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그룹이 포스코케미칼을 통해 2차전지 소재에 1조 원을 투자하기로 하면서 비철강 사업을 강조했던 최정우 포스코 회장의 연임을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최정우 회장이 취임 직후인 2018년 7월 말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포스코케미칼은 지난 6일 이사회에서 주주 배정 후 일반공모 방식으로 1조 원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최대주주 포스코(지분 61.3%)는 지분 전부에 대한 신주 청약을 통해 5400억 원을 출자하고, 포항공대와 우리사주조합 등도 특수관계인으로 참여한다. 자금은 광양 양극재 생산설비 증설 등 시설 투자(6900억 원), 흑연과 리튬 등 원료 확보(1600억 원), 유럽 양극재 공장 건설(1500억 원)에 사용한다. 2030년까지 양극재는 현재 4만t(톤)에서 40만t, 음극재는 4만 4000t에서 26만t까지 생산량을 늘려 글로벌 MS 20%와 매출액 연 23조 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포스코케미칼은 2차전지에 들어가는 음극재 양극재 분리막 전해질 중 음극재와 양극재를 생산해왔다. 2010년 포스코켐텍이 LS엠트론의 음극재 사업부를 인수해 소재 시장에 진출했고, 2011년 포스코ESM를 설립해 양극재 사업에 나섰다. 작년 4월 포스코켐텍이 포스코ESM을 흡수합병하면서 지금 형태가 됐다. 최근 각국 친환경 장려책과 전기차 고성능화로 세계 전기차 시장이 커지고 배터리와 소재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생산능력을 확대한다는 설명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철강업은 세계적 공급과잉 상태고 수요산업인 조선업은 건조량이 줄고 완성차산업도 차 판매량이 감소하고 있다. 건설업에서도 선진국 대부분 인프라가 깔려 있기에 철강 수요가 줄면서 전망이 좋지 않다”며 “이번 투자는 비철강에 집중하기로 방향을 정한 것”이라고 봤다. 이어 그는 “양극재, 음극재에 리튬까지 밸류체인을 일관화한 기업은 드물기에 경쟁력 있다”며 “LG화학 수주를 따면서 기술력은 어느 정도 확보했으니 케파(생산량)까지 늘리면 점유율은 빠르게 높아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포스코케미칼은 올 1월 LG화학과 2조 원 규모의 양극재 공급 계약을 맺었다.
다만 철강업 불확실성은 소재사업에서 리스크로 지목된다. 캐시카우인 철강업 현금력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 많은 업체들이 배터리사업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심화한 탓에 소재의 부가가치가 높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시장 선점을 위해선 투자가 지속돼야 하기에 본업 사이클이 굉장히 악화할 경우 부담일 수 있다”며 “중국 업체들이 빠르게 따라와 저가에 대량으로 밀어붙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고 했다.
포스코케미칼 기술력이 다른 업체들이 비해 떨어진다는 점도 극복해야 할 문제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주요 배터리 제조사들은 에너지 밀도를 높이고자 음극재를 흑연 대신 리튬금속으로, 전해질을 액체 대신 고체로 대체하는(전고체 배터리) 등 미래 소재 개발에 한창이다. 포스코케미칼도 기존 NCM(니켈·코발트·망간)에 알루미늄을 넣은 NCMA 양극재 개발을 최근 완료했다. 현재 양산을 위한 생산라인 증설 중으로, 2023년부터 LG화학 수주에 맞춰 생산에 나서기로 했다. 다만 NCM와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를 모두 생산 가능하고, NCA 분야에서는 세계 MS 2위인 에코프로비엠에 뒤처진다는 평가다. 음극재도 차세대 배터리가 상용화하면 포스코케미칼이 생산하는 흑연 음극재 수요는 줄어들 수 있다.
