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억 원만 주면 국회의원 한 사람을 끌어올 수 있어요. 교섭단체가 되는 20명을 모으고 당을 만들어도 1000억만 있으면 되죠. 이름이 나 있는 정치인을 대통령 후보로 모셔 들이는 겁니다. 그러다가 대선을 앞두고 전당대회를 할 때 바로 거기서 판을 뒤엎고 내가 대통령 후보가 되는 거예요.”
내게 말을 한 그 회장은 청년 시절부터 당에 재정지원을 하면서 실세 노릇을 했다.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꿀 한 방울에 벌레가 수없이 모이듯 부자가 되게 해주겠다면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죠. 나는 사람들에게 그 꿈을 팔고 있어요. 나의 정치 텐트 아래 30만 명만 몰려들면 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요.”
엄상익 변호사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벌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은 적이 있었다. 대통령 재임 중 재벌로부터 5000억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었다.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은 수서에 아파트단지를 짓기 위해 크게 배팅하는 마음으로 대통령에게 돈을 가져다주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신동아그룹의 최원석 회장은 진해 잠수함 기지 건설공사를 맡기 위해 대통령에게 돈을 바쳤다고 했다. 대한민국 재벌 회장들은 돈으로 대통령을 움직이고 있었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은 전자산업이 주력이었던 재벌이 느닷없이 자동차사업을 하겠다는 걸 막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힘은 미약한 것 같았다. 나는 대통령의 가족으로부터 이런 소리를 직접 들은 적이 있다.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자마자 그 회장이 아버지를 찾아와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따랐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퇴임할 때도 와서 평생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하더라고요. 자동차사업을 인가받기 위해 그랬던 것 같아요.”
그 재벌을 이겨낼 존재는 대한민국에서 없는 것 같았다. 박정희 대통령 이후 재벌의 돈에서 자유로운 대통령은 없었다. 돈이 국회의 비례대표를 만들어 왔다. 내가 알던 재벌 회장 한 사람은 돈을 내고 아들에게 비례대표 의원직을 사줬다고 했다. 그 회장은 아들이 놀면서 돈을 낭비하는 것보다 비례대표를 만드는 데 드는 돈이 훨씬 싸게 먹힌다고 했다.
대통령의 민정수석을 지냈던 분이 내게 여당이나 야당이나 비례대표 한 명당 30억 원을 받고 자리를 팔았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거대한 경제세력이 로비를 통해 의회와 정부 그리고 사법부까지 영향력을 미쳐왔다. 거대한 경제세력이 정치를 압박하고 법원을 눌러 불공정행위들과 편법·불법 상속을 가능하게 해 왔다. 사소한 법도 돈이 있어야 만들어진다. 얼마 전 장관을 지낸 한 친구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여의도에 입법 로비를 하는 회사가 있어. 보좌관 출신들이 만든 건데 돈을 주면 로비까지 해서 턴키 베이스로 법을 만들어 국회를 통과시켜 준다는 거야. 이제는 입법 로비도 싼 가격으로 할 수가 있지. 그전에는 법률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야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찾아가 돈을 줘야 하고 또 위원회 여야 간사에게 거의 많은 돈을 줘야 했어.”
법을 만드는 것도 돈 싸움이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 문재인 변호사를 부산의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두 사람만 있는 자리였다. 나는 그에게 대통령이 된다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검찰개혁과 경제민주화라고 했다. 추상화된 개념인 경제민주화가 무엇인지 나는 궁금했다.
경제민주화는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거대한 경제세력의 사실상 독재에서 벗어나자는 게 시대정신이 아닐까. 정치권이 거대 경제세력의 손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게 경제민주화가 아닐까. 추상적인 관념만으로는 부족하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법조문으로 만들어져야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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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