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관련 산업부 수사를 담당하는 이상현 대전지검 형사5부장은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수사팀에 투입돼 윤석열 총장(사진)과 처음 호흡을 맞춘 이후 윤 총장 측근으로 분류된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례적으로 움직인 대전지검
대전지검 형사5부(이상현 부장검사)는 11월 5일과 6일, 이틀에 걸쳐 정부세종청사 내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한국가스공사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이 이번에 보고 있는 혐의는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이다. 이 밖에도 월성 1호기 관련 감사원 감사 전후로 이뤄진 산업부의 증거 인멸도 수사 대상이다.
검찰 수사 의지는 상당하다. 일단 수사 주체부터가 ‘특수부’ 성격으로 볼 수 있다. 이두봉 대전지검장은 윤석열 총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특수통 인사다. 2018년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할 당시 중앙지검 1·4차장으로 함께 일했고, 윤 총장 취임 이후에는 대검 과학수사부장으로 임명되며 ‘윤석열 측근’으로 꼽혔다.
사건이 배당된 형사5부는 특수부가 없는 대전지검에서 공공·반부패범죄사건을 전담하는, 사실상 특수부다. 사건 수사 실무 책임자인 이상현(사법연수원 33기) 대전지검 형사5부장도 윤 총장 측근이라 볼 수 있다. 2013년 서울중앙지검 평검사로 재직할 당시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수사팀에 투입돼 윤 총장과 처음 호흡을 맞췄고,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을 이끌 당시에는 중앙지검 공안2부 부부장으로 일했다. 2019년 8월부터 울산지검 공공수사부장으로 재직하며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을 맡아 수사한 경험도 있다.
고발장 접수부터, 압수수색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국민의힘이 대전지검에 고발장을 접수한 날은 10월 22일이다. 1주일 뒤인 29일 윤석열 총장이 대전지검을 방문했다. 그리고 11월 5일 대전지검은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의 주무부처인 산업부와 원전 사업자인 한수원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국민의힘이 고발한 대상은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등 관련자 12명이다. 감사원은 11월 20일 월성 1호기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수원과 산업부가 판매 단가, 이용률, 인건비, 수선비 등 평가 변수를 조정해 경제성을 낮게 평가했다”고 판단했는데, 이 과정에서 산업부 관계자들이 감사 당일 새벽 정부세종청사 사무실에 들어가 관련 자료 444건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따로 검찰 고발을 하지 않았지만 백운규 당시 산업부 장관을 비롯한 문책 대상자 4명 자료를 ‘수사 참고 자료’로 검찰에 넘겼고, 국민의힘은 이를 대전지검에 고발했다.
청와대도 함께 겨누고 있다. 이번 산업부 압수수색 대상에는 당시 청와대에 파견 나갔던 직원 2명도 포함됐는데, 대전지검 형사5부는 11일에 월성 원전 폐쇄 관련 업무 책임자 중 1명인 산업부 국장급 직원을 직권남용 등 혐의 피의자로 불러 진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감사원은 감사에서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가 나오기 전 백운규 전 장관이 가동 중단을 결정했다’는 취지의 내용도 확인해 검찰에 넘겼는데, 검찰은 청와대나 백운규 전 장관 등이 한수원 이사회의 원전 폐쇄 의결 과정에 얼마나 개입했는지를 확인할 방침이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고발장이 대전지검에 제출되자마자 곧바로 압수수색이 시작된 점, 감사원의 방대한 자료를 이미 검토하고 시작한 점 등을 감안할 때 수사는 속도전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당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대해 ‘칼날’을 들이댄 윤석열 총장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경제성 평가’라고 하는 정량적인 평가를 어떻게 ‘불법’이라고 쉽게 재단할 수 있겠냐는 지적이 나온다. 추미애 장관은 “윤석열 총장이 원전 수사로 정치 야망을 드러냈다”고 비판했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정치 수사이자 검찰권 남용”이라고 규정하고 “검찰은 위험하고 무모한 폭주를 당장 멈춰주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추미애 장관(사진) 라인으로 분류되는 이성윤 지검장이 이끌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은 윤석열 총장 부인 김건희 씨 관련 사건을 옛 특수2부에 해당하는 반부패수사2부에 배당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특수부 재배당으로 놓은 맞불
대전지검이 윤석열 총장의 ‘칼’로 움직이고 있다면, 서울중앙지검은 추미애 장관의 ‘칼’ 역할을 하며 윤 총장을 겨누고 있다. 추미애 라인으로 분류되는 이성윤 지검장이 이끌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은 윤 총장 부인 김건희 씨 관련 사건을 옛 특수2부에 해당하는 반부패수사2부(정용환 부장검사)에 배당했다. 반부패수사부는 ‘배당하면 무조건 기소한다’는 원칙이 있는 곳으로 “어떻게든 처벌하겠다”는 추미애 장관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이다.
검찰 관계자는 “원래 형사6부에 있던 사건 가운데 일부도 특수부에 해당하는 반부패수사2부에 재배당했다는 것은 ‘문제가 될 만한 소지의 범죄는 모두 확인해 어떻게든 처벌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라며 “다만 반부패수사2부 안팎에서 재배당에 반대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등 이성윤 지검장이 서울중앙지검을 확실하게 장악했는지는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실제 수사 초반 흐름은 좋지 않다. 검찰은 11월 9일 윤 총장 부인 김건희 씨가 대기업에서 부당한 협찬을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모두 기각했다. 결국 검찰은 11일 과세당국으로부터 회사 과세자료를 확보해야 했다. 윤석열 총장은 추미애 장관의 수사권 지휘 발동으로 해당 사건의 지휘 및 보고에서 배제된 상황이다.
앞선 검찰 출신 변호사는 “대전지검은 이두봉이라는 윤석열 라인의 특수팀이, 서울중앙지검은 이성윤이라는 추미애 라인의 특수팀이 각각 서로를 겨누고 수사를 하는 셈”이라며 “결국 수사 흐름과 결과, 또 이에 대한 여론의 평가가 검찰 대 법무부, 여권 세력으로 대표되는 갈등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지 않겠느냐”고 평가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