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코오롱생명과학이 바이오의약품 제조부문을 분할해 신설법인을 설립하기로 하면서 더 큰 관심이 쏠린다. 인보사 품목허가 취소로 가동이 중단된 공장을 바이오 의약품 위탁생산(CMO) 사업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인데, 신뢰도와 재무 차원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은 만큼 CMO 시장에서 자리 잡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코오롱티슈진이 상폐 위기에 놓인 가운데, 코오롱생명과학이 바이오 제조부문을 물적분할하고 이를 담당할 신설법인을 설립한다고 공시하면서 그 배경에 이목이 집중된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코오롱생명과학 본사. 사진=연합뉴스
코오롱생명과학은 12월 1일 바이오의약품 제조부문을 물적분할하고 해당 영역을 맡을 코오롱바이오텍 주식회사(가칭)를 신설한다고 최근 공시했다. 분할존속회사인 코오롱생명과학은 케미칼과 바이오신약개발을 맡고, 코오롱바이오텍은 제조부문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내용이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지난해 9월 에스엘바이젠의 신생아 허혈성저산소뇌병증 신약물질에 대해 첫 CMO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물적분할로 CMO 사업을 강화해 성장 동력을 찾겠다는 계획이다.
코오롱생명과학 관계자는 “생산뿐 아니라 연구개발 설비도 갖췄기에 CMO를 하다가 공동 개발 과정까지 포함한 CDMO까지도 진출하고자 한다”며 “새롭게 법인을 만들어 매출과 신뢰도를 높이는 동시에 성장 모멘텀을 마련하려는 차원”이라고 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인보사 제조 기준 케파(연생산량) 1만 도즈(1도즈는 1회 접종분) 규모의 충주 1공장과 10만 도즈 케파의 2공장을 보유했다.
CMO 사업은 유망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글로벌 바이오 시장 규모가 커지고 설비를 보유하지 않은 신생업체들이 많아졌다. 최근엔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수많은 업체들이 백신 및 관련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면서 대량 생산 및 공급 가능한 기지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다. 생산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려는 글로벌 제약사부터 설비가 없는 신생기업까지 위탁생산업체를 찾으면서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도 CMO 수요는 늘어날 전망이다. CMO 전문기업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외에도 SK바이오사이언스, GC녹십자 등 국내 업체들이 최근 CMO 수주를 늘리는 이유다.
한 CMO 업체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개발사들이 많이 늘었고, 제조현장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단기간 의약품을 대량 생산 공급할 수 있는 역량이 더욱 중요해졌다”며 “유럽과 북미 등 기존 생산기지는 멈췄지만 국내 업체들은 안정적 공급체계를 유지하면서 이 역량을 잘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코로나가 진정돼도 많은 업체들이 투자자나 인허가 기관에 약속해둔 기간에 맞추고자 기존 파이프라인 개발을 서둘러야 하고, 시장이 커지면서 신생업체가 많이 생겨나기에 CMO 수요는 지속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여재천 한국신약연구개발조합 전무이사는 “코오롱생명과학은 이미 자본을 투자해 세포치료제 생산 설비를 갖췄다. 이를 CMO로 활용해 생산성과 영업력을 높이려는 차원”이라며 “정부 차원에서도 최근 신약개발에 있어 연구개발(R&D)뿐 아니라 생산시설 확장과 관련 인력 양성 등 생산역량 강화에 투자하고 있다. 이 흐름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코오롱티슈진이 상폐 위기에 놓인 가운데, 코오롱생명과학이 CMO 사업 강화에 나서 관심이 쏠린다.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약사법 위반과 사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위반, 배임증재 등 혐의로 2019년 7월 법원에 출석한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그러나 악재는 여전히 쌓여 있다. 코오롱티슈진이 또 다시 상장폐지 직전까지 몰렸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4일 코스닥시장위원회를 열고 코오롱티슈진의 상장폐지를 의결했다. 거래소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19년 5월 28일 인보사 품목허가 취소 결정을 내리자 즉시 주권매매거래를 정지시켰고, 같은 해 8월 1차 심사 격인 코스닥시장본부 기업심사위원회를 열어 상폐 결정을 내렸다. 그해 10월 2차 심사 격인 코스닥시장위 심의 결과 개선기간 12개월을 부여했으나 이날 재심의에서 상폐 결정했다. 코오롱티슈진 상폐 위기에 5일 코오롱생명과학 주가도 급락했다.
