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1월 1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과 손을 들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대전지검이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등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자 여권은 일제히 총공세에 나섰다. 전·현직 법무부 장관들과 대립각을 세워왔던 윤석열 총장이 사실상 청와대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서까지 칼을 겨눈 것이란 판단에서다. 여당 지도부는 “무모한 폭주를 멈추라(이낙연 대표)”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구태(김태년 원내대표)”와 같은 검찰 비난 발언들을 쏟아냈다. 추미애 장관은 “정치적 목적이 있다”면서 윤 총장을 향해 “차라리 사퇴하고 정치를 하라”고까지 했다(관련기사 산업부 뒤 청와대 겨냥? 대전지검 ‘탈원전 특별수사’ 막후).
여권에선 윤 총장이 10월 22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퇴임 후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이후 사실상 정치행위를 하고 있다고 규정한다. 10월 29일 윤 총장의 대전지검 방문, 11월 3일 법무연수원 강의에서의 “살아있는 권력 수사” 발언 이후 대전지검이 전격 수사에 나선 것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한다. 수사가 국민의힘 고발에 의해 시작됐고, 수사를 지휘하는 이두봉 대전지검장이 ‘윤석열 사단’으로 꼽히는 검사라는 점에도 불신을 보낸다.
그러자 여권에선 윤 총장 경질론이 빠르게 확산 중이다. ‘조국·추미애 정국’ 때만 하더라도 검찰총장 임기가 아직 남았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견해가 주를 이뤘지만 지금은 기류가 변했다. 실제 11월 7~8일 사이 몇몇 친문 인사들은 노영민 비서실장 등에게 윤 총장 해임을 건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전지검이 원전1호기 관련 수사를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11월 5일)한 지 약 이틀 후의 일이다.
한 친문 재선 의원은 “검찰총장은 선거 중립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자리인데 내년 4월 재보궐 선거와 차기 대선을 어떻게 맡기느냐”고 반문하면서 “윤 총장은 지금 대놓고 대권 행보를 하고 있다. 공무원으로서 상당히 부적절하다. 이젠 경질해도 아무런 문제도 없고, 부담도 없다”고 했다. 친문 초선 의원도 “윤 총장은 지금 수사가 아닌, 선거 운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윤 총장은 ‘피해자 코스프레’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본인이 물러나는 것보단 문 대통령이 해고해주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10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윤 총장에 대한 여권의 전방위 압박 수위가 한층 거세졌다는 점은 이런 배경에서 읽힌다. 특히 추 장관 측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추 장관은 대검찰청 국정감사 도중 윤 총장의 라임 연루 검사들 봐주기 의혹에 대한 감찰을 지시한 바 있다. 그 이후 추 장관은 윤 총장 특수활동비에 의문을 제기하고 공식석상에서 “정치적 야망을 드러냈다”라고 하는 등 연일 공세를 가했다. 윤 총장이 특정 언론 사주와 만났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엄중 판단할 것”이라며 감찰을 시사하기도 했다.
추 장관 취임 후 현 정권 성향 검사들로 진용을 꾸린 것으로 평가받는 서울중앙지검은 윤 총장 일가 사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옛 특수부에 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부2부가 윤 총장 부인, 형사 6부가 윤 총장 장모 건을 맡아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검찰총장 일가를 향한 이런 수사는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 정도 수사 인력이 매달렸다는 것을 감안하면, 빠른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점쳐진다. 법무부 감찰 및 서울중앙지검 수사 등에서 일정 부분 혐의가 드러날 경우 윤 총장이 버티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주를 이룬다.
이를 두고 검찰 안팎에선 조국 수사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앞서의 친문 재선 의원은 “윤 총장이 조국 때 어떻게 했느냐. 부인부터 시작해 사돈의 팔촌까지 탈탈 털지 않았느냐. 그렇게 해서 안 걸릴 사람이 누가 있느냐. 윤 총장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면서 “조국 전 장관은 어렵게 취임하긴 했지만 한 달 만에 그만둬야 했다”면서 “검찰이 최소한 기소를 하거나 특수활동비 사용에 문제가 있었다면 윤 총장으로선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흥미로운 점은 윤 총장 거취와 동시에 추 장관 교체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윤 총장을 경질한 뒤 연말이 유력한 개각에서 추 장관도 바꾸자는 시나리오다. 현재 여권 내에선 ‘추 장관을 계속 안고 가기 힘든 상황’이라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조국 전 장관 사퇴 이후 취임한 추 장관이 아들 군 문제 등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윤 총장을 상대하며 검찰개혁을 밀어붙인 부분은 높게 평가하지만 계속되는 갈등 정국이 문 대통령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는 “(만약 바꾼다면) 추 장관이 잘못했다는 뜻이 아니다. 누군가는 했어야 하는 일이고, 추 장관 아니면 또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었겠느냐”라면서도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추미애-윤석열 갈등 자체에 국민들이 피로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윤 총장이 물러난다면 상황은 자연스레 정리 국면으로 갈 것이고, 추 장관 교체도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검찰총장의 처신, 연말 개각 등이 맞물려 있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이런 부분들을 다 감안해 깊게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권에선 정세균 총리 ‘역할론’에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는 추미애-윤석열 공방이 계속될 경우 정 총리가 문 대통령에게 교체를 건의하는 등의 방식으로 직접 교통정리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정 총리는 11월 11일 취임 3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윤 총장에게 “좀 자숙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추 장관을 향해서는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좀 더 점잖고 냉정하면 좋지 않겠나, 사용하는 언어도 좀 더 절제된 언어였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을 향해 동시에 경고 메시지를 날린 셈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