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회장의 강력한 1인 지배체제 논란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주요 이유는 △재벌 오너에 맞먹는 권한을 행사하지만 그에 맞는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점 △이사회를 회장 측근으로 구성해 셀프 연임을 하는 등 금융의 사유화가 우려된다는 점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는 등 장기 재임시 받는 혜택이 너무 크다는 점 등이다. 즉 특별한 대주주가 없는 금융지주사에서 회장에게 모든 권한과 혜택이 집중된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2019년 24억 97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앞서 2017년 금융감독원은 KB금융과 하나금융에 대한 경영유의를 통보한 바 있다. 서울 중구 하나금융 본사. 사진=박정훈 기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2019년 24억 97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15억 9500만 원,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12억 6000만 원,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7억 6200만 원의 연봉을 각각 받았다. 3연임에 성공해 9년간 재임하면 손 회장을 제외하고 다른 회장들은 총 100억 원 이상의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수준이다.
금융지주 회장의 셀프 연임을 통한 사유화 의혹도 오랜 기간 논란이 되고 있다. 최종구 전 금융위원회(금융위) 위원장은 2017년 말 “선임권을 가진 이사회를 CEO(최고경영자)와 가까운 사람들로 구성해 회장 연임을 유리하도록 한다는 논란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비슷한 시기 금융감독원(금감원)은 KB금융과 하나금융에 대한 경영유의를 통보했다. 경영유의란 금융사의 자율적 개선을 요구하는 행정지도 성격의 조치다. 이후 KB금융과 하나금융은 회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현직 회장을 제외하도록 내부규범을 개정했지만 이사회 독립성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회장 임기 제한 추진에 만만치 않은 반대 여론
김한정 의원이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 발의를 예고한 후 금융권에서는 조용병 회장과 손태승 회장을 주목한다. 조 회장은 2017년 3월 신한금융 회장에 취임해 올해 3월 연임에 성공, 2023년 3월에 임기가 끝난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6년간 회장직을 맡은 조 회장의 3연임이 불가능해진다. 올해 3월 연임에 성공한 손태승 회장의 임기도 2023년 3월까지다. 다만 손 회장은 2018년 12월에 취임했기에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1년 9개월의 추가 연임은 가능하다.
2021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김정태 회장도 눈길을 끈다. 차기 하나금융 회장 후보로 꼽혔던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이 올해 초 DLF(파생결합펀드) 사태로 문책경고를 받으면서 김 회장의 연임설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2012년 3월부터 8년째 회장을 맡고 있어 개정안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개정안 통과 시기나 유예기간 등을 감안했을 때 오는 2021년 연임에는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김 회장 본인은 대내외적으로 연임 의사가 없다고 말한다”며 “시기적으로 연임을 논할 때도 아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금융권의 반대 의견이 적지 않고, 금융당국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려 개정안이 쉽게 통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금융지주 회장 연임에 대해 “가급적 주주들이나 이사회에서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윤석헌 금감원장은 “금융지주 회장들의 책임과 권한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크게 공감한다”며 “셀프 연임하는 부분은 더 강하게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정부 지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주식회사 CEO의 임기를 제한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외국 주요 기업 CEO들의 평균 재임 기간은 10년이 훨씬 넘는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셀프 연임을 문제 삼지만 사외이사는 회장을 추천하는 것이고, 실제 선임은 주주들에게 달려 있다”며 “주요 금융지주사의 외국인 주주 비율이 50%가 넘는데 이들이 셀프 연임에 찬성할 리도 없다”고 덧붙였다.
#대안으로 떠오른 노동자 추천 이사제…금융사들은 여전히 우려
회장의 연임을 제한하기 어렵다면 이사회의 독립성을 더욱 강화하는 방식으로 회장 1인 지배체제를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금융지주사들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되는 등 이사회 독립성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다른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과거에 문제가 발생한 후 사외이사를 교체했지만 여전히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며 “정부가 사외이사를 지정할 것도 아니고, 우리도 나름 최선을 다해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최근 KB금융 우리사주조합이 사외이사를 추천하면서 노동자 추천 이사제가 현실화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서울 영등포구 KB금융지주 본사. 사진=최준필 기자
사외이사 중 일부를 노동자가 추천하는 전문가로 선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회사 구성원이 추천한다는 명분이 있고, 경영진을 견제한다는 취지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관계자는 “사외이사 선임 자체에 기존 경영진의 입김이 강력히 작동하는 것이 현실이라 회전문 인사 논란을 면하기 어렵다”며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해 노동자 추천 이사와 같은 주주제안을 추진한다면 견제와 균형이라는 이사회의 기능에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지난 10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리사주조합과 소액주주들이 각각 추천한 후보자 1명을 반드시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한 금융권 관계자는 “노동자 추천 이사는 이사회의 전문적인 업무를 하지 않고 노동자 이익 대변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KB금융 우리사주조합이 사외이사를 추천하면서 노동자 추천 이사제가 현실화될 수 있을지 주목받는다. 우리사주조합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전문가인 윤순진 서울대학교 교수와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를 사외이사로 추천했고, 이들의 선임 여부는 오는 20일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에서 결정된다. 하지만 KB금융 이사회가 이들의 선임을 반대해 난항이 예상된다.
KB금융 이사회 관계자는 “ESG 전문가를 추가로 충원하기보다 현재의 이사들을 바탕으로 ESG 활동을 확대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반면 KB금융 우리사주조합 관계자는 “ESG 영역에서 널리 인정받은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충원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며 “(윤 교수와 류 대표는) 독립적인 위치에서 사외이사의 취지에 맞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