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특활비를 주머닛돈처럼 사용한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11월 5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저격했다. 추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특활비를 주머닛돈처럼 사용한다”고 했다. 이어 추 장관은 대검 감찰부에 검찰 특활비 집행과 관련한 조사를 지시했다. 각급 검찰청 및 대검 각 부서가 전년 대비 특활비를 얼마나 배정·지급했는지, 특정 검사나 특정 부서에 1회 500만 원 이상 특활비가 지급된 적이 있는지 파악하라는 내용이었다.
추 장관이 특활비 카드를 꺼낸 이유는 ‘윤 총장이 자신의 측근들에게 더 많은 특활비를 챙겨줬는지’ 여부를 밝히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추 장관은 “사건이 집중된 서울중앙지검엔 최근까지 특활비가 지급된 사실이 없어 수사팀이 애로를 겪는다는 말도 있다”면서 윤 총장이 특활비를 일부 특정 검찰청에 몰아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반 윤석열 라인’ 선봉장이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 쪽 인사로 알려져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한 대검 특활비 의혹은 별다른 증거를 찾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났다. 사진=박은숙 기자
추 장관이 윤 총장의 특활비 사용 내역을 걸고넘어지자, 야당은 법무부 특활비 집행 내역도 확인해야 한다고 맞섰다. 법무부는 ‘검찰에 내려간 특활비를 돌려받아 사용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결국 여야는 검찰과 법무부 특활비 집행 내역을 모두 확인하기로 합의했다. 여야 법사위원들은 11월 9일 오후 2시 대검찰청을 방문해 관련 자료를 확인했다. 그러나 여야는 각각 아전인수 격 해석을 내놨다.
먼저 더불어민주당은 대검 측 특활비 집행 내역 자료가 불분명하다는 입장이다. 국회 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백혜련 의원은 “법무부는 상세 내역이 있는데 대검은 없었다”면서 “서울중앙지검 특활비는 지난해 총액과 비교하면 올해 10월까지 총액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고 했다. 추 장관 의혹 제기에 힘을 실은 셈이다.
국민의힘 측은 반대로 법무부 특활비 집행 내역 자료가 부실했다고 지적했다. 법사위 국민의힘 간사 김도읍 의원은 “대검은 그나마 자료를 충실하게 제출했다”면서 “결론적으론 특수활동비가 서울중앙지검에 제대로 내려가고 있다”고 했다.
같은 자료를 본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여야 반응은 양극단으로 갈렸다. 그러나 여야가 같은 목소리를 낸 대목도 있었다. 여야는 법무부와 대검이 제출한 자료가 이번 특활비 논란을 명백히 검증하기엔 부족함이 있었다고 했다. 결국 국회 차원에서의 특활비 검증은 무색무취 아전인수 격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11월 9일 검찰과 법무부의 특수활동비 집행 내역 현장 검증을 위해 대검찰청에 들어서는 국민의힘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 사진=박은숙 기자
그 가운데 특활비 논란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번졌다. 국민의힘은 추 장관이 띄운 ‘특활비 논란’ 화살 방향을 현 정부 쪽으로 돌렸다. 김성원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11월 1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청와대의 2021년 예산안에 깜깜이 예산이 대거 반영된 상태”라면서 “어디에 얼마를 쓰는지 알 수 없는 특활비, 통제할 수 없는 혈세를 예산심사 과정에서 세세하게 따져보겠다”고 했다. 특활비 관련 예산 편성에 있어 전면적인 대정부 공세를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을 지냈던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은 “2020년 특활비 규모가 청와대는 181억 원”이라면서 “전체로 보면 1조 원에 이른다”고 했다. 류 의원은 “검찰뿐 아니라 청와대, 경찰, 국정원 등 관련 기관 (특활비) 모두를 검증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부 예산 중 특활비 명목 예산을 가장 많이 배정받는 기관은 국가정보원이다. 국정원 특활비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현미경 검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야권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현 여권이 박근혜 정부 말 국정원이 청와대에 특활비를 상납했다는 부분을 지적하며 국정원 특활비 삭감에 대한 목소리를 강하게 냈던 전력을 꼬집자는 의미로 풀이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7년 국정원 특활비는 4930억 원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2018년 예산에서 국정원 특활비는 4630억 원으로 일부 삭감됐다. 하지만 2019년 국정원 특활비 규모는 5445억 원으로 박근혜 정부 시절보다 더 비대해졌다. 2019년 국정원은 특활비의 명칭을 ‘안보비’로 변경했다. 예산 항목이 변경된 뒤 안보비는 더 이상 특활비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안보비는 사실상 특활비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2020년 예산안에서 국정원 안보비는 7055억 원으로 또 늘었다.
