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모 KT 사장이 탈통신을 선언하고 플랫폼 사업자 도약을 천명한 뒤 첫 도전로 딜라이브 인수에 참여했다. 그러나 KT 홀로 참여한 데다 전망이 밝지 않아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KT는 최근 딜라이브 채권단이 진행한 매각 예비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했다. 2018년부터 KT는 딜라이브에 눈독을 들여왔지만 유료방송 합산규제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아 인수 추진 동력을 잃었다. 하지만 올해 케이블TV와 IPTV 등 유료방송 사업자의 시장점유율 규제가 완전히 폐지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KT가 딜라이브 인수에 성공하면 유료방송시장은 완전히 ‘통신 3사’ 중심으로 굳어진다.
통신사들의 잇단 유료방송 인수는 즉각적 이용자 확보에 있다.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더 많은 이용자를 확보해 시장지배적 지위에 올라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 올해 상반기 기준 유료방송 점유율은 각각 KT와 KT스카이라이프를 합쳐 31.52%, LG유플러스와 LG헬로비전을 합쳐 24.91%, SK브로드밴드 24.17%다. 여기에 KT가 딜라이브를 인수하면 시장 점유율이 무려 40%를 넘어 독보적인 1위 자리를 차지한다.
구현모 사장은 KT 수장에 오르기 전 커스터머&미디어 부문장을 맡은 바 있다. KT가 수년간 1위 자리를 지켜온 IPTV 부문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도 딜라이브 인수 결정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딜라이브 인수를 통해 확고한 시장 1위 지위에 올라서면 KT는 확보된 이용자를 바탕으로 추가 투자나 사업을 활성화할 수 있다.
몸집을 불린 유료방송사는 콘텐츠를 제작해 납품하는 방송사들에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현재 유료방송사는 지상파 등 방송사가 제작한 콘텐츠를 이용자들에게 전송하고, 방송사에 비용을 지불한다.
방송업계 관계자는 “지상파를 비롯한 각 방송사들이 제작한 콘텐츠를 유료방송사들이 시청자들에게 내보낼 때는 가입자 수를 기준으로 비용을 책정한다”며 “전송료 협상마다 방송사와 유료방송사 간 의견 차이가 컸는데 몸집이 커진 유료방송사는 그만큼 협상에 나설 때 유리하다”고 평가했다.
통신업계 안팎에서는 몸집만 키우는 유료방송업계 M&A에 부정적인 시각도 감지된다. 딜라이브 인수전이 흥행에 실패한 점을 그 증거로 꼽는다. 당초 딜라이브 인수전에는 통신 3사가 대부분 참여할 것으로 점쳐진 것과 달리 KT만 입찰에 참여했다. 경쟁을 예상하고 인수희망가를 써낸 KT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KT의 딜라이브 인수 희망가격은 8000억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딜라이브 가치가 고평가된 점과 내실이 부족한 점이 인수전 흥행 실패 요인으로 꼽는다. 딜라이브의 가치는 1조 원 수준으로 평가되지만 지난해 부채가 6679억 원에 부채비율이 200%에 달해 다른 유료방송사에 비해 부채비율이 현저히 높은 것이 걸림돌이다.
KT가 딜라이브를 인수해 유료방송업계 확고한 1위로 자리매김할지 관심이 모인다. 사진=일요신문DB
재계에서는 M&A보다 내실다지기에 무게를 두던 구현모 사장의 변심에 주목한다. 구 사장은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던 취임 초기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에게 M&A보다 내실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취임 당시 구 사장은 “KT 임직원 모두는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박스권에 머문 KT 주가 부양이 구 사장의 취임 후 첫 과제였다.
그러던 구현모 사장은 지난 10월, 취임 7개월 만에 연 첫 기자간담회에서 M&A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 통신사를 넘어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로 변화를 천명했다. 통신업계의 성장 정체를 타개하기 위해 ‘탈통신’업으로 변모하고 신사업에 진출해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게 구 사장의 또 다른 숙제다.
KT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지난 2분기 기준 1조 4200억 원 수준이다. 하지만 이 중 8000억 원을 딜라이브 인수에 쓰는 것은 구현모 사장이 밝힌 신사업 진출이나 플랫폼 사업자로 도약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넷플릭스 등 OTT(Over The Top,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서비스) 사업자가 유료방송 대항마로 떠오르면서 경쟁이 격화된 것을 넘어 유료방송사의 위기감마저 감돌기 때문이다.
앞의 방송업계 관계자는 “유료방송 수익성의 바로미터는 홈쇼핑인데 홈쇼핑업체들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유료방송도 비슷한 양상을 띨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딜라이브 인수전에 KT만 참여한 것도 불안한 요소인 데다 당장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라선다고 해도 이미 대세가 되다시피 한 OTT를 상대하기는 쉽지 않다”며 “또 유료방송으로 몸집을 불린다고 해서 카카오나 네이버 같은 플랫폼 사업자가 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