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말 사생활 논란이 불거진 그룹 엑소의 멤버 찬열. SM엔터테인먼트는 이에 대해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겠다고 했다.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엑소의 첸은 지난 1월 비연예인 여자친구와 혼전임신으로 결혼 소식을 알려 팬들을 당황케 했다. 그가 연애 중이라는 사실이 팬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음에도 활동을 위해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정작 팬들이 지킨 가수가 스스로 비밀 연애와 임신 사실을 알리면서 ‘뒤통수를 때렸다’는 것이다. 분노한 팬들 가운데 일부는 첸의 퇴출을 요구하는 성명서와 버스 광고를 내고 소속사인 SM을 규탄하기도 했다.
이어 같은 멤버 찬열의 사생활 논란이 불거지면서 팬들의 분노가 한계에 달한 상황이다. 이 논란은 지난 10월 29일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판에 한 네티즌이 찬열과 3년간 교제한 여자친구라고 밝히며 “사귀는 동안 찬열이 10명이 넘는 여자들과 바람을 피웠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걸그룹, 유튜버, BJ, 승무원 등이 그 대상이었다고 폭로한 그는 찬열과 함께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개인적인 사진들을 함께 올려 주장에 신빙성을 더하기도 했다.
사생활이라곤 하지만 ‘유사 연애 감정’을 주요 판매 콘텐츠로 삼는 아이돌에겐 치명적인 폭로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해당 네티즌이 공개한 찬열의 사진 가운데 팬들 사이에서 ‘루돌프 찬’이라 불리는 포토 카드와 같은 착장을 하고 있는 사진까지 발견되면서 찬열과 SM의 공식 입장을 요구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거셌다.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걸그룹으로 유일하게 완전체 활동을 이어갔던 레드벨벳의 아이린은 갑질 논란으로 대중의 큰 질타를 받았다.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러나 양측 모두 논란 발생 후 일주일이 지난 현재까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고 있다. SM 측은 아예 “이번 논란에 대해 밝힐 입장이 없다”는 것을 공식입장으로 내놨다. 찬열 역시 소속사의 침묵에 맞춰 지난 1일 인기 웹툰과 컬래버한 OST 발매를 예정대로 진행했고, SM타운 네이버 브이라이브(VLIVE)에서도 순차적으로 에피소드를 공개하는 등 ‘마이 웨이’를 걷고 있다.
SM이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찬열의 논란 직전에 겪은 또 한 차례의 홍역 탓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지난 10월 21일 소속 걸그룹인 레드벨벳의 리더 아이린이 15년차 스타일리스트 겸 에디터에게 폭언 갑질을 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이 사건은 결국 SM 관계자와 아이린이 직접 피해자를 찾아 사과를 하는 것으로 일단락됐지만, 갑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내 정서상 아이린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팬덤 내에서도 아이린의 행태를 규탄하며 그룹 탈퇴를 요구하고 나서는 상황에 찬열의 사건까지 터지면서 SM으로서는 적극적인 대응보다 침묵을 지키며 사태가 소강되길 바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는 것이다.
더욱이 SM은 이 기간 신인 걸그룹인 에스파(aespa)의 데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11월 17일 데뷔를 앞둔 에스파는 SM이 아이돌 그룹으로는 NCT 이후 4년 만, 걸그룹으로는 레드벨벳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신인이다. 2017년 이후 완전체로 활동할 수 있는 걸그룹이 레드벨벳밖에 없는 상황에서 공개되는 신인이니만큼 소속사로서도 안팎에서 발생하는 구설보다 이들의 데뷔 자체에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관련기사 걸그룹 ‘에스파’ 아바타 멤버들, 딥페이크 피해시 법적 보호 가능할까?).
그러나 에스파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그룹이 공개되기 전 멤버 가운데 카리나(본명 유지민)의 루머가 일파만파 퍼진 것이다. 루머 유포자들은 자신이 SM 소속의 전 연습생, 또는 그 연습생의 지인이라고 밝히며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카리나의 사생활과 인성을 폭로해 왔다.
이 폭로 글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기정사실화되자 결국 SM에서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함께 지난 10월 14일 이들을 명예훼손 및 모욕 혐의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고소 엄포와 실행 착수에도 불구하고 루머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데뷔를 앞둔 SM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걸그룹 에스파 역시 데뷔 전부터 여러 구설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에스파는 콘셉트 사진의 유사성 논란에도 휘말렸다. 캐나다 토론토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사진작가 브라이언 후잉이 에스파의 콘셉트 사진과 자신의 사진에서 유사성을 제기한 것이다. 후잉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두 사진을 올린 뒤 에스파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태그하고 “흠, 이게 내가 블랙핑크만 좋아하는 이유야!”라고 썼다. 공식적으로 유사성을 제기하거나 이에 대한 입장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지만 원작자가 불쾌함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SM의 피드백이 기대돼 왔다. 그럼에도 SM은 이 점에 대해서도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일정대로 에스파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각종 논란에 대한 SM의 ‘취사선택’ 공식입장을 놓고 업계 내에서는 “대형 기획사엔 침묵이 득이 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라는 옹호의 목소리가 나온다. 범죄가 아닌 이상 팬덤 내에서만 반짝 분노로 끝나고 마는 논란에 대해서는 굳이 일일이 공식입장을 내서 이를 알지 못했던 대중에게 공개해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 소속사 관계자는 “대중이 들어도 화가 나는 논란이 있고 ‘그런데 그게 뭐?’ 하는 해프닝이 있는데, 단순 해프닝까지 일일이 공식입장을 낸다면 대중은 ‘소속사가 지레 찔리는 게 있구나’라는 부정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다. 차라리 마이 웨이 하면서 시간이 지나 자연 소멸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SM 정도의 체급을 가진 소속사라면 더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 같은 침묵이 단순한 득실을 떠나 현 상황에서 SM이 취할 수 있는 최선책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소속된 초기 3세대 아이돌의 활약이 이전만큼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SM이 새롭게 론칭하는 걸그룹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출 수 있도록 그 외의 구설을 피하고자 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엔터업계 관계자는 “이전까진 아이돌 업계를 선도하는 입장에 있던 SM이 3세대 후반~3.5세대를 이끌 만한 차기 주자들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JYP는 트와이스-있지로 연타를 쳤고 YG는 블랙핑크의 성공으로 SM을 견제하던 상황”이라며 “특히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빅히트와 YG 등에서도 걸그룹 론칭을 계획하고 있어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다소 늦게 출발한 SM으로서는 신인의 활동 외에 다른 사안에 굳이 힘을 빼야 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