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상초유의 ‘항명 파동’으로 최대 위기를 맞은 조현오 서울지방경찰청장. 사진은 지난 3월 조 청장이 종암경찰서를 방문, ‘현장과의 대화’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국민의 지팡이’를 자임하고 있는 경찰조직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최근 양천경찰서 피의자 고문 사건이 알려지며 경찰 조직에 대한 외부의 불신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채수창 전 강북경찰서장의 항명파동으로 인해 내부에서도 극심한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 주변에서는 두 사건 모두 ‘성과주의’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성과주의란 껍질을 한 꺼풀 더 벗겨보면 그 안에는 조현오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외무고시에 합격하고 캠브리지 법학대학원에서 공부한 외교관 출신이다.
조 청장은 성과주의의 신봉자로 알려졌다. 그는 혈연, 지연 등으로 얽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오직 데이터로 나타나는 성과로만 사람들을 평가한다고 한다. 찬반 논란을 떠나 결과적으로 조 청장이 던진 성과주의란 화두에 지금 경찰조직 전체가 들썩이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조 청장은 내년 초로 예정된 차기 경찰총수 자리를 놓고 경쟁자들과 물밑 경합을 벌이고 있다.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항명 파동’ 중심에 선 조 청장이 과연 이번 고비를 넘기고 최종 총수 후보 경합에 나설 수 있을까.
조현오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경찰 내에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로 손꼽힌다.
1955년 부산에서 태어난 조 청장은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모교인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76학번으로 입학한다.
대학 시절부터 외무고시를 준비한 그는 졸업과 동시에 고시에 합격했고, 81년부터 외무부에서 근무했다. 그는 외무부에 근무하면서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과 캠브리지 법학대학원에서 모두 석사과정을 수료하는 등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젊은 시절 외교관으로 일하면서도 항상 법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지난 90년 돌연 외교관의 길을 포기하고 경정 특채로 경찰에 입문하게 된다. 조 청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인사에 따르면 조 청장은 법학을 공부하면서 ‘법치주의 확립’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고 그것이 늦은 나이에 그를 경찰로 이끌게 된 배경이 됐을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는 경찰 입사 후 곧바로 자신의 고향인 부산 지역 경찰서에서 근무하다 김영삼 정권 말기인 1996년 청와대 치안비서관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김영삼 정권 인사들이 같은 외무고시 출신으로 PK 인사인 조 청장을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 지난 2일 총경급 보직 신고를 받는 조현오 청장. |
현재 경찰 내에서 ‘경비통’으로 꼽히는 그가 처음으로 경비 업무를 담당하게 된 것은 1998년 6월 청와대를 나온 뒤 경남지방경찰청 경비과장을 맡으면서부터다. 그러나 그는 불과 1개월 후 울산남부경찰서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이후 울산지방경찰청 등 4년간 경남 지역에서 근무하다 2002년 총경급인 경찰청사이버테러대응 센터장으로 임명되면서 서울로 진출한다. 당시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증가하는 컴퓨터 범죄 등을 막기 위한 핵심조직으로서 갈수록 많은 역할을 요구받았으나 출범한지 2년밖에 안돼 자리가 잡히지 않은 시기였다.
2005년 총경에서 경무관으로 승진한 그는 불과 2년 만에 다시 치안감으로 승진하며 경찰청 요직으로 꼽히는 경찰청 경비국장에 임명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그는 청와대 치안비서관 자리를 강력하게 권유받았으나 이를 마다하고 부산경찰청장으로 내려간다.
그는 치안정감으로 승진하며 경찰 내 ‘넘버3’로 꼽히는 경기경찰청장을 지냈고, 올해 초에는 경찰청장 1순위 자리인 서울지방경찰청장에 임명됐다.
‘관운은 타고 난다’는 말이 있듯이 조 청장 역시 남다른 관운이 있었다. 부산 출신인 만큼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하면서 인맥을 두루 쌓았다. 역시 부산 김해를 기반으로 한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그의 앞길은 탄탄대로였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그는 경기지방경찰청장으로 일하게 됐는데 때마침 평택 쌍용차 사태가 일어났다. 조 청장 개인적인 입장에서 볼 때 그가 경기청장으로 재임할 때 쌍용차 사태가 일어난 것은 천운이었다. 그는 경남지방경찰청 경비과장, 경찰청 경비국장 등을 거치며 쌓아온 집회, 시위 관리를 바탕으로 쌍용차 사태를 무난하게 마무리했다는 평가를 현 정권으로부터 받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조 청장이 쌍용차 사태를 과잉진압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게 제기된 바 있다. 이명박 정부는 앓던 이와 같았던 쌍용차 사태를 마무리한 조 청장의 능력을 높게 평가해 올해 초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발령했다. 이처럼 탄탄대로를 걸어 온 조 청장에게 남은 것은 오직 경찰총수 자리뿐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순탄하게 승진가도를 달려온 그에게 경찰청장 자리는 녹록지 않아 보인다. 막강한 경쟁자들이 주변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차기 경찰청장 후보로는 조 청장을 비롯해 이강덕 부산경찰청장, 윤재옥 경기경찰청장 등이 있다.
