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15일 제99차 국제노동총회 참석차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한 임태희 노동부 장관. 연합뉴스 |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7월 8일 임태희 대통령실장 내정 직후 가진 브리핑에서 “대통령실장 후보로 그동안 여러 명이 언론에 거론됐지만 처음부터 ‘임태희냐, 아니냐’의 게임이었다”고 말했다. 이 수석은 “국민소통, 서민친화라는 이번 조직개편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인선으로, 중도실용·친서민정책을 이끌 적임자로 판단했다”며 “50대 젊은 실장의 발탁으로 국민이 원하는 변화의 목소리를 반영해 활력 있고 생산적으로 대통령실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대통령실장 인선 과정에서 정통 경제관료 출신의 전문성과 행정경험, 3선 의원으로서의 의정 경력, 고용노동부 장관과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등을 지낸 경륜, 야당이나 친박계로부터도 큰 거부감이 없는 온건하고 합리적인 성품 등을 높이 평가했다는 후문이다. 여기에 임 내정자가 이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과 당선자 시절 두 차례에 걸쳐 비서실장을 맡아 무난하게 일처리를 해 온 점 등 두터운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다는 점에서 집권 후반기 권력누수를 막아 줄 구원투수로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가 5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여권 내 세대교체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고, 자연스런 인적쇄신으로 청와대 참모진을 보다 젊게 구성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임 내정자는 발탁 소식을 접한 직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대통령을 뵙고 실장직을 맡아서 수행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대통령실장으로서 국민의 마음을 국정에 반영하는 역할을 하겠다. 정치적 갈등 요소는 그 나름대로 국민의 귀로 듣듯이 충분히 국정에 반영되도록, 그런 역할을 대통령을 보필하면서 하겠다”고 다짐했다.
▲ 지난 5월 18일 국무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이명박 대통령과 임 장관. 연합뉴스 |
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도 그는 여당의 첫 정책위의장을 맡아 당정을 잘 이끌어왔다는 평을 받았다. 또 개각 요인이 발생할 때마다 ‘정치인 입각’ 1순위로 꼽혔다. 새 정부 출범 당시에는 초대 대통령실장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 장관 재임 시절에는 노동계의 13년 동안 묵은 과제인 타임오프제(유급근로시간 면제제도)를 해결해 정치력도 검증 받았다. 지난해에는 북한 쪽 인사들과 싱가포르에서 접촉을 가지면서 남북 정상회담을 조율하는 등 남북 문제에도 깊이 관여할 정도로 이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다.
임 내정자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외부적으로 중립을 표방해 온 만큼 ‘이명박 캠프’ 출신이 아니다. 일찌감치 대세론을 형성한 이 대통령이 당 후보로 확정된 이후 합류했다는 점에서 개국공신도 아니다. 하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능력으로 당내 신주류로 급부상했다. ‘여의도식 정치’를 싫어하는 이 대통령의 성향에 부합하는 인물인 셈이다. 그는 범친이계 주류로 분류되면서도 정치색이 무색무취해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거부감 이 없는 인물로 꼽힌다. 그가 이명박 정부에서 잇따라 요직에 중용되고 있는 배경에는 개인적인 성향뿐 아니라 한나라당이 1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루면서 인재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현실론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험한 야당 생활을 감내해야 했던 한나라당 인사들은 마땅한 행정경험, 국정운영 경험 등을 쌓을 기회가 없었다. 마침내 정권교체를 이룩했지만 전문성을 갖춘 새로운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이 대통령의 멘토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필두로 한 이른바 ‘올드 그룹’이 이명박 정부의 중심축으로 우뚝 서게 된 것도 이러한 현실론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 지난해 11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통령 시정연설에서 박근혜 전 대표와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위). 2008년 8월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석한 이상득 의원이 임태희 정책위의장에게 말을 걸고 있다. |
여권 소장파의 한 관계자는 “임 내정자가 능력과 인품을 갖추기는 했지만 윗사람에 대한 처신도 뛰어나다. 모나지 않은 성품에 윗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이 좋으니 대통령에 대한 쓴소리를 할 수 있겠느냐”며 “그런 점에서 소장그룹에서 ‘임태희 카드’에 대해 일부 반대가 있었다”고 전했다.
