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3도 대규모 칼바람 예고
한 유럽전문 여행사 대표는 “그래도 호텔이나 항공업계는 내수수요라는 돌파구가 있다. 제주나 강릉 등의 특급호텔들은 주말이면 방이 없다고 하고, 항공도 제주 수요를 기본으로 버티고 있다. 대한항공은 해외 카고 수요를 독점 운영한 덕에 2분기와 3분기엔 흑자전환까지 했다. 어쩔 수 없이 죽어나가는 건 해외여행 상품을 팔던 여행사들”이라며 “더 이상은 버틸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
정부의 특별고용유지지원금이 사실상 끊기는 11~12월에 여행업계의 실업대란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사진=일요신문DB
호텔업 관계자들은 “해외에 못나가는 여행객이 국내로 돌아오며 어느 정도는 풍선효과를 보고 있다. 지난해 매출과 비교해 60~70%는 올라왔다”고 전했다. 호캉스와 호텔 한달살이 등 내국인 타깃으로 마케팅하며 그나마 선방하고 있는 호텔업계와 달리 여행사들은 하나같이 대규모 감원을 앞두고 있다.
NHN에 인수된 여행박사는 직원 300명 가운데 10명을 제외한 전 직원에게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롯데관광개발도 호텔업 집중을 위해 본사를 제주로 이전하며 대부분의 직원을 내보냈고 롯데JTB 역시 대규모 감원을 선언했다. 업계 빅3라 불리는 하나투어, 모두투어, 노랑풍선도 11~12월 중에 대규모 감원 칼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IMF 외환위기 등 30여 년간 여러 어려운 시기가 닥쳐왔을 때도 창사 이래 단 한 번도 인원감축이 없었다는 모두투어에서도 “감봉은 있을지언정 대규모 감원은 없을 것”이라던 직원들의 믿음이 이제 사라졌다.
30년 동안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한 여행사 대표는 “국내 대표격 여행사가 그래도 하나투어 아닌가. 하지만 하나투어는 코로나19가 오기 직전인 올 초 사모펀드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사모펀드 특성상 최대한 손실을 줄이려고 할 테니 대규모 감원은 불가피하다”며 “그동안 하나투어가 수익 다각화라는 미명 아래 투자한 면세사업과 호텔사업도 실패하며 분기별 적자가 500억 원에 이르는 등 심각한 수준이다. 하나투어가 무너지면 관련한 소규모 대리점들과 현지 랜드사들도 줄줄이 넘어질 것이고 중소형 여행사들은 이미 폐업이나 휴업을 결정한 회사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NHN의 여행박사와 롯데JTB가 보여주듯 대기업 그늘에 있던 여행사도 예외는 없다. 대기업 특성상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과감하게 정리한다. 삼천리 그늘 아래 있던 참좋은여행도 다른 여행사들과 비슷한 수순을 밟을 것”이라 전했다.
업계에서는 하나투어, 모두투어, 노랑풍선 등 인건비를 정부 지원에 의지하며 버티고 있던 대형 여행사들이 정부의 특별고용유지지원금이 사실상 끊기는 11~12월에 절반 이상의 인원감축을 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올 연말에 여러 여행사에서 퇴사해 나오는 인원이 못해도 3000명은 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여행업이라는 직군 특성상 여행사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이 다른 산업군으로 이직하기도 쉽지 않다. 여행업계의 실업대란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뇌사상태 연장할 뿐 효과 없어
여행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 국내 여행사 대부분이 폐업하게 될 것이고 그 자리를 트립닷컴이라는 거대한 ‘중국 공룡’이 차지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경각심을 내비쳤다. 사진=트립닷컴 제공
그는 또 “미국계 거대 OTA인 부킹홀딩스나 익스피디아 그룹 등도 긴축 경영을 하다가 한국 여행사들이 무너진 자리를 치고 들어올 것”이라 내다봤다.
사실 여행업계 내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전에도 고객들의 OTA를 활용한 개별여행이 늘어나며 패키지상품 위주인 국내 여행사들의 매출이 서서히 내리막을 찍고 있었다. 매출 정점을 찍은 2016~2018년 이후 대형 패키지사들은 나름대로 개별여행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보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미 많은 수의 20~40대의 개별여행자들은 해외 OTA를 활용해 여행하는 사례가 많아졌고 애플리케이션(앱) 이용 습관도 자리를 잡았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코로나19가 아니었어도 서서히 어려움을 겪었을 대형 패키지사들이 코로나로 인해 좀 더 빨리, 그리고 급격하게 존폐의 위기를 맞은 것이라 보고 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소비자들이야 그게 어디건 싸고 좋은 상품을 사게 마련이다. 상품을 어디서 파는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국수주의를 논하는 게 아니다. 자칫하다가는 국내 여행 생태계가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 외국 회사에 의해 산업의 독점이 이루어지면 나중에는 국가에서 제어할 수 없는 산업이 되고 제2의 배민(배달의 민족)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 했다. 그러면서 “여행은 단순한 서비스업이 아니다. 국민의 안전이나 생활의 질과 직결되는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에는 국내의 여행 생태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관광 전문가가 없다”며 개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문체부가 관광 관련 정책을 내놓는 것을 보면 탁상행정이 많고 업계의 이해관계나 현실적인 문제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특별고용유지지원금 역시 당장 ‘언 발에 오줌 누기’는 되겠지만 제조업 기반의 정책이라 여행업에 적용하는 것에 허점이 많고 여행사들의 뇌사상태를 연장할 뿐 별반 효과가 없다는 업계의 비판이 일기도 했다.
