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잔인한 계절, 11월이 돌아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인기 개그맨 박지선이 2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매년 11월 연예계에서는 유독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가 빈번하게 벌어졌다. 스타들의 느닷없는 사망부터 유명 연예인이 얽힌 대마초 흡연 등 스캔들은 물론 오랜 시간 해결되지 않는 미스터리한 사건도 11월에 집중됐다. 유난히 시끄럽고, 참담한 소식이 반복된 탓에 연예계 종사자 모두 “올해는 무사히”를 바랐지만 박지선의 안타까운 사망으로 다시금 11월이 주목받고 있다.
#박지선 사망…생일 하루 앞두고 비극
개그맨 박지선은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생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딸과 아내가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고인의 아버지가 경찰에 신고해 두 사람의 시신을 현장에서 발견했다. 박지선은 평소 앓던 지병을 치료 중이었고 어머니는 간호를 위해 마포의 집에서 함께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현장에서는 박지선의 어머니가 쓴 것으로 보이는 유서 형식의 A4 용지 한 장 분량의 메모가 발견됐다.
박지선은 데뷔 이후 KBS 2TV ‘개그콘서트’를 비롯해 ‘유희열의 스케치북’ 등에서 활약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왕성한 방송 활동은 물론 최근에는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 제작발표회 진행을 도맡았다. 9월 말에도 드라마 ‘스타트업’ 제작발표회 진행을 맡아 작품을 소개한 그가 한 달여 만에 사망하자 팬들도 큰 충격에 빠졌다. 서울 이대목동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박지선과 어머니의 영정사진과 이름이 나란히 붙어 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연예계는 박지선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해 더욱 깊은 시름에 빠진 분위기다. 해마다 11월이면 반복되는 사건들이 올해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지선과 교류한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올해는 조용하길 바랐는데, 비극이 일어났다”며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는데, 생전 고인이 남몰래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밝혔다.
1995년 11월 인기 절정의 그룹 듀스의 멤버 김성재까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11월 괴담’에 대한 공포는 더욱 확산됐다. 사진은 김성재 추모비. 사진=최준필 기자
#‘11월 괴담’의 시작…왜 하필 11월인가
연예계 종사자 누구도 반기지 않는 징크스 ‘11월 괴담’은 1987년 가수 유재하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사망 사건으로부터 시작했다. 당시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전설의 명곡을 남기고 돌연 떠난 젊은 천재 가수의 사망에 연예계가 충격에 빠졌다. 비극은 멈추지 않았다. 이후 공교롭게도 11월에 세상을 뜬 가수들이 계속됐다. 1990년 11월 1일에는 ‘비처럼 음악처럼’ ‘내 사랑 내 곁에’ 등 히트곡을 내놓은 당대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 김현식이 간경변으로 사망했다. 불과 32세의 젊은 나이였다.
천재 뮤지션으로 불리던 음악가의 잇단 죽음은 11월을 비극적인 시기로 인식하게 했고, 1995년 11월 인기 절정의 그룹 듀스의 멤버 김성재까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11월 괴담’에 대한 공포는 더욱 확산됐다. 당시 23세였던 김성재는 듀스에서 독립해 솔로로 첫 무대를 가진 날 밤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경찰은 약물 과다복용에 따른 자살로 추정했지만 21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사망 원인은 미스터리로 남았다.
특히 지난해 SBS 시사 고발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가 김성재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내용을 기획했지만 고인의 전 여자친구가 명예 등 인격권을 보장해달라며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 이를 서울남부지법이 받아들이면서 불방됐다. 김성재 사망이 11월 괴담 가운데 유독 오랫동안 언급되는 이유는 사건에 김 씨가 깊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예계 11월 사건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2000년 그룹 클론의 강원래가 오토바이 교통사고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고, 드라마 ‘허준’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배우 황수정이 필로폰 투약 혐의로 논란을 일으켰다. 2001년에는 개그맨 양종철의 교통사고 사망, 이듬해에는 연기자 김성찬이 KBS 1TV ‘도전 지구탐험대’ 촬영을 위해 태국과 라오스 접경 지역 체류 도중 급성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하는 일도 벌어졌다. 2010년 11월에는 당대 인디 음악계의 핵심이던 가수 달빛요정역전 만루홈런의 이진원이 뇌출혈로 사망했고, 2014년에는 배우 김자옥이 폐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11월에 유독 사건, 사고가 빈번한 것을 두고 연예계에서는 여러 분석을 내놓는다. 우연의 일치라는 의견도 있지만, 일면 설득력을 갖는 해석도 따른다. 과거 연예매체가 소수의 스포츠신문 중심으로 이뤄지던 시기에 고착된 현상이라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11월 초 프로야구가 끝나고 스포츠 시즌도 막을 내리면 대중의 관심이 자연히 연예계로 향해 관련 이슈가 부각된다는 해석이다. 특히 과거 스포츠신문 주요 판매처인 ‘가판 시장’이 활성화됐을 당시 1면을 장식하던 프로야구가 끝나고 11월 무렵 그 자리를 연예계 기사가 대체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와 함께 2000년대 초반 ‘11월 괴담’이란 용어의 등장과 함께 11월이란 시기가 새삼 주목받은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11월에 벌어진 연예계 사건 사고가 11월이라는 특정 시기로 묶이면서 과거 사건들까지 보태져 괴담의 형태로 몸집을 키운 것도 사실이다. 연예계 또 다른 관계자는 “연예계에서는 매달 바람 잘 날 없는 숱한 사건들이 터진다”며 “이를 특정 시기로 묶는다면 꼭 11월뿐 아니라 다른 달에도 비극의 사건이 많이 벌어졌다. 괜히 ‘11월 괴담’이라는 단어 때문에 이 시기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