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잇따른 수사지휘권·감찰권 발동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평검사 대신 윤석열 총장의 책임을 거론했고, 윤석열 총장은 지방 검찰청을 방문해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겨눌 수 있어야 한다”고 독려하며 ‘검사들 다독이기’로 맞서고 있다. 적지 않은 변수들이 남아 있다. 라임자산운용·옵티머스자산운용 관련 검찰 비리 의혹·채널A와 한동훈 검사장 간 검언유착 관련 수사 흐름에 따라 얼마든지 검찰이 반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윤석열 총장의 경우 법무부와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의 대대적인 감찰 및 수사 과정에서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선 검찰청 순회 등 공개 행보에 나선 윤석열 검찰총장은 부장검사 승진자를 대상으로 강연에서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검사 커밍아웃 후폭풍
일선 검사들의 이른바 ‘릴레이 커밍아웃 선언’이 300건을 넘어섰다. 법조계에 따르면 최재만 춘천지검 검사(사법연수원 36기)가 10월 29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린 글을 지지하는 댓글이 4일 현재 300여 건을 넘겼다. 최 검사는 노무현 정부 시절 검찰 개혁을 주도했던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사위이자,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의 조카다.
10월 28일 이환우 제주지검 검사가 추미애 장관의 수사지휘권 및 인사권 남발을 비판하자, 이를 추미애 장관이 ‘커밍아웃’이라고 반박한 것에 대한 평검사의 반발이었다. 검찰 내 전체 검사 수가 2000여 명가량인 점을 고려할 때, 7명 중 1명꼴로 댓글을 달아 ‘내가 그 검사다’라며 추미애 장관을 비판하고 나선 셈이다.
하지만 후폭풍이 거세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검사들의 이 같은 댓글에 대해 ‘커밍아웃에 동참한 검사들의 사표를 받아야 한다’는 국민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왔고 43만 명이 넘게 동의를 표했다. 추 장관도 이를 바탕으로 압박에 나섰다. 추 장관은 자신을 비판한 검사를 향해 ‘커밍아웃해 줘서 고맙다’며 ‘이래서 검찰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데 이어, 국민청원 관련해서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언행과 행보가 오히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고 국민적 신뢰를 추락시키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매우 중차대한 문제”라고 입장을 냈다.
#검란 재연되나
윤석열 검찰총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선 검찰청 순회 등 공개 행보에 나서고 있다. 11월 3일에는 진천 법무연수원에서 올해 부장검사로 승진한 30여 명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는데 이 자리에서 윤 총장은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며 추미애 장관과 여당을 겨냥한 비판을 내놓았다. 10월 29일 일선 검사들과 간담회를 위해 대전고검·지검을 방문한 데 이어 공개 활동 반경을 넓히기 시작한 것인데, 공개된 행사장에서의 발언 메시지로 국정감사에서부터 시작된 여론전을 이어가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커밍아웃에 동참한 검사들의 사표를 받아야 한다’는 국민청원에 43만 명이 넘게 동의하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언행과 행보가 오히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고 국민적 신뢰를 추락시키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매우 중차대한 문제”라는 입장을 냈다. 사진=박은숙 기자
익명의 검찰 관계자는 “일부 언론에서 ‘검란’이라고 하지만 좌표찍기에 반발하는 댓글들만 가지고 검란까지 가기에는 동력도, 명분도 약하다”면서도 “다만 추미애 장관이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하에 검찰 길들이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검사들 다수의 여론이기 때문에 향후 어떤 돌발 이슈가 펼쳐지느냐에 따라 검사들의 공개 반발이 더 거세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사기꾼이냐, 진짜 확실한 제보냐
법조계는 변수로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진술 신빙성을 꼽는다. 추미애 장관이 수사 지휘권을 발동한 명분은 김봉현 회장이 내놓은 ‘검사 3명과 술자리를 가지고 로비를 했다’는 진술 때문인데, 입증 여부 등 수사 흐름이 어느 정도 진척이 되는 과정에서 책임론이 제기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검사들과 야당 정치인에 대한 압수수색 등 수사가 시작됐다. 이 사건을 비롯해 한동훈 검사장과 채널A 검언유착 사건, 옵티머스자산운용 사건 등의 수사 및 감찰 결과가 ‘성과 없음’으로 끝날 경우 추미애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한 비판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한편 윤석열 총장의 대선 지지율은 오히려 올라가는 중이다. ‘오마이뉴스’가 전국 성인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차기 정치 지도자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 윤석열 총장의 선호도는 15.1%로 나타났다. 이는 이재명 경기도지사(22.8%)와 이낙연 민주당 대표(21.6%)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치이자 야권으로 분류되는 정치인 중에서는 선두였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수사 카드’로 압박을 높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박순배)는 11월 3일 윤 총장 장모 최 아무개 씨의 요양급여비 부정수급 의혹 고발사건과 관련해 요양병원 행정원장을 지냈던 유 아무개 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앞서 최 씨의 동업자인 구 아무개 씨도 이미 소환 조사하며, 최 씨가 동업자들과 설립한 의료재단이 요양병원을 통해 요양 급여비를 부정 수급했다는 의혹을 확인 중이다.
윤 총장의 개입 의혹이 제기된 전 서울 용산세무서장 뇌물수수 의혹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형사13부(부장검사 서정민) 역시 11월 29일 중부지방국세청, 영등포세무서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며 공개수사에 나섰다. 이 밖에도 중앙지검은 윤 총장 부인 김건희 씨가 도이치모터스의 주식 상장 전후 시세조종 의혹에 연루됐다는 의혹도 들여다보고 있다.
윤 총장은 인사청문회나 국정감사에서 측근이나 가족 관련 의혹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혔지만, 중앙지검은 기업들이 수사 및 재판 편의를 위해 김건희 씨 회사 협찬을 했다는 의혹도 수사를 검토 중이다. 만일 수사팀이 혐의가 있다고 보고 윤 총장 가족 등 관련자들을 기소할 경우 ‘사퇴 압박’을 지속하고 있는 여권이 희망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윤석열 총장 본인은 물론, 일가족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로 조금이라도 흠집이 날 수 있다면 기소 전에 반발하며 옷을 벗고 나갈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국정감사 전후로 불거진 검사들의 항의는 다시 윤석열 총장 대 추미애 장관의 갈등으로 귀결되는 흐름이고 결국 둘 중 하나가 책임을 지고 나갈 때까지 계속될 듯하다”고 분석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