또 이명박 캠프 출신의 한 인사는 “임 내정자가 인수위 시절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을 맡으며 소장파의 목소리나 비판을 차단해 ‘이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것만 보고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고 말했다.
임 내정자는 대통령 인선 과정에서 자신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자 적잖은 고민을 했다는 후문이다. 무엇보다 정치인의 생명줄이라 할 수 있는 의원직을 던져야 하는 승부수를 띄워야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의 지역구가 한나라당의 노른자위인 경기도 성남 분당 을이라는 점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무위원인 장관은 국회의원직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지만 청와대 참모는 의원직을 겸직하지 않았던 게 관례였다. 청와대에서도 “청와대 정무직에 임명되면 당적은 보유할 수 없지만 의원직 유지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억지에 불과했다. 법적으론 하자가 없다고 하나 헌법에서 규정한 삼권분립 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실례로 김영삼 정부 시절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나 김대중 정부의 한광옥 전 민주당 최고위원 역시 대통령실장 임명과 동시에 곧바로 의원직을 사퇴한 바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문희상 대통령실장의 국회의원 겸직에 대해 한나라당이 적극 반대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문 의원을 2003년 정권 출범에 맞춰 초대 실장으로 내정했고, 문 의원은 법 규정에 따라 의원직을 겸하겠다고 주장했지만 한나라당은 “대통령과 행정부에 대한 견제가 국회 본연의 임무라는 점에서 사퇴해온 것이 관례”라고 압박했다. 이에 문 의원은 자리에 앉은 지 열흘도 채 안돼 결국 의원직을 포기했다.
이러한 과거 전례 때문에 임 장관이 대통령실장에 발탁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는 소문이 여권 핵심부 주변에서 나돌았다. 대신 여권의 쇄신 차원에서 ‘젊은 총리론’이 부상하면서 ‘임태희 총리설’이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여권 핵심 인사들이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의원직을 과감히 던져달라”고 설득하자 결국 임 내정자가 결심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임 내정자는 대통령실장 발탁 소식을 접한 뒤 이 대통령에게 ‘이명박 정권의 성공을 위해 올인하겠다’는 취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그의 이러한 희생과 과감한 결단이 이 대통령의 신임을 더욱 두텁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신임 대통령실장이 확정됨에 따라 후속 수석비서관 인사는 이 대통령이 임 내정자와의 협의를 거쳐 이번 주 중에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14일 한나라당 전당대회 이후에 수석비서관 인사가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50대의 젊은 대통령실장이 발탁된 가운데 청와대 참모진의 쇄신과 개편 작업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또 다른 관전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최영일 언론인
‘논 팔아 밭 팔아 공부시킨 아들’
임태희 신임 대통령실장 내정자는 올해 54세로 경기도 성남 판교 출생이다.
그는 유년시절 몇 가구 되지 않는 마을에서 수재로 불리며 자랐다. 지금은 분당과 판교 개발로 땅값이 크게 올랐지만 임 내정자가 자랄 때는 그저 그런 농촌에 불과했다.
그는 사석에서 가끔 “부모님이 논 팔고 땅 팔아 자식 공부시켰다. 대학에 진학한 고향 친구들이 손을 꼽을 정도지만 그때 대학 안가고 고향에서 농사짓던 친구들은 떼부자 됐다”는 우스갯소리를 들려준다고 한다.
임 내정자는 서울 경동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행정고시 24회에 합격한 뒤 1985년부터 재무부에서 근무했다. 2000년 총선 때 재경부 산업경제과장을 끝으로 공무원직을 사직한 후 한나라당 후보로 경기도 성남 분당 을에서 당선됐다. 임 내정자의 정계 입문에는 민정당 대표를 지낸 권익현 전 의원의 권유와 역할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회의원이 된 후에는 국회 정무위·재경위 등에서 활동하며 ‘정책통’으로 불렸다. 대변인, 제2정책조정위원장, 여의도연구소장, 최병렬 당 대표 비서실장 등을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는 당으로 돌아가 정책위의장을 지낸 뒤 지난해 9·3 개각 때 입각, 고용노동부 장관에 임명됐다. 임 내정자는 1998년 6월부터 1999년 10월까지 청와대 경제비서실에서 금융담당 행정관으로 일한 적도 있다. 11년 만에 행정관에서 대통령실장으로 컴백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