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미래포럼 세미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한민국의 혁신과제와 미래비전’ 강연을 하고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사진=박은숙 기자
안철수 대표는 11월 6일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의원들이 함께하는 연구모임 ‘국민미래포럼’에 강연자로 나서 “야권 재편으로 새로운 혁신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 이유로 “비대위 출범 후 다섯 달 동안 국민의힘 지지율이 거의 상승하지 않았다. 야권이 비호감이니까 (유권자들에)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며 “지금과 똑같은 방법으로 가다가는 내년 보궐선거도 승산이 낮다”고 했다.
안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간담회에서 혁신 플랫폼의 하나로 ‘새로운 정당’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당 창당’ 카드를 내놓은 것이다.
안철수 대표의 야권 재편 발언에 정치권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즉각 “관심 없다”고 일축했다. 이어 “우리 당이 어느 한 정치인이 밖에서 무슨 소리 한다고 그냥 휩쓸리는 정당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국민미래포럼을 주도하는 황보승희 의원도 자신의 SNS에 “야권 혁신 플랫폼, 개혁연대라는 단어와 의미는 좋았다. 정권교체를 위해 범야권이 힘을 모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지금 신당을 창당할 때는 단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과거 ‘안철수계’로 불리던 김근식 국민의힘 송파병 당협위원장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서울시장 후보 야권 후보 단일화, 시민후보 경선 절차 등의 문제제기하는 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갑작스럽게 신당 창당이나 제3지대에서 헤쳐모여를 말하는 것은 뜬금없다고 생각한다”며 “야권 재편 주도권을 안 대표가 갖겠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시기적으로 너무 앞선 이야기”라고 평가했다.
반면 장제원 의원은 자신의 SNS에 “국민의힘 당세만으로는 어려운 정국을 돌파하고 다가오는 보궐선거와 대선에서 승리하기 힘들다”며 “야권 전체는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오로지 혁신과 통합의 길로 나가야 할 때”라고 안철수 대표의 야권 재편론에 호응하는 입장을 밝혔다.
야권 재편 제안이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안철수 대표도 수습에 나섰다. 11월 9일 국민의당 최고위원회의가 끝나고 신당 창당에 대해 “혁신 플랫폼을 말한 것은 범야권의 공동노력 없이는 문재인 정권에 대한 견제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는 절박감 때문”이라고 제안 수위를 낮췄다.
이어 안 대표는 국민미래포럼 주최 국민의힘 의원들에 문자를 보내 “혁신 플랫폼은 느슨한 연대에서 새로운 당 형태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할 수 있다”며 “나는 화두를 던진 것에 불과하고, 다양한 논의를 통해 야권 지지자까지 포함한 집단지성으로 좋은 방향이 잡히기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안철수 대표가 말한 ‘혁신 플랫폼의 다양한 스펙트럼’ 중 가장 현실성이 높은 것은 ‘신당 창당’이 아니겠느냐는 시각이 우세하다. 안철수 대표가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방식이 아닌 외부 단일화를 통한 ‘빅텐트’를 구성하려는 것이라는 풀이다. 하지만 안 대표가 구상하는 제3지대 신당 창당은 회의론이 우세하다. 국민의힘 재선 의원의 말이다.
“빅텐트는 규모를 갖춘 큰 당에서 말하는 것이다. 3석에 불과한 당의 대표가 103석의 제1야당과 함께하자고 하면 하겠느냐. 안 대표가 국민의힘에 들어와야 한다. 우리 당을 몇 년 전 상황으로 보면 안 된다. 현재 지지율이 25~28%까지 올랐다. 민주당이 실정을 많이 해서, 우리 당이 후보를 잘 내면 정권교체도 가능한 단계까지 왔다. 다만 과거와 같은 뚜렷한 대선주자가 없어 어려움을 좀 겪고 있다. 교통정리 잘하면 민주당을 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와중에 제3지대 재편은 엉뚱한 소리라고 본다.”
안철수 대표가 제안한 ‘야권 혁신 플랫폼’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응이 주를 이룬다. 안철수 대표 주도의 야권 통합이 시너지를 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과거 정파를 뛰어넘어 합당했다가 실패한 바른미래당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다.
지상욱 여의도연구원장은 11월 9일 자신의 SNS를 통해 “정치입문 9년 만에 5번 창당”이라며 “많이 쪼그라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야권이라고 모두 통합해야 혁신이 아니다. 혁신 많이 들었는데,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아직도 국민은 이해 못 한다”며 “반문연대해서 주인이 되겠다는 생각만 하는데, 이제 그만하라”고 덧붙였다.
새정치를 표방하며 정계에 입문한 안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국민의당-바른미래당-국민의당’을 창당하고는, 다시 야권 창당을 시도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또 다른 국민의힘 재선 의원은 “처음 정계 입문했을 때와 지금의 안철수 대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이미지는 확연히 다를 것이다. 당세 역시 창당을 거듭하며 줄어들었다”며 “야권 재편을 주장하는 것도 결국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과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고 밝혔다.
11월 6일 서울 마포구 제일라 아트홀에서 열린 ‘서울 시민후보 찾기 공청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사진=박은숙 기자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 당장 평가할 만한 제안은 아니라고 본다. 3석 정당의 대표가 하는 외침이 얼마나 크겠나”라고 평가했다. 다만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안철수 대표가 제3지대를 구축해 본인은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고, 대신 대선주자 선호도 1위를 기록한 윤석열 검찰총장을 밀어준다는 것이다. 신율 교수는 “이런 식이면 야권 개편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제조건은 안철수 대표가 대선을 포기하고 서울시장 후보로 뛴다는 것이다. 과연 안 대표가 그렇게 나올지가 미지수”라고 전했다.
앞서 국민의힘 재선 의원은 이러한 구상의 가능성을 낮게 봤다. 그는 “안철수 대표가 윤석열 총장을 위해 대선을 포기할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윤석열 총장도 정치를 시작하면 본인의 존립을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 돼 정치 못한다고 본다”고 귀띔했다.
국민의힘 일각에서 서둘러 안철수 대표 측과 연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가 내년 4월 보궐선거 출마와 관련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야권 연대를 통해 안 대표가 보수진영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면 차기 대선에 나오기가 어려워 야권 대선주자들 입장에서는 경쟁자가 한 명 줄어든다는 것이다.
최근 야권의 잠재 대선주자 중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앞서있고, 홍준표 무소속 의원과 안철수 대표가 그 뒤를 잇는 것으로 나온다. 실제 안 대표 정치일정은 서울시장 보궐선거보다는 대선에 맞춰져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6일 포럼에서는 “올해 초 귀국할 때 한국이 망가져 가고 있고, 그 책임이 정부여당에 있다고 생각했다”며 “정권교체를 위해 어떤 역할이라도 할 생각”이라고 밝혀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이 제기됐다. 다만 안 대표는 나흘 뒤인 11월 10일 국민대 정치대학원 북악정치포럼 강연 직후 서울시장 출마와 관련해 “언론의 희망사항”이라며 “애써 내 발언을 거부하고 희망사항을 썼다”고 다시 선을 그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