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피해자 진술이 바뀌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은 결정적인 증거지만 잦은 번복으로 일관성이 훼손되면 증거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 이즈음 당시 강지환 자택 상황이 담긴 CCTV 화면까지 공개됐다. 새로운 증거들로 인해 대법원이 1, 2심과 다른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대중의 관심도 다시 집중됐다. 그렇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원심과 다르지 않았다.
새로운 증거들로 인해 대법원이 1, 2심과 다른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대법원은 판단은 1, 2심과 달라지지 않았다. 대법원은 준강간 및 준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강지환에게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진=임준선 기자
11월 5일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준강간 및 준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강지환(본명 조태규‧43)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회봉사 120시간,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 40시간, 취업 제한 3년 명령도 원심대로 유지했다.
강지환은 2019년 7월 9일 경기도 광주시 소재의 자신 집 2층 방 침대에서 술에 취해 잠든 A 씨를 뒤에서 껴안아 추행한 혐의를 받았다. A 씨가 놀라 피하자 옆에서 자고 있던 B 씨를 준강간한 혐의도 있다. 이로 인해 강지환은 준강간 및 준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돼 결국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그동안 강지환은 준강간 혐의는 인정했지만, 준강제추행 혐의는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대법원은 이미 인정한 준강간 혐의는 다루지 않고 준강제추행 혐의만을 다뤘는데 원심이 그대로 유지됐다.
강지환 측이 준강제추행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피해자가 지인과 나눈 카톡 대화 내용을 공개했던 8월 강지환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산우의 심재운 변호사는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준강제추행의 경우 사실상 항거불능상태, 심신상실상태여야 하는데 피해자는 범행 시간으로 특정된 시간대에 외부 사람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발송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사건 발생 당시 피해자가 상황을 인지할 수 있을 만큼 의식을 회복했거나 애초 의식이 없는 상태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어 준강제추행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사실 피해자가 지인과 주고받은 카톡이 새로운 증거는 아니었다. 1심에서도 범행 추정 시간에 피해자가 지인에게 “알지”라는 카톡을 보낸 사실은 인정됐지만 매우 짧은 답문 형태의 메시지는 잠에서 일시적으로 깬 몽롱한 상태에서도 보낼 수 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또한 재판부는 피해자가 즉각 대응을 하지 않고 추행을 당한 뒤 강지환을 피해 침대에서 내려온 점을 놓고 볼 때 술에 취한 채 잠이 든 상태가 맞다고 봤다.
강지환 측이 준강제추행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결정적 이유는 피해자가 지인과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다. 올 8월 KBS ‘연중 라이브’를 통해 공개된 카톡 대화 내용. 사진=‘연중 라이브’ 방송 화면 캡처
피해자의 진술 번복은 2심 재판 과정에서 불거졌다. 당시 강지환 측이 피해자의 진술이 달라졌다고 주장했지만 2심 재판부는 범행 당시 상황을 일관되게 진술해왔고 진술의 미세한 차이는 신빙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법원 상고 이후 강지환 측은 결정적인 증거들의 증거 능력까지 문제 삼으며 애초 인정한 준강간 혐의까지 부인하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우선 준강제추행 혐의의 증거인 피해자 A 씨의 생리대에서 발견된 강지환의 DNA에 대해 “A 씨가 샤워 후 강지환 의류와 물건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DNA가 옮겨간 것 같다”는 추측을 내놨다. 이어 준강간 혐의에 대해서도 “피해자 신체나 옷가지에서 강지환의 DNA가 발견되지 않았고 정액이나 쿠퍼액 등도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역시 이 부분을 주목했다. 우선 대법원은 준강간 혐의는 강지환이 인정한 것으로 봐 아예 다루지 않아 정액이나 쿠퍼액이 검출되지 않은 정황은 검토 대상조차 아니었다. 준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대법원은 “피해자의 생리대에서 강지환의 유전자형이 검출됐다”며 증거 능력을 인정했고 피해자의 진술이 구체적이며 일관된다며 역시 증거 능력을 인정했다. 강지환 측은 대법원에 새로운 증거를 제출했지만 이를 검토한 대법관들은 원심을 뒤집을 만큼 중대한 증거로서의 가치는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8월 강지환 측이 카톡 내용과 CCTV 화면 등을 공개하며 반격에 나섰을 당시 피해자들의 국선 변호인을 맡은 법무법인 규장각의 박지훈 변호사는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현재 강지환 측이 주장하거나 공개하고 있는 근거 자료들은 전부 앞선 재판에서 이미 확인된 부분인데 이제 와서 다시 언급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실제 1, 2심 법정에서 다뤄진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결국 대법원 판결에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이런 주장들에 대해 2심 재판부는 “강지환 씨가 A 씨에 대한 범행(준강제추행)을 부인하고 있어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을 정도다.
결국 강지환 측의 여론전은 괜한 화제만 양산했을 뿐 대법원 결정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고 오히려 피해자들만 2차 가해에 노출시키고 말았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