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오달수가 다시 대중 앞에 섰다. 과거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돼 논란을 빚은 지 햇수로 3년 만이다. 2018년 두 명의 여성으로부터 성폭력 피해 주장 고발에 연루된 그는 두 번의 사과문을 발표한 뒤 모든 활동을 멈췄다. 한때 한국영화 1000만 흥행작에 빠짐없이 출연하면서 ‘1000만 요정’이라는 영광스러운 별칭까지 얻은 인기 배우에게 닥친 최악의 위기였다.
두문불출하던 오달수가 11월 25일 개봉하는 영화 ‘이웃사촌’으로 복귀한다. 11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언론·배급시사회에 3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언젠가 영화가 개봉하기를 기도하면서 지냈다”고 담담히 말했다. 사진=박정훈 기자
두문불출하던 오달수가 11월 25일 개봉하는 영화 ‘이웃사촌’(감독 이환경·제작 시네마허브)으로 복귀한다. 개봉에 앞서 11일 오후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언론·배급시사회에 3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언젠가 영화가 개봉하기를 기도하면서 지냈다”고 담담히 말했다. 배우 인생에 닥친 절체절명의 사건, 그에 따른 오랜 공백을 보냈지만 오달수의 모습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침착했다.
‘이웃사촌’은 주연인 오달수가 성폭력 피해 고발 운동인 ‘미투’(Me too·나도 당했다)에 휘말리면서 기약 없이 개봉이 연기돼 왔다. 함께 주연한 배우 정우도 뜻하지 않게 공백을 가져야 했다. 더욱이 영화는 1980년대 배경 시대극인 만큼 제작비도 만만치 않다. 마케팅 비용 등을 제외한 순 제작비가 약 80억 원으로 알려져 있다. 오달수가 시사회 자리에서 “평생 짐을 덜 수 있게 됐다”고 입을 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3년의 칩거…“거제도에서 가족과 농사”
오달수는 2018년 세상을 바꾼 미투에 연루됐다. 먼저 온라인 게시판 댓글로 피해 주장한 A 씨는 ‘1990년대 부산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또 다른 연극배우 엄 아무개 씨가 직접 생방송 뉴스에 출연해 얼굴을 공개하고 피해 사실을 고발해 논란은 일파만파 커졌다. 엄 씨는 “2003년 서울의 한 모텔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인터뷰했다.
당시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미투 운동은 확산했다. 영화감독 김기덕이 과거 영화 촬영 현장과 준비 과정에서 여배우들을 향해 벌인 성폭력 사건에 대한 폭로가 잇따랐고, 배우 조재현과 유명 연극연출가 이윤택 등도 피해자들의 고발에 직면했다. 이른바 ‘미투 연예인’ ‘미투 예술인’ 등 낙인도 따랐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가운데 오달수는 신중하게 과거 상황을 되짚은 끝에 두 차례 입장을 밝혔다.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했지만, 자신의 말이 변명이 되는 상황을 “준엄한 질책으로 받아들이고 책임은 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오달수는 칩거한 3년 동안 거제도에서 가족과 농사를 짓고 살았다고 밝혔다. 논란에 휘말린 초기에 가족이 있는 고향 부산으로 내려가 생활하다 이내 터전을 거제도로 옮긴 그는 “농사를 짓는 동안 그분들이(가족) 항상 제 옆에 붙어 있었다”며 “제가 생각을 많이 할까 봐 그랬던 것 같다”고 돌이켰다. “단순한 생각을 하려고 농사를 지었다”는 게 오달수의 설명이다.
피해자 고발로 법적 처분을 받거나 재판이 진행 중인 몇몇 미투 연루자들과 달리 오달수는 성폭력 여부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혐의가 밝혀지지 않았다. 관련 사안을 내사하고 있던 부산지방경찰청은 2019년 오달수 사건에 대해 벌이던 내사를 종결했다.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방송 등 언론매체를 통해 사건을 인지한 경찰은 피해 사실 소명 등이 명확하지 않아 조사를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웃사촌’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가택 연금된 정치인의 집 바로 옆에 정보기관 도청팀이 위장 이사를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진=영화 ‘이웃사촌’ 스틸 컷
#오달수의 복귀…대중도 응할까
오달수는 미투에 연루돼 한창 곤혹을 치른 직후인 2019년 2월, 최민식과 설경구 등이 소속된 씨제스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다. 10년여 동안 몸담은 소속사를 떠나 대형 엔터테인먼트사로 옮긴 그는 경찰의 내사 종결 사실이 알려질 무렵 조용하게 연기 복귀를 타진했다. 그 출발이 독립영화 ‘요시찰’이다. 촬영에 나서는 오달수에 대해 씨제스엔터테인먼트는 “오달수는 그 동안 공인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긴 자숙의 시간을 보내왔다”며 “경찰청으로부터 내사 종결을 확인했고 혐의 없음으로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오달수가 주연을 맡아 촬영을 마쳤지만 미투 연루로 개봉 시기조차 정할 수 없었던 영화 ‘이웃사촌’과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의 움직임도 재개됐다. 문제 제기와 논란이 있을 뿐 진실에 대해서는 어느 것도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론은 갑론을박이다.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는 ‘옹호론’과 더불어 그 반대의 시선도 엄연히 존재한다.
시험대에 오른 ‘이웃사촌’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가택 연금된 정치인의 집 바로 옆에 정보기관 도청팀이 위장 이사를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허구의 이야기임을 강조했지만 시대 배경과 상황, 설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고 김대중 대통령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 영화평 가운데 김대중 대통령 실화 모티프라는 반응도 주를 이룬다. 엄중한 이야기를 따뜻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로 관객의 평가를 받게 된 오달수는 “행운이 있고, 불행이 있고, 다행이 있다”는 말로, 영화와 그가 처한 상황을 빗대 설명했다.
복귀를 시도하는 오달수와 달리 비슷한 시기 미투 고발로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배우 조재현은 여전히 칩거하고 있다. 2018년 2월 일반인과 스태프, 연기자 지망생 등으로부터 잇따라 성폭력 피해로 고발당했다. 심지어 오랫동안 함께 영화를 작업한 김기덕 감독의 성폭력 사건에도 그의 이름은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조재현이 서울 대학로에 소유하고 있던 건물은 매각됐고, 활발히 활동하던 공연제작사도 사실상 폐업한 가운데 가족과도 왕래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