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 초반부터 선두권으로 치고 나가며 우승을 다퉜던 맨시티와 리버풀은 이번 시즌 나란히 순위 싸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맨체스터 시티 페이스북
#혼돈의 프리미어리그
8라운드 일정을 대부분 마무리한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위 팀은 레스터 시티다. 2015-2016시즌 ‘깜짝 우승’을 차지했고 지난 시즌 5위로 선전했지만 1위라는 순위는 예상치 못했던 결과다. 이 뒤를 토트넘 홋스퍼, 리버풀, 사우스햄튼, 첼시, 아스톤 빌라 등이 잇고 있다. 지난 시즌 1~6위인 리버풀,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레스터, 토트넘과 비교하면 사뭇 다른 양상이다.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평가받았던 리버풀과 맨시티는 주요 선수의 부상에 울고 있다. 리버풀은 수비의 핵인 버질 반 다이크(네덜란드)와 큰 기대를 받고 영입한 티아고 알칸타라(스페인)가 부상으로 빠져 있다. 트렌트 알렉산더 아놀드(잉글랜드), 파비뉴(브라질)도 이탈했다. 특히 리버풀 전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핵심 전력인 반 다이크의 부상이 뼈아프다.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돼 시즌 말 복귀조차 불투명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3위를 지키고 있는 것이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정도다.
맨시티는 공격 자원의 부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포’ 세르히오 아구에로(아르헨티나)가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 대체 자원인 가브리엘 제주스마저 리그 7경기 중 5경기에 결장했다. 공격진 공백은 곧 답답한 득점력으로 이어졌다. 지난 시즌 28경기에서 102골로 압도적 공격력을 자랑했던 맨시티는 이번 시즌 7경기에서 10골만 넣고 있다. 20개 팀 중 득점 랭킹 13위 기록이다. 개인 득점 순위 1위인 제이미 바디(잉글랜드), 손흥민(대한민국), 모하메드 살라(이집트) 등에 비교해 단 2골이 많을 뿐이다. 자연스레 리그 순위는 10위에 머무르고 있다.
아스널과 맨유의 부진도 눈에 띈다. 이들은 지난 시즌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휴식기 이후 좋은 모습을 보인 팀들이다. 맨유는 후반기 반전으로 최종 3위를 차지하며 목표를 달성했고 아스널은 FA컵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이들도 현재 각각 11위(아스널)와 14위(맨유)에 머물며 순위싸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프리미어리그는 대부분 팀들이 수비적으로 문제를 겪으며 혼전이 펼쳐지고 있다. 20개 팀 모두 경기당 1실점 이상 기록하고 있다. 리그 최저 실점 기록이 9골에 불과하다. 시즌 일정의 20%가량 지난 현재, 혼전의 원인 중 하나로 무너진 수비가 꼽히고 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양강’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도 동반 부진을 겪고 있다.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오른쪽)도 리그 7경기 3골 2도움으로 예년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3강 체제 무너진 라리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오랜 기간 3강 체제로 이어져 왔다. 엄밀히 따지면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리그를 양분하는 상황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도전해오는 양상이었다. 지난 10년간 바르셀로나와 레알이 리그 우승을 주고받는 가운데 2013-2014시즌 AT 마드리드가 1회 우승을 차지했다.
각 팀들이 7~9라운드 일정을 마친 가운데 라리가는 이 같은 3강체제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바르셀로나는 3승 2무 2패 승점 11점으로 8위, 레알은 4승 1무 2패 승점 16점으로 4위에 머무르고 있다. 선두 레알 소시에다드(6승 2무 1패 승점 20점)에 비해 경기 수가 모자란 것을 감안하더라도 실망스러운 성적이다.
바르셀로나와 레알은 지난 수년간 지속된 문제가 폭발하는 듯한 모양새다. 많은 기대를 받으며 영입된 스타플레이어 에당 아자르(벨기에), 루카 요비치(보스니아), 앙투안 그리즈만(프랑스), 우스망 뎀벨레(프랑스) 등이 여전히 과거의 모습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아자르는 부상 공백 끝에 겨우 복귀했지만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며 지네딘 지단 레알 감독의 속을 썩이고 있다.
