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초 개각이 ‘홍남기 사의 파동’으로 가팔라지면서 여권 중진 의원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여권 중진들은 이번이 임기 후반기를 맞은 정부 내각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마지막 기회라고 보고 당·정·청 수뇌부에 직간접으로 ‘나요 나’를 외치고 있다. 연말·연초 개각과 함께 ‘쌍끌이 개편’에 나서는 청와대 참모진 개편도 초읽기에 돌입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출신 6명을 포함, 총 12명의 차관 인사를 단행했다. 부처 그립(장악력) 제고를 통해 청와대 입김을 강화하겠다는 시그널을 쏘아 올린 셈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2021년도 예산안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여권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연말·연초 개각의 타임 스케줄은 ‘중폭 이상의 순차 개편’이다. 올해 연말 원년 멤버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강경화 외교부·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을 선 교체한 뒤 내년 1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하마평에 오른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추미애 법무부 장관 중 하나를 바꾸는 안이 유력하다(관련기사 ‘요트 남편’ 강경화 ‘포스터’ 박능후부터 최대 9곳? 개각 퍼즐 맞추기).
순차 개각 전후로 노영민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 등 참모진도 쌍끌이로 개편할 것으로 보인다. 인적 쇄신을 통해 임기 말 국정 속도전을 높이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여권 관계자는 “인사청문회 정국은 여권의 약한 고리이지만, 내년 예산안의 운명이 결정되는 연말 정국 이후 한번은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라고 말했다.
현재 거론되는 장관급 개각 대상자만 10명 안팎에 달한다. 특히 홍남기발 사의 파동은 인적 쇄신의 도화선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1월 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주식 양도세 대주주 갈등을 언급하며 “오늘 사의 표명과 함께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폭탄 발언을 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사의를 반려했다”고 했지만, 홍 부총리는 “사의를 반려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응수했다.
여권 내부에선 문 대통령이 홍 부총리에게 사의 표명을 공개해도 된다는 시그널을 보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홍 부총리가 폭탄 발언을 한 맥락에는 문 대통령의 배려가 깔렸다는 뜻이지만, 홍남기 교체가 개각 상수로 떠오르면서 문 대통령의 인적 쇄신 폭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홍 부총리는 긴급재난지원금이 ‘전 국민 지급 확대’로 결정되자, 비공개로 사의를 표명했었다. 문 대통령은 당시에도 홍 부총리 사의를 반려했다. 홍 부총리의 두 번째 사의 표명 직후 청와대와 정부는 ‘공격성 발언’을 자제하라는 함구령을 당에 내렸다. 실제 11월 4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선 “대통령도 재신임하며 힘을 실어준 만큼, 우리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예산심의를 할 것(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라는 톤다운 발언이 주를 이뤘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11월 4일 “설령 논란이 있었다 하더라도 큰 문제로 비화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힘을 실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도 같은 날 부산항 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 직후 홍남기 부총리 사의 논란에 대해 “당·정 갈등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대통령 참모가 아니라 정치인의 행동으로 보인다. 형식 자체도 대단히 부적절하다(기동민 민주당 의원)”고 한 분위기와는 판이하다. 여당 내부에선 당시만 해도 “사실상 항명”이라는 비판이 다수였다.
여권으로선 홍남기 사의 파동을 둘러싼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 그러나 경제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반기를 든 만큼, 인적 쇄신이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많다. 연말·연초 개각에서 홍 부총리가 교체될 경우 경제 투톱인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도 인적 쇄신 대상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문 대통령은 2018년 말에도 초대 경제사령탑이었던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던 장하성 주중대사를 동시에 물갈이했다. 김 실장도 당이 밀어붙였던 긴급재난지원금의 전 국민 지급 때 하루 동안 ‘결근 투쟁’을 감행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0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여의도 안팎에선 ‘포스트 홍남기’로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거론하고 있다. 야권 한 관계자는 “정권 초에 ‘자기 사람’을 심더라도, 임기 말에는 관리형인 관료나 전문가를 중용한 건 불문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연말·연초 개각 때 친정 체제 구축이란 유혹에서 벗어날지는 미지수다. 앞서 청와대는 11월 1일 차관급 12명에 대한 인사를 전격 발표하며 연말 개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청와대 비서관 출신을 정부 요직에 전진 배치하며 국정 장악력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친문 인사를 통해 레임덕을 막겠다는 의지를 되풀이한 셈이다.