국정원 안보비를 포함한 문재인 정부 전체 특활비 규모는 2017년 8938억 원에서 2021년 9844억 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4년 새 10.1% 증가다. 2020년 전체 특활비 규모는 9563억 원이고, 그중 9431억 원이 집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정원을 제외한 나머지 정부기관의 특활비 규모는 대부분 줄었다. 하지만 그 이면엔 또 다른 외부요인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특수업무경비와 업무추진비 등 이른바 ‘판공비 계열’ 예산에 기존 특활비로 배정되던 비용 일부를 이전했다는 것이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특활비, 특수업무경비, 업무추진비 모두 항목은 다르지만 쓰이는 곳은 비슷한 예산들”이라면서 “특활비를 콕 집어서 살펴보면 그 규모가 줄어든 듯하지만 특수업무경비, 업무추진비를 모두 살펴보면 정부 기관이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예산 규모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10월 21일 국회 소통관에서 공수처장 후보자추천위원회 위원추천 촉구 기자회견을 연 더불어민주당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 사진=박은숙 기자
추 장관은 당초 대검 특활비를 겨눴다. 그러나 초점은 대검보다 특활비에 맞춰지는 양상이다. 문재인 정부 산하 정부 기관이 활용하고 있는 깜깜이 예산이 정치공세 타깃으로 노출됐다. 정치권에서 이번 논란을 두고 ‘추미애 장관이 헛발질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 특활비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면서 추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예산 배정에도 적잖은 진통이 예고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공수처는 현재 처장 선임 과정을 밟고 있다. 처장이 선임되면 공수처 출범은 초읽기에 들어갈 예정이다. 법조계 및 정치권 복수관계자는 ‘공수처 역시 정보를 활용한 수사기관인 만큼 정부로부터 특활비를 배정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법조계를 둘러싼 특활비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수처 특활비 역시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라면서 “야권이 공수처 예산 심의에서 적잖은 견제구를 던질 것”이라고 바라봤다. 그는 “예산은 결국 정부 기관의 동력”이라면서 “추 장관이 띄운 특활비 이슈에 공수처가 된서리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9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제2차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 장면. 사진=청와대 제공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위원은 “결국 어느 정부에서든 특활비 이슈가 불거지면, 국민 예산을 자의적으로 쓸 수 있느냐라는 질문이 따라온다”면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예산을 투명하게 쓰자’라는 대전제와 결이 다르게 윤석열 검찰총장을 공격하려는 목적으로 특활비 카드를 꺼낸 모양새”라고 했다. 채 연구위원은 “추 장관이 공격 카드로 특활비를 꺼냈는데 그 불똥이 법무부까지 튀었다”면서 “별 소득 없이 본인 발등을 찍은 자살골 비슷한 모양새의 해프닝이 됐다”고 이번 검찰 특활비 논란을 바라봤다.
채 연구위원은 “정치권에서 특활비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밝히자는 이야기가 자칫 비효율적인 정쟁으로 흘러갈 우려도 있다”면서 “업무상 보안과 비밀이 요구되는 비용인 특활비에 집행 내역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밝혀내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