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3일 현대·기아자동차 남양연구소와 싱가포르 서부 주롱 지역의 주롱 타운홀에서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 기공식을 개최했다. 왼쪽부터 베 스완 진 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장, 안영집 주싱가포르 한국대사,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에릭 테오 주한 싱가포르대사. 사진=현대차그룹 제공
현대차는 지난 10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에 속도가 불을 전망이다. 도심항공교통(UAM), 자율주행, 모빌리티 서비스 등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 연간 20조 원을 투자한다. 향후 5년간 총 100조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GS그룹은 GS칼텍스를 중점으로 모빌리티 사업을 육성하고 있다. 2018년 350억 원을 투자해 롯데렌탈 지분 10%를 인수해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주유소는 전기차·수소차 충전, 카셰어링, 드론·로봇 배송 등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 제공 거점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SK텔레콤은 오는 12월 말 물적분할해 ‘티맵모빌리티주식회사’를 모빌리티 전문기업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티맵을 중심으로 모빌리티 플랫폼 사업을 확장하고 수익을 꾀하는 것이 목표다. 택시부터 주차장, 자동차 판매, 차량 구독서비스, 주유, 보험영업 등이 핵심 모빌리티 사업이다. 우선 카카오모빌리티가 독점하고 있는 택시호출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우버와 협력해 내년 상반기 택시호출 등의 공동 사업을 위한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기로 했다. 우버는 JV에 1억 달러 이상을, 티맵모빌리티에는 약 50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도 밝혔다. 지분율은 우버가 51%, SK텔레콤이 49%다.
SK텔레콤은 티맵모빌리티주식회를 전문기업으로 키우고자 12월 말 물적분할을 할 예정이다. 사진=임준선 기자
미래 시장을 위한 청사진을 앞다퉈 내놓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들의 첫 도전은 중고차 시장이 될 전망이다. 계열사나 지분 투자를 한 기업 간 경쟁 구도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 10월 8일 현대차가 국정감사에서 중고차 진출을 공식화하자 기업들이 잇따라 진출을 선언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부터 중고차 시장 진출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중고차 사업을 맡을 계열사로는 현대글로비스가 꼽힌다. 국내 최대 규모의 중고차 경매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중고차 거래 온라인 플랫폼 ‘오토벨’을 운영 중이다.
GS그룹은 렉서스 딜러사인 센트럴모터스를 통해 진출을 공식화했다. 렉서스는 인증 중고차 사업뿐만 아니라 중고차의 해외 수출 사업까지 나설 것으로 전해진다.
SK그룹은 아직 진출을 공식화하진 않았지만 계열사별로 이미 중고차 유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4월 SK텔레콤은 중고차 시세 조회와 매매까지 할 수 있는 ‘패스 자동차’ 서비스를 출시했다. 렌털·모빌리티로의 전환을 마무리했다는 평가를 받는 SK네트웍스와 협업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2018년 SK네트웍스는 SK텔레콤과 함께 사물인터넷(IoT) 전용망과 커넥티드카 플랫폼을 활용한 신규 렌터카 관리 서비스 개발에 나서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렌터카 시장에서 발생하는 중고차 시장 주도권 싸움이 예상된다. 렌터카 기업들은 일정 연수가 지난 렌터카를 직접 판매하면서 처분 차량의 가치를 높여 이익을 꾀하고 있다. 실제 올 상반기 SK렌터카의 중고차 매매 매출은 1360억 원으로 지난해 840억 원보다 61.9% 늘었다. 전체 매출에서는 32.2%를 차지한다. 지난해 롯데렌탈의 중고차 매매 매출은 1650억 원으로 전체 매출에서 25.7%를 차지했다. 올해 1~8월 중고차 매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5% 증가했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의 중고차 진출이 본격화될 경우, 관련 시장을 두고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현대차그룹 내에서 렌터카는 현대캐피탈이, 중고차 매매업은 현대글로비스가 각각 맡고 있다. 현대글로비스가 현대캐피탈의 렌터카를 도·소매로 판매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인증 중고차를 통해 물량을 확대하고 소매로 물량을 소화해내면 SK렌터카 매출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GS칼텍스가 2대 주주로 있는 롯데렌탈도 영향권이다.
이와 관련, SK렌터카 관계자는 “아직 중고차 사업에 대한 협업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B2B 중고차 매매업을 하고는 있지만, B2C 거래를 위한 매장도 확보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고차 해외 수출을 두고서는 현대차와 GS가 다툴 전망이다. 최근 현대글로비스는 수출을 위한 중고차 매입에 나서고 있다. 중고차 수출업계 관계자는 “최근 현대차에서 수출 차량 매입에 나서면 타격을 입고 있다”며 “공식적으로 중고차 수출업체에 제안서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허창수 GS그룹 명예회장 등 GS 오너일가들이 지분을 보유한 렉서스 딜러사인 센트럴모터스가 중고차 매매업과 해외 수출에 나서고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타워. 사진=이종현 기자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한다고 해서 우위를 점할지는 낙관할 수 없다. 기존 중고차 업체는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기용하고 네이버와 손잡으며 고객 잡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 10월 15일 엔카와 케이카, AJ셀카 등 중고차 업체들은 네이버와 협력해 내 차 시세 정보 조회 서비스 ‘마이카’를 오픈하고 대기업의 공략에 맞불을 놓고 있다.
중고차매매업계는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반대하는 시위와 집회를 열고 있다. 최근엔 단식투쟁까지 들어갔다. 정비업계, 자동차 수출입업계 등까지 힘을 합쳐 반대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관계자는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연달아 진출하면 매매업뿐만 아니라 정비, 해외수출 등의 연합회도 투쟁에 나설 것”이라며 “최근 현대차에서 수출 차량 매입에 나서면 타격을 입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상생협력안을 말하고 있지만, 대기업과의 논의만 진행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