여당 중진 입각설이 힘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당 의원 중 경제부총리 입각 1순위는 4선의 윤호중 민주당 의원이다. 21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인 그는 친문 직계이자, 대표적인 정책통으로 통한다. 윤 의원은 김현미·박영선 장관 등의 거취에 따라 경제부총리 이외에도 국토교통부나 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 부처 중 한 곳에 안착할 것을 보인다.
여당 한 당직자는 ‘윤호중 카드’에 대해 “매파(강경파) 성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부처 장악력은 여타의 온건파 의원들과 비교할 수 없다”며 “여당의 대표적인 경제통인 만큼, 부처 관료들도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윤 의원은 ‘국감 정치’ 논란에 휩싸인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라고 날선 비판을 한 바 있다.
‘포스트 추미애’ 자리에는 율사 출신인 3선의 박범계 민주당 의원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박 의원은 2017년 초기 내각 구성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거론됐었다. 여권 안팎에선 ‘추미애 vs 윤석열 내전’으로 조국 사태에 버금가는 검란 가능성이 대두된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학자 출신 비법조인을 발탁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강경화 장관의 후임으로는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 핵심인 송영길 의원이 유력하다. 5선인 송 의원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직을 수락한 것도 ‘포스트 강경화’ 자리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알려졌다. 송 의원과 친분이 깊은 야당 한 의원은 “(사석에서) 개각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더라”라고 귀띔했다. 국회 상임위원장직은 통상적으로 3선 의원이, 간사직은 재선 의원이 맡는 게 관례다.
내년 1월이면 취임 1년을 꼬박 채운 정세균 국무총리도 대선 플랜에 따라 조기 교체로 가닥을 잡을 수 있다. 개각 퍼즐 맞추기에 따라 전면 쇄신의 모양새를 갖출 수도 있다는 뜻이다. 원년 멤버 이외에도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과 함께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이재갑 고용노동부·조명래 환경부 장관 등도 교체 대상에 포함됐다고 한다.
이 중 청와대가 일찌감치 인사 검증에 들어간 부처는 여성가족부다. 이정옥 장관은 지난 9월 임명됐지만, 교체 대상에 포함됐다. 이 장관의 후임으로는 여성 운동가 출신인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꼽힌다. 국회 한 보좌관은 “문재인 정부 들어 젠더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지 않았느냐”며 “학자 출신이 잇따라 터진 젠더 문제를 둘러싼 난관을 돌파하기는 역부족”이라고 전했다.
변수는 내년 4월 재보궐 선거 퍼즐이다. 순차 개각의 2단계인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후보군에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이 포함됐다. 애초 가장 앞선 후보군으로는 애초 박 장관이 꼽혔으나, 최근에는 기류가 바뀌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박 장관 측근들은 서울시장 판이 어둡다는 이유로 출마를 만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한 당원도 “‘박 장관이 서울시장에 나가지 않는다’라는 말이 돈 것은 사실”이라며 “측근들의 움직임도 거의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이 ‘홍남기 교체’ 여부에 따라 경제부총리 후보군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간 말을 아끼던 우상호 민주당 의원이 최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사실상 출마 의사를 밝힌 것도 박 장관의 불출마설과 무관치 않다는 추측도 나온다. 박 장관의 후임자로는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 등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거론된다. 민주당 한 의원은 “개각 퍼즐은 재보선 후보군의 결단과 연말 정국의 입법 성적 등 복합 변수에 따라 연동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