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연극·영화계 ‘미투’ 폭로의 가해자로 지목됐던 오달수가 경찰 내사 결과 무혐의로 종결된 뒤, 영화 ‘이웃사촌’으로 2년 9개월 여 만에 공식석상에 섰다. 사진=박정훈 기자
11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점에서 열린 ‘이웃사촌’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는 이환경 감독과 배우 정우, 오달수, 김희원, 김병철, 이유비가 참석했다.
정장 차림에 다소 딱딱한 얼굴로 마이크를 잡은 오달수는 “조금 전에 영화를 봤는데 누구보다 마음이 무거웠다”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영화를 보고 나니까 3년 전에 고생하셨던 우리 배우들, 감독님, 그리고 여러 스태프 분들의 노고에 다시 한 번 더 감사하게 됐다”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오달수는 지난 2018년 2월, 과거 극단에서 함께 활동했던 여배우 2명을 성추행 및 성폭행했다는 폭로에 휩싸였다. 당시 오달수는 첫 공식입장문에서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했으나 두 번째 피해자가 나온 뒤에는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모두 저의 잘못”이라는 취지로 두 피해자 모두에게 사과한 뒤 긴 칩거에 들어갔다. 다만 이 사과문에서는 “25년 전(사건 당시) 잠시나마 연애 감정이 있었다고 생각했다”는 표현이 문제가 돼 지적을 받기도 했다. 성폭력 사실 그 자체를 인정해 사과를 한 것이 아닌 당시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발생한 상처에 대한 사과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모두 ‘혐의 없음’으로 지난 2019년 종결됐다. 사건 발생 시기가 1990년대 초였기 때문에 이미 공소시효 기간이 지난 점, 경찰이 내사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소명하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해 내사 종결로 처리된 것이다. 오달수는 이후 연예계 복귀 의사를 밝혔고, 그간 논란으로 인해 개봉이 무기한 미뤄졌던 ‘이웃사촌’의 개봉 결정으로 사실상 완전한 복귀가 이뤄진 셈이다.
배우 이유비, 김병철, 김희원, 정우, 오달수, 이환경 감독(왼쪽부터)이 11일 오후 서울 CGV용산 아이파크몰점에서 열린 영화 ‘이웃사촌’ 언론시사회에 참석했다. 사진=박정훈 기자
이날 ‘이웃사촌’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오달수는 질문에 답할 때마다 말을 고르는 등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는 자신의 공백과 관련한 질문에 “솔직히, 영화가 개봉하지 못했다면 평생 마음의 짐을 덜기 힘들었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영화에서 가족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가 나온다. (논란 후) 그동안 거제도에서 가족들과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그 분들이 항상 제 옆에 붙어 있었다”며 “언젠가는 영화가 개봉할 날만 기도하면서 지냈다. 개봉일이 정해져서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시국은 안 좋지만, 평생 짊어지고 갈 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행이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이웃사촌’에서 오달수는 해외에서 입국하자마자 자택 격리된 예비 대선주자이자 야당 총재 이의식 역을 맡아 그를 24시간 감시하는 어설픈 도청팀장 대권 역의 정우와 호흡을 맞췄다. 코미디 영화의 ‘천만 요정’으로 그를 기억할 대중들에겐 다소 생소하게도, 웃음과 함께 진지함을 다 잡은 무거운 캐릭터로 변신해 극의 중심에 서 있다. 오달수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진중함이 이 영화에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사진=‘이웃사촌’ 스틸컷
이날 기자간담회에 함께한 정우는 “대본에 나온 캐릭터가 처음에는 굉장히 냉철하고 차갑고, 가정에선 굉장히 딱딱하고 가부장적인 캐릭터인데 옆집 이웃을 통해 조금씩 사람 냄새 나는 인물로 변해간다. 그 모습들의 (변화) 폭이 크다”며 “그래서 처음과 마지막엔 아예 갑옷을 벗은 듯한, 사람 냄새 나는 그런 인물이 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배우는 카메라 앞에 서면 외롭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혼자 맞서야 하는 순간이 이번 작품을 찍을 때도 꽤 있었는데,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했다. 제 마음을 이해해주는 오달수 선배님, 현장에 가면 언제나 받아주는 김희원 선배님, 같이 어깨동무하는 김병철 형까지.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감독님이 있었다. 제게 정말 큰 힘을 주셨다”며 출연진과 제작진 모두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오달수 역시 이 같은 칭찬에 “지금까지 같이 연기를 해 본 배우들 중에서 정우 씨처럼 열심히 하는 배우를 잘 못 봤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하나 싶을 정도였다. 감정도 너무 풍부하고, 정말 좋은 배우”라며 그를 치켜세웠다.
이들에 더해 ‘이웃사촌’에는 악역으로 익숙한 김희원이 또 다시 동정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악역으로 분해 대중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있다. 안정부 소속 김 실장으로 분한 김희원은 “블랙 코미디 느낌을 원했는데, 어떻게 하면 악당이 웃길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며 “악하면 악할수록 웃기겠다 생각했는데 너무 악하게만 한 게 아닌가 싶다. 최대한 악해 보이려는 부분에 최대한 집중한 것 같다”며 악한 연기의 1인자로서의 면모를 뽐내기도 했다.
한편, 영화 ‘이웃사촌’은 가택 연금 중인 예비 대선주자와 그의 옆집으로 위장 이사를 와서 낮이고 밤이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정부 소속 도청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1280만 관객의 선택을 받았던 ‘7번방의 선물’ 이환경 감독과 제작진이 7년 만에 재회해서 선보이는 영화로 지난 2018년 촬영 마무리 단계에서부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130분, 12세 이상 관람가. 11월 25일 개봉.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