현재까지는 이강덕 부산청장이 가장 차기 청장에 근접해 있으며 그 뒤를 조 청장이 뒤쫓고 있는 구도라는 게 경찰 내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 청장은 현 정권 실세조직인 ‘영포회’ 멤버로 지난해까지 청와대 치안비서관을 역임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근거리를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는 정권 핵심부가 신임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유력한 차기청장 후보로 지목받고 있다.
내년이 이명박 대통령 집권 4년차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권 하반기에 믿을 만한 인물을 요직에 앉힐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상대적 후발주자로 꼽히는 윤재옥 경기경찰청장도 차기 청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윤 청장은 ‘경찰대 1호 제조기’로 불린다. 그는 경찰대 1기에 수석 입학한 뒤 수석으로 졸업했다. 능력을 인정받으며 경찰대 출신 중 가장 먼저 경무관과 치안감에 올랐다. 수사와 정보, 생활안전 등 경찰 업무를 두루 거쳤다. 실제 업무 능력도 상당히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청장과 윤 청장은 모두 경찰대 1기 출신으로, 경찰대 출신 경찰총수를 간절히 바라는 동문들의 적극적인 지원사격을 받고 있다.
두 사람에 비해서 경찰 내 지원세력에서 상대적으로 열세를 보이고 있는 조 청장이 내세울 만한 것은 결국 ‘업무 추진 능력’이다. 이러한 심리적 압박감에서 조 청장이 꺼내든 회심의 카드가 바로 ‘성과주의’라는 게 경찰 내부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최근 경찰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 역시 이명박 정권 말에 있을 경찰청장 인사 경쟁을 둘러싼 역학관계에서 봐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사실 성과주의는 조 청장이 처음 주장한 것은 아니다. 경찰청은 2006년 4월부터 정부 업무평가기본법 시행에 따라 다른 행정부처와 마찬가지로 성과주의를 도입한 바 있다. 검거실적, 교통사고 감소실적, 주민대상 치안 고객만족도 조사결과 등의 평가항목을 마련해 놓고, 각 지방청의 자율운영을 강조했다. 이후 성과주의가 조직에 긴장과 경쟁을 불어넣어 활력과 실적을 내고 있다는 자체 평가도 있었다.
조 청장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일을 못하는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조 청장의 성격이 지극히 업무 중심적임을 방증하고 있다.
최근 서울지방경찰청 내에 ‘성과주의’가 문제가 된 것도 성과주의를 강조하기 시작한 경찰청 분위기와 원래 성과를 중시했던 조 청장의 캐릭터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 초 서울지방경찰청장 취임식에서 인사청탁을 하는 사람에 대해 불이익을 주겠다고 취임 일성을 던진 바 있다. 더불어 성과 평가와 관련한 보다 구체적인 시스템을 만들었다. 2월에는 서울시내 31개 경찰서에 평가지침을 하달하기도 했다.
조 청장이 내려보낸 지침을 살펴보면 먼저 살인, 강도 등 주요범죄 발생건수, 교통사고 현황, 직원수 등을 고려해 치안 수요가 많은 순서대로 A, B, C 등 3개 그룹으로 분류했다. 평가는 두 달에 한 번 청문감사, 생활안전 수사, 형사, 교통 등 각 기능별로 이뤄졌다. 형사의 경우 기획수사로 범인을 얼마나 잡았는지, 강·절도 사건을 얼마나 빨리 해결했는지 등으로 점수를 매기는 식이다.
서울경찰청은 평가결과에 따라 경찰서 관리 방식을 달리했다. 각 그룹에서 ‘가’(최우수)등급을 받으면 서장에게 경찰서 운영에 대한 전적인 자율권을 주고, 서장과 각 과장들에게 월 4회 주말 휴무를 보장했다. 그러나 최하위인 ‘다’등급이면 집중감찰을 받게했다. 성과주의에 반발한 강북서는 B 그룹에서 4개월 연속 ‘다’ 등급을 받아 20일간 감찰을 받았다.
업무태도뿐 아니라 일상생활까지 파고드는 집중감찰은 ‘떼감찰’로 불릴 만큼 경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설상가상으로 전체 등급과 관계없이 기능별 하위 3개서는 해당 기능에 대한 감찰을 또 받아야 한다.
