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가인은 ‘미스트롯’에서 “전라도 탑 찍어불고 나왔다”고 말했다가 엄청난 악플을 받았다. 이후 송가인은 “난생처음으로 악플 세례도 받아봤다. 지역감정이 있다는 걸 크게 느꼈다”고 말했다. 사진=MBC 제공
요즘 불고 있는 트롯 열풍의 시발점은 TV조선 ‘미스트롯’이다. 여기서 시작된 열풍이 ‘미스터트롯’을 거치며 규모가 훨씬 커졌다. 지난해 2월부터 시작해 5월 종영 때까지 큰 인기를 불어 모은 ‘미스트롯’은 송가인과 홍자의 라이벌 구도가 흥행 열풍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송가인과 홍자의 고향은 각각 전라남도 진도와 영남권인 울산광역시다.
처음 지역감정의 망령이 등장한 것은 ‘미스트롯’ 방송 초기였다. 송가인이 “전라도 탑 찍어불고 나왔다”고 말한 것을 두고 악플세례를 받은 것이다. 송가인은 ‘여성조선’ 인터뷰에서 당시 일을 언급하며 “난생처음으로 악플세례도 받아봤다. 지역감정이 있다는 걸 크게 느꼈다”고 말했다. 결승을 앞둔 지난 4월 경상도 사천와룡문화제 무대에 선 송가인은 울음을 터트렸다. 송가인은 “노래를 부르다가 울컥했다. 경상도 분들도 사랑을 해주고 계시다는 것에 너무 감사하다. 내 고향이 전라도이고, ‘전라도에서 탑 찍어불고’라고 했던 부분에 지역감정을 많이 표현하시더라. 그게 너무 속상해서 경상도로 행사 오기가 무섭기도 했는데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셔서 너무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이후 말실수도 불거졌다. 홍자는 지난 6월 전라도 영광 법성포 단오제 무대에 올라 “전라도에 행사는 처음 와 본다. (송)가인이가 경상도에 가서 울었는데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전라도 사람들은 실제로 뵈면 뿔도 나 있고, 이빨도 있고, 손톱 대신에 발톱이 있고 그런 줄 알았는데 여러분들이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주셔서 너무 힘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분명 홍자가 하고 싶었던 말의 의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뿔도 나 있고, 이빨도 있고, 손톱 대신 발톱이 있고’라는 표현이 문제가 됐다.
기본적으로는 송가인과 홍자의 발언의 파장으로 지역감정이 표출된 것이지만 트롯보다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특성에서 출발됐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아무래도 자기 지역 출신 참가자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시청자들이 많기 마련인데 송가인과 홍자가 각각 호남과 영남 출신이다 보니 그런 구도가 보다 선명해졌을 것이다. 이런 부분은 ‘미스터트롯’에서도 우려됐지만 ‘톱7’ 가운데 호남 출신이 없다. 만약 우승을 다투던 임영웅(경기 포천)과 영탁(경북 안동)의 고향이 영호남이었다면 송가인 홍자 구도보다 더 극명하게 지역대립 구도가 형성됐을 수 있다.
남진과 나훈아의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모습. 사진=일요신문DB
‘미스터트롯’ 방영 당시 임영웅 영탁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지만 과거 남진 나훈아의 라이벌 구도에는 감히 미치지 못한다. 호남 출신 남진과 영남 출신 나훈아의 라이벌 구도는 지역감정이 트롯이라는 장르에 깊숙이 스며드는 결정적인 계기로 알려져 있다. 추석 연휴 때 방송된 KBS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시청률 역시 전국 기준 29%였지만 부산에선 38.0%, 대구·구미에선 36.9%가 나왔다. 반면 광주에서는 22.4%였다(닐슨코리아 기준).
그렇지만 이들이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 라이벌 구도와 지역감정은 그리 큰 연관성이 없었다고 한다. 남진은 젊은층과 여성 팬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나훈아는 중장년층과 남성 팬의 지지를 받아 지역보다 성별, 연령별 차이가 더 두드러졌다고 한다. 부잣집 도련님 같은 외모의 남진은 소위 꽃미남 계열이었고 남성적이고 서민 풍모의 나훈아는 소위 상남자 계열이었다.
게다가 당시 한국 사회에선 지역감정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하기 전이기도 했다. 그 시절에 이미 지역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1980년대 1990년대를 거치며 지역감정이 극심해진 시기에 비하면 그 당시엔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다. 지역감정보다는 당시 한창 주목받던 야권 정치인 김대중·김영삼과 남진·나훈아의 고향이 일치한다는 점이 라이벌 구도에 다소 영향을 미쳤다.
남진과 나훈아는 전성기 시절이 지난 뒤에도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고 지금도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1980~1990년대를 지나 나훈아는 영남, 남진은 호남을 대표하는 가수로 인식되며 지역감정을 얘기할 때 자주 거론됐다. 결국 출신지로 인해 남진 나훈아의 라이벌 구도가 더 뚜렷해진 게 아니라 이들의 라이벌 구도가 훗날 지역감정에 이용당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이는 더 이상 우리가 트롯을 떠올리며 굳이 지역감정을 함께 얘기할 필요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