양강의 부진은 AT 마드리드에 기회가 되고 있다. 이들은 7경기를 치른 현재 5승 2무로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다. 경기력은 들쭉날쭉하지만 2실점만 허용한 수비력이 꽤 견고하다. 1999년생 유망주 주앙 펠릭스(포르투갈)의 기량이 만개했고 새로 영입된 골잡이 루이스 수아레즈(우루과이)도 기대만큼의 결정력을 보여주고 있다. ‘2강’ 바르셀로나와 레알이 부진한 틈을 타 7년만의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유벤투스 10연패 물거품?
이탈리아 세리에A는 지난 10여 년간 유벤투스의 리그였다. 이전부터 세리에A 1인자였던 유벤투스는 2011-2012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9연패를 달성하며 그 지위를 확고히 했다. 하지만 10연패에 도전하는 이번 시즌, 위기에 봉착했다.
우선 시즌을 불안하게 시작했다. 지난 시즌 리그 우승에 성공한 마우리시오 사리 감독을 내치고 안드레아 피를로를 사령탑에 앉혔다. 세계적 스타플레이어 출신이지만 1군 무대 감독 경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부임 당시에는 지도자 라이선스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피를로 감독은 유벤투스 경기력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리그 7경기에서 단 1패도 내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들쭉날쭉한 경기력으로 무승부가 많다. 리그 3승 4패로 5위에 그치고 있다. 이번 시즌 승격팀이자 현재 최하위인 FC 크로토네와 경기에서도 무승부를 거뒀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이번 시즌 흔들리는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0-2 완패했다.
초보 감독 피를로에게도 변명거리는 있다. 선수들의 부상이 속출하고 있다. 팀 주장이자 수비 중심 조르지오 키엘리니(이탈리아)가 근육에 문제가 있고 ‘간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는 코로나19에 감염돼 공백이 있었다. 호날두와 호흡이 좋았던 미드필더 아론 램지(웨일스) 역시 근육 문제로 팀에서 이탈한 상황이다.
유벤투스가 흔들리는 사이 AC 밀란이 떠오르고 있다. 밀란은 5승 2무 승점 17점으로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스웨덴)가 8골을 넣으며 여전한 감각을 과시하고 있고 프랑크 케시에(코트디부아르), 하파엘 레앙(포르투갈) 등도 힘을 보탠다.
유벤투스에 이어 세리에A ‘넘버2’로 평가받는 밀란은 2010년대 들어 과거의 위용을 잃었다. 2011년 마지막 리그 우승 이후 중위권을 전전했다. 10년여 만에 상위권 싸움을 벌이는 밀란의 선전이 세리에A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강호들 부진 이유는?
유럽 주요 리그에서 우승 후보로 거론되던 구단들이 동반 부진을 겪는 데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먼저 체력적 문제가 꼽힌다. 2019-2020시즌은 코로나19 여파로 유례없는 휴식기를 가졌다. 이에 리그 일정이 후반부로 밀렸고 많은 구단들이 짧은 프리시즌을 거쳐 이번 시즌에 돌입했다. 선수들의 휴식기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번 시즌의 일정이 빡빡한 것도 원인이다. 유럽대항전(챔피언스리그, 유로파리그)에 나서는 상위권 팀들의 경우 어려움이 더욱 크다. 챔피언스리그는 조별리그 일정을 지난 10월 21일부터 11월 5일까지 3주 연속으로 치렀다. 예년에 비해 1주일이 늘어나며 참가팀들은 체력적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A매치 일정도 선수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출입국 문제로 A매치가 치러지지 못했던 아시아와 달리 유럽에서는 A매치가 9월부터 재개돼 쉼없이 진행되고 있다. 짧은 A매치 기간임에도 3경기씩 치르며 선수들의 체력을 갉아먹고 있다. 손흥민 소속팀 토트넘의 무리뉴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들이 선수들에게 배려를 해주길 바란다”는 호소를 남길 정도다.
얼어붙은 이적 시장도 혼전의 이유로 꼽힌다. 강호들의 경우 끊임없는 투자로 전력을 극대화시키지만 지난 이적 시장은 코로나19 영향으로 규모가 예년에 비해 적었다. 영입금지 징계로 자금을 모아뒀던 첼시 정도를 제외하면 큰돈을 투자한 구단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되리라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시즌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안정적 전력을 구축하고 선수층이 두터운 강팀들이 결국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이변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