조 청장이 내세운 성과주의에 대해서 경찰 내부의 분위기는 크게 엇갈린다. 찬반은 크게 내근과 외근직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고 있다.
오랫동안 외근을 주로 해 온 서울지방경찰청의 한 경위는 “그동안 승진 등에서 외근직보다는 인사권자와 가까이 있었던 내근직이 상대적으로 더 유리했었다”며 “성과로 인사평가를 하는 것은 외근직으로서는 상당히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번 파동이 조 청장에게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오직 인사권자만이 알고 있다. 외교관으로 시작해 서울지방경찰청장까지 오른 조 청장의 공직생활은 과연 어느 자리에서 끝을 맺게 될까.
박혁진 기자 phj@ilyo.co.kr
‘결단’인가 ‘작전’인가
“나 물러난다. 너도 물러나라.”
직속상관인 조현오 서울청장에게 ‘어퍼컷’을 날린 채수창 전 강북경찰서장(48). 윗사람에게 절대 복종을 원칙으로 하는 경찰조직에서 그는 사상초유의 하극상을 이유로 즉시 직위해제됐다.
1962년 전북 군산 출생인 채 전 서장은 경찰대 1기 출신으로 지난 1985년 경위로 임관되면서 경찰에 입문했다. 1997년 경정 승진과 함께 인천 계양경찰서 방범과장을 역임한 채 전 서장은 동기들보다 조금 늦은 2006년 ‘경찰의 꽃’이라는 총경으로 승진했다. 이후 전북 김제서장(2007년), 서울청 지하철경찰대장(2008년), 경무과 총경을 거쳐 지난해 3월부터 강북경찰서장을 맡아왔다.
채 전 서장의 항명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우선 실적만능주의의 폐단을 견디다 못한 일선 경찰서장이 경찰조직의 쇄신과 후배들을 위해 30년 공직생활을 내걸고 살신성인한 게 아니냐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안정된 자리’를 미련없이 내놓으면서까지 지휘부의 책임을 거론했다는 것은 단순한 개인적인 앙금이나 불만으로 인한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즉 채 전 서장의 항명은 변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지휘부에 대한 경종과 충언의 의미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채 전 서장의 행동은 검거실적주의로 인한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후배들의 불만을 대변하고 공론화시켰다는 점에서 일선 경찰들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현장에서 뛰는 위치도 아닌 서장의 입장에서 일선 경찰들의 애로와 불만에 공감하며 상부에 용기 있는 충언을 했다는 점에서 경찰조직에 대한 깊은 애정과 진정한 용기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또 채 전 서장의 행동은 그릇된 것을 인지하고도 내부고발자로 낙인되거나 인사·업무상 불이익을 우려해 옳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중간 관리자들을 대신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특히 절대적인 상명하복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경찰조직에서 ‘당돌하게’ 지휘부의 책임을 물었다는 점에서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채 전 서장의 ‘반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도 적지 않다. 실적부진으로 인해 집중 감찰을 받아온 일선 서장의 하극상에 불과하다는 논리다. 더구나 경찰조직에서 본청 지휘계통보고 등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개선책을 건의할 수 있음에도 극단적인 방법으로 불만을 표출한 것은 조직내 지휘계통을 위반한 엄연한 기강문란행위라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채 전 서장은 항명 배경과 관련해 또 다른 노림수가 내포돼 있을 것이란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대 동기와 후배를 띄우고 경찰대 입지를 다지기 위해 직속상관의 뒤통수를 친 게 아니냐는 비난도 일고 있다. 실제로 차기 경찰청장 자리를 놓고 조 서울청장과 경쟁하고 있는 윤재옥 경기경찰청장과 채 전 서장은 경찰대 1기 동기생이다. 또 고문사건이 발생한 양천경찰서 이재열 전 서장 또한 채 전 서장과 경찰대 동기이고, 형사과장은 경찰대 후배다. 채 전 서장의 항명 배경에 순수성이 결여되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찰대 1기 동기들에 비해 진급이 늦고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 등 상대적으로 뒤처져 몰리는 상황에서 채 전 서장이 일종의 돌파구로 직속상관을 향해 반기를 들었다는 의견도 있다. 그간 서울경찰청은 성과주의 대토론회, 중간관리자 워크숍, 치안성과분석 워크숍 등 수차례에 걸쳐 성과주의와 관련해 내부 의견수렴을 거쳤으나 채 전 서장은 별다른 반대 의견 제시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랬던 채 전 서장이 고문사건의 원인으로 성과주의를 거론하며 직속상관의 퇴진을 요구한 것은 분명 또 다른 의도가 내포돼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