#토종 여행사들 경쟁력 잃어
한 여행업계 전문가는 “문체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줄곧 한국의 여행산업을 내수 관광 활성화와 내수 경기 진작에만 초점을 두고 인바운드(외국인의 한국여행) 위주로 정책을 펼쳐 왔다. 방한 외래 관광객이 많이 들어와야 관광수지가 개선되기 때문이다. 아웃바운드(한국인의 해외여행)에는 관심도 없다”며 “FTA(자유무역) 협상 때문에 외국 업체들도 국내에서 누구나 여행업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외 공룡 OTA들이 제대로 된 절차도 거치지 않고 여행사업자 등록도 없이 편리한 앱을 무기삼아 너무 쉽게 대거 들어왔다. 연락사무소 형태로 세금도 내지 않고 여행객의 안전에도 책임지지 않는 업체가 대부분이다. 매출이나 수익도 공개하지 않고 운영상에도 정부의 규제도 전혀 받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또 “국내 업체들이 그런 부분에서 형평성에 어긋나며 역차별을 당한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는 게 수년째지만 정부는 관련 법령이 없다며 그저 뒷짐 지고 있을 뿐”이라고 토로했다.
글로벌 OTA가 국내에 들어온 계기는 2012년 3월 15일 한미 FTA 협정이 발효된 시점부터다. 여행업 관계자는 당시 정부가 여행업계나 여행 기업들에 시장 상황이나 법적 근거들에 대해 별다른 자문을 구하지 않고 시장을 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OTA들은 한국의 법망이나 세금망에서 벗어나 있다. 국내법에 의한 규제도 받지 않는다. 소비자 피해 예방책에서도 멀리 있다. 국내 여행사의 경우는 불공정약관이나 소비자 피해 등을 이유로 행정처벌이나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지만 글로벌 OTA에는 마땅히 적용할 법적 근거가 없거나 미비하다.
또 국내 여행사들이 매출에 대한 각종 세금을 내는 것과 달리 글로벌 OTA의 매출은 정확히 잡히지 않는다. 한 세법 전문가는 “다국적 IT 기업을 대상으로 한 국내 세금부과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글로벌 OTA의 결제 구조상 정확한 매출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내법상으로는 글로벌 사업자에 과세할 마땅한 기준조차 없다”고 말했다. 법인이나 지사가 아닌 연락사무소 형태를 띠는 경우는 과세할 근거도 없다. 게다가 글로벌 OTA는 스스로를 여행업체라기보다는 테크 기업으로 보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여행소비자의 글로벌 앱 사용습관이 급속도로 활성화 된 것이 사실이다. 중국계인 트립닷컴(스카이스캐너)과 미국계인 부킹홀딩스(부킹닷컴, 아고다, 카약)와 익스피디아(호텔스닷컴, 트리바고) 등의 사용자가 급격히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도 자본과 기술력으로 밀고 들어오는 글로벌 OTA들이 서서히 한국 시장을 잠식해 가는 동안 한국의 토종 여행사들은 점차 경쟁력을 잃으며 눈에 띄게 줄어드는 매출 감소를 별다른 대책 없이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었다.
최근 몇 년간 여행소비자의 글로벌 여행앱 사용습관이 급속도로 활성화 되며 중국계인 트립닷컴(스카이스캐너)과 미국계인 부킹홀딩스(부킹닷컴, 아고다, 카약)와 익스피디아 (호텔스닷컴, 트리바고) 등의 사용자가 급격히 늘었다. 사진=일요신문DB
2018년 추산 해외 OTA를 통한 국내 시장 점유율은 이미 70%를 넘었다. 코로나19 타격에 글로벌 OTA들도 감원 등으로 몸집을 줄이고는 있지만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당분간은 버티기에 들어가는 모양새다. 코로나19를 버티지 못한다면 국내 토종 여행사들이 망해나간 자리에 중국계와 미국계의 글로벌 OTA가 대거 들어오며 한국 여행생태계를 재편할 수 있다. 국내 대형 여행사들을 헐값에 매입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여행업계 원로들은 IMF 외환위기 때의 기시감이 느껴진다며 걱정하는 분위기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