 1기 공채 선발 이후 매년 신입 개그맨을 뽑은 KBS는 ‘개콘’의 시청률 하락으로 인해 2016년 31기부터는 2년에 한 번씩 공채를 하기로 했다. 2018년에 32기 공채가 있었고 2020년 상반기 33기 공채가 이뤄질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잠정 연기됐다. 지금은 “기수 이런 게 없으니까”라는 김준호의 말처럼 개그맨은 물론 방송인의 요람이던 KBS 개그맨 공채가 아예 폐지되는 분위기다.
‘개콘’이 폐지됐음에도 개그계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오랜 기간 ‘개콘’이 KBS의 일요일 황금시간대에 자리를 지켰다면 토요일 황금시간대는 ‘연예가중계’의 몫이었다. 두 프로그램 모두 시청률 하락으로 다른 요일로 편성이 옮겨졌고 ‘연예가중계’가 먼저 지난해 11월 폐지됐다. 방송 36년여 만이다. 그렇지만 ‘연예가중계’는 지난 7월 ‘연중 라이브’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1박 2일’ 역시 폐지 수순에 돌입했지만 휴식기를 거쳐 다시 부활했다. 방송 21년여 만인 지난 5월 폐지된 ‘개콘’ 역시 정확히는 ‘폐지’가 아닌 ‘잠정 휴식’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방청객 없이 극장식 개그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부활도 충분히 가능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치명적인 악재가 터지고 말았다. 바로 KBS 화장실 몰카 사건이다. 그것도 ‘개콘’ 마지막 방송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이런 사건이 터졌다. 범인은 KBS 공채 32기 개그맨 박대승으로 최근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32기면 KBS 개그맨 막내 기수다. 게다가 화장실 몰카 사건이 ‘공채 개그맨은 KBS 직원이냐 아니냐’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결국 이 사건은 KBS 내에서 개그맨 공채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좋은 명분이 되고 말았다. 아직 개그맨 공채 폐지가 확정되진 않았지만 앞서 홍인규와 김준호의 대화처럼 개그계에선 이미 폐지가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6월 3일 진행된 마지막 녹화로 KBS 2TV ‘개그콘서트’가 막을 내렸다. 예정됐던 KBS 개그맨 공채도 잠정 중단된 상황이다. 사진=양상국 페이스북
#옵티머스 사태와도 연결돼
최근에는 옵티머스 사태까지 개그계에서 작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옵티머스자산운용의 로비스트로 지목된 신 아무개 씨가 개그계와 연관된 인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연예기획사 전 대표로 알려진 신 씨는 과거 유명 개그맨들이 다수 소속된 연예기획사 대표였으며 개그맨들을 선거유세 현장에 동원하며 정치권 등에 인맥을 갖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신 씨는 당시 스타밸리라는 연예기획사의 대표였는데 이 회사는 ‘개콘’은 물론이고 ‘웃찾사’와도 깊게 연관돼 있다. ‘개콘’ 초기 멤버의 상당수가 스타밸리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소위 ‘심현섭 라인’이라 불리던 이들이 스타밸리 소속이었는데 현재 개그계를 주도하는 김준호와 김대희도 스타밸리 소속이었다. 박준형 등 갈갈이 패밀리를 앞세운 박승대의 스마일매니아가 ‘개콘’을 장악하면서 2003년 스타밸리 소속 개그맨들이 ‘개콘’을 떠났다. 이후 이들은 2003년 방송을 시작한 SBS ‘웃찾사’에 합류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고 2004년 즈음 스타밸리라는 회사는 연예계에서 사라졌다. 이렇게 ‘심현섭 라인’이 몰락한 뒤 박승대로부터 독립해 ‘개콘’을 장악한 ‘박준형 라인’과 ‘웃찾사’로 자리를 옮긴 ‘박승대 라인’, 그리고 ‘컬투 라인’이 개그계를 3분하며 최전성기를 맞게 됐다.
신 씨는 2004년 즈음 개그계를 떠나 요즘 연예관계자들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스타밸리라는 회사로 ‘개콘’을 장악했던 시절에도 ‘개그맨 매니지먼트 기획사’는 낯선 회사였던 터라 당시 연예계에 있던 관계자들도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많은 이들이 최초의 개그맨 매니지먼트 기획사로 박승대의 스마일매니아를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잊힌 1세대 개그맨 매니지먼트 기획사였다.
그렇지만 개그계와 밀접한 인물이었던 것은 분명한 데다 요즘 ‘개버지’라고 불리는 김준호가 소속돼 있던 회사이기도 했다. 신 씨와 김준호가 최근까지 인연을 맺어 왔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신 씨가 당시 소속 개그맨을 선거유세에 동원하며 정치권 인맥을 다지게 됐다고 알려진 터라 행여 그 파장이 개그계까지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