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이 지난 10월 30일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배터리사업부문 물적분할을 확정했다. 기존 사업부문의 성장을 통해 ‘지주사 디스카운트’ 우려를 넘어서야 한다는 과제가 남았다. LG화학 본사가 위치한 서울 영의도 LG트윈타워 전경. 사진=박은숙 기자
#배터리 분사 득실은…
LG화학 개인주주들은 지난 9월 17일 전지사업부문 물적분할 계획이 발표되자 “LG화학이 앙꼬 없는 찐빵이 될 것”이라며 불만을 쏟아냈다. 물적분할로 인해 지분 가치가 희석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대됐다. 국민연금도 반대표를 던지며 ‘지주사 디스카운트’를 우려했다. 지주사(모회사) 디스카운트는 지주회사와 자회사가 모두 증권시장에 상장돼 있을 경우 지주회사가 보유한 자회사 지분 가치가 낮게 평가돼 지주회사 주가가 기업가치보다 저평가되는 현상을 뜻한다(관련기사 LG화학 물적분할, 개미들 어깨만 무거워진다?).
LG화학은 지난 10월 12일 최초로 잠정 실적을 발표하며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알렸고, 14일에는 배당 확대 계획도 공시했다. 그러나 주주들의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는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주총 당일인 10월 30일 LG화학 주가는 전일 대비 6.14% 급락했고, 지난 2일에는 장중 한때 60만 원선 아래로 떨어졌다 회복하기도 했다.
LG화학은 전지사업부문 분사로 재무부담이 줄어든 만큼 다른 기존 사업부들이 자체적으로 창출되는 현금의 재투자를 통해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방침이다. LG화학은 현재 석유화학사업과 첨단소재사업, 생명과학사업, 전지사업 등 4개 사업본부로 이뤄져 있다. 전지사업본부가 오는 12월 분할되면 LG화학은 전지사업부문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개 사업부문을 영위하고, 팜한농과 ‘LG에너지솔루션’ 등 두 개 자회사를 보유하게 된다.
LG화학은 “(이번 분할로) 전지 사업에서의 확고한 일등 경쟁력을 확보하고 기존 사업에서의 수익성 제고로 성장 잠재력을 극대화할 것”이라며 균형 있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춘 ‘글로벌 톱5 화학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간만에 힘낸 ‘맏형’ 석화, 미래 먹거리도 책임질까
LG화학의 믿는 구석은 주력사업인 석유화학부문이다. 실제 석유화학부문은 LG화학 전체 영업이익을 견인해오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석유화학부문 영업이익은 1조 4163억 원으로, 전지부문과 공통부문 및 기타에서 각각 4543억 원, 1687억 원 발생한 영업손실을 메우고도 남았다. LG화학이 최근 발표한 지난 3분기 잠정 실적에서도 석유화학부문이 큰 역할을 했다. 석유화학부문은 코로나19 특수에 따른 주요 제품 수요 회복세 등으로 분기 사상 최대 영업이익률(20.1%)을 기록, 전체 영업이익의 75%가량(7216억 원)을 차지하며 3분기 실적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석유화학 사업이 업황 영향을 크게 받는 데다, 주기적으로 불황과 호황을 오가는 대표적 사이클(주기) 산업이라는 점은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지난 1분기 석유화학부문 영업이익(2426억 원)이 전년 동기(3957억 원) 대비 39% 줄어들자 LG화학 전체 영업이익 또한 16% 감소하기도 했다.
LG화학은 친환경 소재 개발 등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 확대를 통해 석유화학 경기 사이클을 벗어나겠다는 계획이다. EU(유럽연합)에서 오는 2021년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식기를 퇴출하는 등의 글로벌 친환경 정책에 발맞춘 미래 먹거리로 친환경 소재를 꼽은 것. LG화학은 지난 7월 ‘2050 탄소중립 성장’ 선언을 통해 △기후변화 대응 △재생에너지 전환 △자원 선순환 활동 △생태계 보호 △책임 있는 공급망 개발·관리 등 5대 핵심과제를 선정하고 이를 적극 추진키로 했다.
지난 10월 30일 주총에서도 LG화학은 “석유화학 부문에서 위생용품, 지속가능 친환경 소재 등 유망 성장 영역을 중심으로 고부가 제품 확대 및 글로벌 사업 확장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재편한 첨단소재부문 또한 배터리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LG화학이 지난 1분기 석유화학부문의 뒷걸음질에도 전체 영업이익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소재사업 재편을 통한 첨단소재 분야의 실적 선방 덕분이다. 첨단소재 부문은 2019년 1분기 109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나 올해 1분기 620억 원으로 급증했다. LG화학은 지난해 4월 기존 사업부문을 통합해 첨단소재사업본부를 신설했다. 이어 올해 두 차례의 매각을 통해 첨단소재사업본부의 LCD소재사업을 정리하고 OLED(올레드)소재사업 집중 육성 기반을 만들었다.
LG화학은 배터리사업부문 분사로 3개 사업본부와 두 개 자회사를 보유하는 구조가 된다. 사진=LG화학 제공
#떨어져나간 배터리 남은 과제
“LG화학의 배터리사업 분사는 해묵은 과제였다. 필요성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ESS(에너지저장장치) 화재 등 문제 상황 발생 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컨트롤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돼 분사를 미뤄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LG화학 사정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LG화학의 전지사업부문 분사를 이같이 평가했다.
문제는 최근 이 같은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모델인 ‘코나EV’에서 발생한 연이은 화재사고 원인으로 LG화학의 배터리가 지목된 것. 국토교통부는 지난 10월 8일 코나EV의 리콜(시정조치)을 알리며 “차량 충전 완료 후, 고전압 배터리의 배터리 셀 제조 불량으로 인한 내부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물론 LG화학은 당일 즉각 입장문을 내고 이를 부인했다. 국토부의 발표가 화재의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됐고, 현대차와 함께 실시한 재연 실험에서도 화재로 이어지지 않아 배터리 셀 불량이 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향후 리콜 원인 및 비용 등과 관련 양사가 갈등을 빚으면 최악의 경우 LG화학은 그간 공들여온 현대차와의 ‘배터리 동맹’이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SK이노베이션과 진행 중인 배터리 분쟁 또한 LG화학 전지사업부문의 남은 과제다. 미 ITC는 당초 지난 10월 중 양사 간 진행 중인 영업비밀 침해소송을 최종판결할 것으로 예정했으나, 지난 10월 27일 최종결정 선고를 오는 12월 10일로 미뤘다. 이에 LG화학은 강하게 반발했다. 같은 날 장승세 LG화학 전지사업본부 경영전략총괄 전무가 월스트리트저널에 “트럼프는 한국 분쟁에 관여하지 말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앞서 재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의 미국 투자가 소송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 바 있다.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정부 입장에서 ITC 결정에 비토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양사의 배터리 분쟁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SK가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고 이미 공장을 증설한 상황에서 국익을 우선시하는 트럼프 정부 또한 정무적 판단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