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스틸 컷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아이돌 멤버들을 완벽하게 관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연예기획사가 많았다. 매니저들이 따라다니며 멤버 개개인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특히 기자들과의 접촉에 최대한 신중을 기했다. 대기실에 기자들이 자주 방문하곤 했는데 매니저들이 기자들을 마크하며 멤버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했고 인터뷰 때도 늘 매니저가 대동했다.
숙소를 관리하는 매니저를 별도로 두고 멤버들의 숙소 생활도 통제했다. 마치 기숙사 사감 같은 존재였는데, 당시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이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그때 그 시절 얘기를 털어놓곤 한다. 매니저 몰래 숙소를 빠져나왔던 일을 무용담처럼 얘기하는 것인데 그래봐야 숙소 인근 편의점 정도다. 그마저도 인기 아이돌 그룹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생팬들이 숙소 근처에서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결혼한 최성욱 김지혜 부부는 각각 아이돌 그룹 파란과 캣츠 소속으로 데뷔했다. 데뷔 즈음부터 열애를 시작한 이들은 당시 둘 다 숙소 생활을 하고 있어 몰래 숙소를 빠져나와 차량에서 데이트를 즐겼다고 한다. 몰래 숙소를 빠져나오며 마치 잠든 것처럼 보이도록 침대 위 이불에 옷가지 등을 넣어 위장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매니저가 눈치를 채 전화가 오면 숙소 인근 편의점이라고 거짓말을 한 뒤 허겁지겁 숙소로 돌아가곤 했다.
아무리 철저히 감시해도 혈기왕성 멤버들을 완벽히 통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소속사들이 아예 ‘보는 데서 즐기라’고 클럽이나 룸살롱에 데려가 유흥 시간을 배려해주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 불법 안마시술소가 유행하던 시절에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을 주기적으로 불법 안마시술소에 데려간 유명 연예기획사도 있었다. 사실상 불법 성매매를 회사 차원에서 주도한 셈인데 이 역시 일탈을 막기 위한 소속사의 몸부림이었다는 게 당시 연예관계자들의 증언이다.
과거에는 연예인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게 가능하다고 믿는 연예기획사가 많았다. 스케줄 이동을 위해 차량에 오르는 아이돌 그룹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일요신문DB
요즘 들어 갑질 논란이 잇따르는 것은 과거 아이돌에 비해 요즘 아이돌의 인성에 더 문제가 있어서라고 보긴 힘들다는 게 연예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가요계에서 잔뼈가 굵은 한 연예기획사 임원은 “예전에는 스태프 관리를 철저히 했고 스태프들도 괜한 얘기를 하면 업계에서 퇴출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는 과거에 갑질이 더 심했다”며 “몇몇 연예기획사 대표는 아이돌 멤버들을 최상의 상품이라 여겨 철저히 ‘갑’이 되도록 만들고 스태프들은 철저히 ‘을’이 되도록 만들었다. 이처럼 소속 연예인의 갑질을 당연한 문화로 만들던 연예기획사 대표들도 많았다. 다만 당시엔 갑질이란 말이 없었고 누구도 그런 일에 불만을 표하지 못하는 분위기였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소속사들은 언젠가부터 통제를 포기하게 됐다. 요즘 아이돌은 통제한다고 통제되는 세대가 아니고 오히려 누르면 누를수록 일탈할 위험성이 더 크다고 여기게 됐기 때문이다. 숙소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새벽 시간에 몰래 빠져나가 유흥업소에 간 멤버가 술자리에서 시비가 붙어 경찰서에서 매니저에게 연락하는 사건도 종종 있었다.
또 어떤 일이 생기면 언론사와의 친분으로 충분히 기사를 막을 수 있다고 믿던 연예기획사의 행태도 달라졌다. 이제는 누구나 SNS와 각종 온라인커뮤니티를 통해 기자가 될 수 있고 폭로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멤버들을 통제하고 기사를 막는 게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멤버들 개개인의 인성교육은 더욱 중요해졌다. 인성에 문제가 있다면 결국 갑질 등으로 그 실상이 공개되거나 각종 사건사고로 구설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의 탄식이 이어진다. 다음은 한 대형 연예기획사 임원의 하소연 섞인 이야기다.
“인성이라는 게 지수화 돼 측정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닌 데다 인성교육이라는 것도 개개인마다 효과가 천차만별이다. 연예인이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돼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회사의 행보는 인간보다 스타를 만드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다. 또 끼와 개성, 자유로움을 드러내며 스타성을 부각시키는 과정에서 인성교육은 뒤로 밀리는 게 현실이다. 그렇지만 한 번 인성과 관련해 문제가 드러나면 회복이 어려울 만큼 타격이 커 정말 딜레마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