글로벌 MS도 높지 않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음극재는 2018년 출하량 기준 일본 히타치(점유율 14%)가 1위고 중국 업체들이 뒤를 이었으며 포스코케미칼은 8위(5%)에 그쳤다. 양극재도 에코프로비엠이 10위(4.1%)로 국내 기업에서 유일하게 순위권에 들었다. 매출에서도 양극재만 비교했을 때 포스코케미칼은 2분기 누적 998억 원으로, 에코프로비엠(3576억 원)의 4분의 1 수준이다. 포스코케미칼의 음극재 매출은 더 적은 817억 원이다.
한 배터리업체 관계자는 “그간 지속적으로 사업을 해왔음에도 기술력과 매출, MS 차원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가능성만 제시하기보단 결과물을 내야 한다”며 “케파보다 차세대 소재를 개발해내는 기술력이 중요하다. 기술을 갖춰야 수주를 따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이익률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배터리업계 다른 관계자는 “국내 배터리업체가 많아 수주에 유리하고 포스코는 대기업으로 재무구조가 탄탄해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포스코그룹이 포스코케미칼을 통해 2차전지 소재에 1조 원을 투자하기로 하면서 그 배경과 전망에 관심이 쏠린다. 사진=일요신문DB
한편, 이번 투자는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 최정우 포스코 회장의 연임용 포석으로도 읽힌다. 최 회장은 2018년 포스코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비철강 사업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강조해왔다. 취임 100일을 맞은 2018년 11월에는 2030년까지 포스코 철강, 비철강, 신사업 수익비중을 각각 40%, 40%, 20%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그러나 배터리 신사업이 최정우 회장 연임에 기여할지는 의견이 갈린다. 신사업들이 그룹 성장을 견인할 만큼 크지 못했고 수치적으로 최 회장 임기 내 실적이 유독 나빴다. 포스코는 지난 2분기 별도 영업손실 1085억 원으로 사상 첫 적자를 기록했다.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부터 살펴봐도 철강을 비롯해 종속기업들 실적까지 반영된 포스코 연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64조 3668억 원, 3조 8689억 원으로 2018년(매출 64조 9778억 원, 영업이익 5조 5426억 원)보다 줄어들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배터리업체도 아니고 거기 납품하는 소재에 투자한다는 점에서 포스코의 기업 향방이나 사업구조를 바꿀 정도의 변화를 일으키진 못할 것”이라며 “최 회장은 임기 내 비철강 사업을 제대로 못 만들어냈다. 2차전지에서 차세대 소재로 앞서거나 철강 부문에서 특수강 전문 기술을 보유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포스코는 지난 10년간 사업다각화는 물론 세계로 생산기지를 확장하는 데도 실패했다”며 “그룹 차원의 비전도 좋다고 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노동조합의 반대도 난제다. 2019년 포스코 제철소에서 총 폭발과 화재, 노동자 사망 등 5번의 사고가 발생했고, 올 6월과 7월에도 화재 및 사망사고가 터지면서 내부 불만이 적지 않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지회 관계자는 “설비 보강 등 본업에 투자해야 실적이 좋아지고 안전문제가 해결되는데 제철소에서 번 돈으로 해외사업만 벌였고 성공도 못했다”며 “최 회장은 ‘기업시민’이란 공존 공생 가치를 내걸었으나 보여주기식에 그칠 뿐 가장 가까이에 있는 시민인 노동자들조차 챙기지 않았다. 연임에 나선다면 반대하겠다”고 강조했다.
포스코 측은 “2분기 적자는 코로나19 영향일 뿐 1분기 만에 흑자 전환했고, 12년간 세계 철강업 1위를 지키면서 신사업에도 꾸준히 투자해왔다”며 “배터리 소재는 단기간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인프라를 까는 것 자체가 괄목할 만한 성장”이라고 반박했다. 포스코케미칼 측도 “배터리가 차세대로 넘어가도 현재 생산하는 양극재는 동일하게 쓰일 것이고, 음극재도 실리콘과 리튬금속 소재를 개발 중”이라며 “설비 증설로 양산능력을 확대해 MS를 높이겠다”고 자신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