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한진중공업 서울사무소 전경. 사진=최준필 기자
매각 대상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가진 보통주 63.77%와 필리핀 금융기관이 보유 중인 보통주 20.01%다. 지분 전량 매각이 목표지만 산업은행과 채권단은 일단 인수 후보자들에게 인수 구조에 특별한 조건을 걸지 않고 자유롭게 제안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다. 예상 매각금액은 그동안 4000억~5000억 원 수준으로 거론돼 왔다. 그러나 예상 외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격이 다소 조정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예비 입찰에 7곳이나 관심을 보이는 등 인수전이 흥행한 이유로 한진중공업의 최근 실적 회복세가 꼽힌다. 구조조정의 성과가 빠르게 나타나면서 자본잠식에 빠져있던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별도 재무제표 기준 매출액 1조 6095억 원, 영업이익 771억 원을 기록하며 극적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올 상반기(1~6월)에는 매출액 8250억 원, 영업이익 171억 원을 달성했다. 인천북항 배후부지와 동서울터미널을 매각하면서 유동성 위기가 해소됐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1937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조선소 한진중공업은 2016년 조선 업황 부진 등으로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경영 정상화 계획 이행 약정(MOU)을 맺으면서 ‘경제응급실’에 실려 들어왔다. 그러나 적자는 계속 이어졌고 2019년 1월 해외 자회사인 필리핀 수비크조선소까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며 자본잠식에 빠졌다. 이후 채권단이 기존 최대 주주인 한진중공업홀딩스의 지분을 모두 소각하고, 대출금을 한진중공업 주식으로 전환하며 산업은행이 지분 약 16%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총수였던 조남호 회장은 이 과정에서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조선업이 세계적으로 불황을 겪고 있지만 한진중공업은 나름의 경쟁력이 있다는 점도 인수전 흥행 배경으로 꼽힌다. 방산업체로서 함정을 생산할 수 있어 경기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 차기 고속정, 경비함, 지원함, 특수목적선을 건조하는데, 해군과 해양경찰청의 고정적인 발주를 기대할 수 있다. 건설업에도 강점이 있다. 한진중공업은 전체 사업 중 건설 부문 비중이 높은 편이다. 수년 사이 줄어든 조선 부문 매출 비중(지난해 말 기준 30.8%)을 건설 부문(53.2%)이 성장하면서 채웠다.
대규모 부동산 개발이익 기대감도 이번 인수전 포인트 중 하나다. 연 면적 26만㎡ 규모에 달하는 부산 영도조선소 부지는 친수 공간(도시나 마을에 인접해 있는 개방적인 수변공간)이다. 부산시는 오는 2030년까지 영도구 등에 위치한 공업지역 재정비를 추진 중이다. 한진중공업과 대선조선이 위치한 영도구 일대 조선기자재업체들을 외곽으로 이전해 이 지역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취지다.
IB(투자은행)업계와 부산지역사회에선 한진중공업의 새 주인이 부산시 재정비 사업을 활용해 영도조선소를 이전하고 이곳에 상업지역이나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 경우 새 주인은 빠르게 투자금을 회수하고 막대한 개발 이익까지 챙길 수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이번 인수 후보자 대부분이 투자금 회수 계획에 영도조선소 부지 개발 가능성을 포함해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이번 한진중공업 인수전은 4파전으로 진행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 가운데 가장 유력한 인수후보는 KDBI·케이스톤파트너스 컨소시엄이다. 지난해 7월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전담자회사로 설립된 KDBI는 산은이 경쟁입찰 방침을 공식화한 직후부터 곧바로 인수자문사를 선정해 본격적인 인수 준비에 나섰다.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한 케이스톤파트너스는 2012년 금호산업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매각한 금호고속,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대우건설 일부 지분을 9500억 원에 인수해 재기 발판을 마련하는 등 시장에서 민간 구조조정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다른 후보자들은 조선, 건설 분야에 강점이 있다. 한국토지신탁은 동부건설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다. APC PE는 최근 STX와 손잡고 국내 중견 해운사인 흥아해운을 인수해 해운사를 보유하고 있다. NH투자증권·오퍼스 PE 컨소시엄은 ‘NH-오퍼스 기업재무안정 PEF’(2040억 원), ’NH-오퍼스 제2호 기업재무안정 PEF’(1021억 원) 등 3061억 원 규모의 블라인드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 기업재무안정 블라인드 펀드다.
한진중공업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사진=임준선 기자
변수는 이번 인수전 참여자가 대부분이 사모펀드인데, 이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는 점이다. 한진중공업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등은 최근 사모펀드의 경영권 단독 인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투자 차익과 직결되는 영도조선소 상업 개발은 단호하게 반대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의 새 주인은 단순 투자금 회수를 위한 인수가 아닌 조선업 회복과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고용 보장, 협력업체 상생을 우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부산시도 11월 5일 한진중공업과 대선조선 매각과 관련, 조선 산업 및 고용 유지를 위한 대정부 건의를 했다고 밝혔다. 부산시는 지난 10월 20일에도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산자원부, 고용노동부, 금융위원회,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에 한진중공업과 대선조선 존속을 위한 건의문을 변성완 시장 권한대행 명의로 제출하기도 했다. 그 밖에 한진중공업이 방산업체인 만큼 사모펀드는 경영권 인수 시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산은과 KDBI의 ‘특수관계’는 현재 M&A 시장의 주된 논란거리다. 앞서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에 KDBI가 현대중공업그룹과 손잡고 참전하면서 불거진 이 논란이 한진중공업 인수전으로도 옮겨 붙었다. 산은은 한진중공업 인수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채권단의 핵심이다. KDBI는 산은의 자회사다. 사실상 셀프 매각이나 다름없는 모양새다.
KDBI는 독립법인인 만큼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 오히려 산은과 사전에 정보를 주고받았거나 지시를 받았다면 자본시장법 위반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KDBI도 “두 곳은 별도 기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IB업계에선 공정성을 우려하고 있다. 두 조직의 밀접한 관계는 사실인 만큼, 정보 접근성부터 매도자 쪽에 미치는 영향력 등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걷어내긴 어렵다는 취지다. 업계 일각에선 한진중공업 인수전에 대해 “이미 주인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한진중공업 매각은 오래전부터 예정된 절차였고, KDBI는 일찌감치 인수 의향을 내비치고 준비를 해온 만큼 참여 자체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며 “KDBI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M&A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구조조정 전문 운용사로서의 역량을 키워야 하는 시기다. 잡음 없이 성과를 내는 게 KDBI의 숙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