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구 긴급생계지원 신청 안내 리플릿.
[일요신문] 정부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대신 어려운 가구에 선별 지급하기로 한 긴급생계지원금이 저조한 신청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긴급생계지원금은 기존 복지제도나 코로나19 지원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위기가구를 대상으로 한 지원금이다. 지난 9월 4차 추경 당시 정말 어려운 분들에게 지원하겠다던 정부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별 지급 기조와 맞닿아 있다.
근로소득 25% 이상 감소자, 사업소득 25% 이상 감소 자영업자, 올 2월 이후 실직으로 구직급여를 받다가 종료된 자 등이 대상이지만 긴급 고용안정지원금, 소상공인 새희망자금, 폐업점포 재도전장려금, 근로자 고용유지지원금, 청년 특별취업지원 프로그램 참여자 등은 물론 코로나19와 관련한 지원을 받는 가구는 신청할 수 없다.
특히 신청 시 소득 감소를 증빙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근로 소득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프리랜서는 원천징수 영수증, 소득금액증명원, 고용·임금·무급휴직·소득감소확인서 중 하나와 근로계약체결서, 급여지급명세서, 급여지급 통장내역서 사본 중 하나를 제출해야 한다. 이중 소득감소확인서는 사업주가 직접 발급해야 하며 사업장 대표전화번호, 발급 담당자 성명, 전화번호가 필수 기재 요건이다.
사업자 역시 소득금액증명원, 종합소득세 과세표준 확정신고서 및 세금계산서, 사업소득 원천징수영수증, 소득(매출)감소 신고서 중 하나를 제출해야 하는데 소득감소 신고서에는 휴·폐업사실증명서, 매출전표, 거래업체 거래내역 확인자료, 통장 사본 중 하나를 제출해야 한다.
이처럼 본인이 소득 감소를 직접 증명해야 하는 방식 때문에 신청 초기부터 말이 많았다.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자영업자들은 국세청 홈택스에서 증명서를 발급하고 거래처에 매출전표를 요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영세 노점상과 일용, 단기 노동자가 사업주에게 소득감소확인서 발급을 요구하는 건 쉽지 않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그래서인지 2주간 접수된 신청 건수는 6만여 건에 불과했다. 55만 가구에 지급하려던 계획에 비하면 10% 정도다. 저조한 신청에 보건복지부는 26일 급하게 신청 기간을 10월 말에서 이달 초까지 1주일 연장하고 소득 감소도 25% 이상에서 25% 이하도 가능하다고 기준을 낮췄다.
신청 서류도 국세청 등 공적 기관을 통해 발급받는 소득증빙서류 외에 통장 거래내역서, 본인 소득 감소 신고서도 인정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공적 자료가 충분치 않은 경우라도 지자체의 심의를 거쳐 예산 내에서 지급하도록 할 계획이다”라고 했다.
지난달 29일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관계자는 “오늘 기준 약 10만 건 정도가 접수된 것으로 알고 있다. 10%는 아니다”라고 손사래 쳤다. 그러면서 “원래는 보다 많은 분이 신청하시라고 지급 기준을 훨씬 낮게 잡았었다. 하지만 예산 부처에서 25%로 기준을 정하며 대상이 축소된 점과, 많은 국민들이 긴급지원에 대해 모르고 계신 점이 낮은 신청률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결국 보건복지부가 기준을 완화하긴 했지만 이번 긴급생계지원금을 조금 다르게 보는 시각도 있다.
기본소득당은 지난달 29일 “긴급생계지원금의 신청률이 10%에 불과하다고 한다. 지난 6월,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 시작 한 달 만에 99%를 지급한 것과 달리 초라한 결과다. 필요한 이들에게 두터운 지원을 하겠다더니 필요한 이들이 신청할 수 없는 제도를 만들어놨기 때문이다”라고 논평했다.
기본소득당 김준호 대변인은 “가난을 증빙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정책을 만든 순간, ‘긴급생계지원’은 달성할 수 없다. 소득 감소 25%라는 모호한 기준, 은행 대출보다 복잡한 증빙 절차는 두터운 지원 대신 포기와 절망을 부른다. 이는 정부가 선별 정책을 고집한 순간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문제의 해결은 간단하다. 정기적이고 보편적인 코로나 극복지원금을 지급하면 된다. 누락되는 사람도, 절차가 복잡해 포기하는 사람도 없이 모든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면 되는 일이다. 필요한 이들에게 두터운 지원은 애초에 불가능한 환상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선별 지원의 환상을 깨고 모든 국민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길 바란다”라고 제안했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