코오롱티슈진은 상폐 통지일로부터 7일 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거래소는 15일 내 코스닥시장위를 열어 개선기간 부여 여부를 포함한 상폐 여부를 다시 결정한다. 코오롱티슈진은 이의 신청할 계획이지만 결과는 동일하거나 개선기간이 부여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미 식품의약국(FDA)의 인보사 임상 3상 재개 허용을 이유로 결과가 뒤집힐 수 있다고 전망하지만, 상폐는 인보사 성분 변경과 품목허가 취소에 따른 것으로 FDA 결정은 국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인보사 피해자를 대리하는 엄태섭 변호사는 “식약처에 허위자료를 제출해 허가받은 것이 드러나 품목허가 취소된 사실은 그대로다”며 “티슈진에서 매출이 발생 가능한 제품은 인보사뿐인데 국내에선 이익을 낼 수 없고, 미국에서도 임상 기회를 얻었을 뿐 통과했단 뜻이 아니다”며 “미국 임상 통과 기대감만으로 투자해 손해 볼 주주들이 생길 수 있는 상황에서 거래 재개를 허용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이어 “민·형사 소송이 진행 중이고 외부감사 거절 등도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사법기관 등의 의견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개선기간을 부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의신청에도 상폐가 확정되면 코오롱티슈진은 상폐 절차를 밟는다. 다만 거래소를 상대로 상장폐지 결정 무효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이 경우 1심 2심 대법원 판결까지 거쳐야 한다. 엄태섭 변호사는 “사법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점에서 ‘최종판결’이 나려면 수년은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장 유지 결정이 나도 거래 재개까지는 요원하다. 인보사 건과 별도로 회계법인의 2019년과 2020년 사업보고서에 대한 감사의견 거절, 경영진의 횡령 배임 등 다른 상폐 사유가 올해 추가됐기 때문이다. 감사의견 거절과 관련해 내년 5월 10일까지 개선기간을 부여받은 상태로, 내년에 다시 감사의견 거절을 받으면 상폐된다. 적정 감사의견을 받아도, 경영진의 횡령 배임 건에 대해 별건으로 거래소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돌파구를 찾겠다며 뛰어든 CMO 사업도 신생기업이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기존 글로벌 CMO사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공장 설비와 운영 역량을 보유하는 건 물론, 수주 물량을 선제적으로 많이 확보함으로써 글로벌 평판을 쌓아야 한다. 인보사 사태로 재무구조와 신뢰도에 흠집이 난 코오롱생명과학의 경우 진입장벽이 더 높을 수 있다.
앞의 CMO 업체 관계자는 “CMO는 뛰어난 생산설비 등 물리적 역량뿐 아니라 영업력과 인력, 글로벌 평판과 실적까지 갖춰야 하는 종합예술”이라며 “공장이 있어도 글로벌 제약사들이 국내 기업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역량과 경험이 없으면 생산을 맡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업계가 긴밀하게 소통하기에 업체들의 서비스 질은 빠르게 소문이 난다”며 “자사 제품의 생산 공급을 맡기려면 데이터 신뢰성이나 안정성에 대해 신뢰할 만한 회사여야 하는데, 성분 변경 등 논란을 빚은 경우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른 바이오업체 관계자는 “대규모 자금 투입이 선제돼야 하므로 작은 기업은 흉내를 못 내는 사업이 CMO”라며 “신생기업인 코오롱생명과학의 경우 국내 중심의 수요에 맞춰 사업하다가 점차 외형을 키워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제언했다.
CMO는 신뢰도와 관계없다는 반론도 있다. 또 다른 의약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CMO를 맡기려는 기업은 설비와 공정, 정확한 생산 개발 데이터와 인증된 라이선스 등을 보고 계약 여부를 판단한다”며 “인보사 사태가 CMO 사업에까지 영향을 미칠 거라 보긴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내에선 허가 취소됐으나 미국에서는 변경된 세포로 정정해 임상 재개 승인을 받았다. 미국 임상에 많은 돈이 들어가지만 지속하는 이유는 자체적으로 통과 가능성을 높게 보기 때문 아니겠느냐”며 “임상 3상에 성공한다면 역전 계기를 얻을 것”이라고 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