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철 한화 단장(가운데)은 부진한 성적, 감독 교체, 프랜차이즈 선수 은퇴 등 다사다난한 첫 시즌을 보냈다. 사진=연합뉴스
선수 출신 단장은 누구보다 선수단 사정에 밝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경영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에 선수단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김태룡 단장은 다른 선수 출신 단장과 달리 은퇴 후 프런트부터 오랫동안 구단 운영 실무 경험을 쌓은 뒤 단장까지 올랐고, 가장 오랫동안 단장으로 일한 터라 타 팀의 선수 출신 단장들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선수 출신 단장들이 야구단 운영에 나설 때 선수들이 기대하는 건 자신들의 속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선수 편에서 구단 운영을 해나가리라는 기대를 갖기 마련이다. 실제로는 어떠했을까.
#대대적인 선수단 정리
“한화 이글스가 중장기적으로 젊은 선수들의 육성도 필요한 구단이라고 인지를 했고요. 그래서 올시즌, 내년 시즌 퓨처스에 대한 촘촘한 계획, 조금 더 분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정민철 단장)
“시카고 컵스의 테오 엡스타인 사장을 닮고 싶습니다. 모든 의사 결정에는 프로세스가 있어야 합니다. 확실한 프로세스를 갖춘다면 좋은 결과가 뒤따를 것이라고 믿습니다.”(성민규 단장)
지난해 단장으로 선임된 정민철·성민규 단장의 소감 중 일부 내용이다. 모든 일에 현실과 이상에는 차이가 있는 법. 지난 스토브리그 동안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두 단장의 2020시즌 현실은 험난했다.
우선 정민철 단장은 시즌 도중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떠난 한용덕 감독의 공석에 최원호 2군 감독을 1군 감독대행에 앉히는 등 정신없는 시간들을 보냈다. 시즌 후반기에 계속 소문으로 나돌던 신임 감독 후보군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도 공석이던 대표이사에 박찬혁 한화생명 e스포츠단장 겸 브랜드전략 담당이 내정되는 걸 지켜봤다.
자신이 단장으로 선수단을 운영했지만 팀 성적은 최하위에 머물렀다. 이미 팀의 강력한 쇄신을 위해 새로운 변화를 준비했던 정 단장은 대대적인 선수단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용규 등 주전급 선수 다수를 포함한 선수 17명과 송진우, 장종훈 등 구단 프랜차이즈 출신 코치들 10명을 정리했다.
구단 운영과 프로세스를 아는 이라면 이 모든 게 정 단장의 단독 결정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한화그룹, 구단 내부 관계자들, 정 단장의 의견을 모아 정리돼 나온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 단장은 최근 지인들에게 괴로움을 호소했다는 후문이다. 자신이 앞에 나서 코치 시절 애제자로 깊은 인연을 맺었던 이태양을 SK로 트레이드시키고, ‘정민철 키즈’로 불린 윤규진을 은퇴 시키는 것은 물론 이용규와 옵션 계약을 실행하지 않는 등 어려운 결정을 이어가면서 인간적인 고뇌에 빠진 것이다.
뼛속 깊이 이글스 정신이 스며들어 있는 정 단장의 매서운 칼바람에 선수들은 두 가지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프랜차이즈 출신의 단장이 들어와도 결국 단장은 단장’이라는 부정적인 반응과 ‘팀을 쇄신하기 위해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화 선수 A는 “한두 명도 아니고 갑자기 선수단 3분의 1이 정리되는 걸 지켜보면서 두려움이 생겼다”면서 “성적이 안 좋아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정민철 단장이 이렇게 냉정하게 선수단을 정리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다른 선수 B는 “함께 뛰었던 선수들도, 코치들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 현실이 착잡하다”면서 “그럼에도 우리가 못했기 때문에 뒤따른 결과라고 생각한다. 좋은 성적을 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성민규 롯데 단장(왼쪽)은 현장과 ‘불협화음’으로 속앓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연합뉴스
#감독과 프런트의 갈등
롯데 자이언츠는 올시즌 내내 구단 프런트와 허문회 감독의 엇박자가 노출되었고, 성민규 단장과 허 감독의 기싸움처럼 비치기도 했다. 성 단장은 현장과의 갈등설에 대해 일체 답을 하지 않았지만 허 감독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정제되지 않은 언어를 통해 프런트와 불협화음을 인정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허 감독은 감독 선임 후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다른 노선을 걸었다. 양측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한 야구인은 “면접 때 허 감독이 구단에 밝힌 지도 철학과 실제 선수단 운영에 큰 차이가 있었고, 이로 인해 성 단장이 마음고생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롯데와 3년 계약을 맺은 허 감독은 내년에도 선수단을 이끌 전망이다. 3년 연속 사령탑이 바뀌는 데 대해 모기업이 부담을 갖고 있고, 허 감독이 올시즌 우여곡절 속에서도 7위의 성적을 낸 터라 다음 시즌에도 허 감독한테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올시즌 불거진 구단과 현장의 불협화음이 내년에도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허 감독은 최근 구단에 수석코치급으로 이지풍 전 SK 컨디셔닝 코치를 수석코치급으로 영입해 달라고 요청했다. 현장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에 구단은 절차대로 이지풍 전 컨디셔닝 코치를 만나 면접은 실시했지만 성사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선수들의 컨디셔닝과 부상 회복을 담당한 트레이너 출신이 팀의 수석코치를 맡은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야구계에서는 허 감독이 왜 다른 코치들을 놔두고 이지풍 전 코치를 추천했는지에 주목한다. 해설위원 C 씨는 “허문회 감독이 자신의 ‘오른팔’로 이지풍 전 코치를 찍은 거나 마찬가지”라면서 “이렇게 대놓고 의도를 표현하는데 구단이 그 의도를 알고도 받아주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회의적으로 내다봤다.
#재계약 대신 새 감독 선임
두산 베어스와 준플레이오프에서 2전 전패를 당한 LG 류중일 전 감독은 시즌 종료 후 구단에 면담을 요청, 차명석 단장에게 사의 표명을 했고, 구단은 이를 수용했다. 류 전 감독은 구단의 재계약 의사 여부와 상관없이 정규시즌 성적이 2위에서 4위로 떨어졌고,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 전패 당한 데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먼저 사의 표명을 한 것이다.
그동안 차명석 단장은 류 전 감독의 재계약에 큰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 기자와 인터뷰에서도 올시즌 목표와 관련 현장에서 성적을 책임지는 것이라면 자신은 류중일 감독의 재계약을 이끌어내는 게 목표라고 거듭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KT가 구단 최초로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끈 이강철 감독과 총액 20억 원에 3년 계약을 발표했음에도 류중일 전 감독의 재계약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이미 야구계에서는 류 전 감독이 사의 표명을 하기 전부터 LG가 구단 프랜차이즈 출신의 지도자를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할 수 있다는 소문이 팽배했다.
마침내 LG는 13일 제13대 감독으로 류지현 수석코치를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조건은 계약기간 2년에 총액 9억 원이다. 류지현 신임 감독이 팀 내부 사정과 선수들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있고, 구단의 방향성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차 단장은 류중일 전 감독과도 좋은 호흡을 보였지만 선수로 코치로, 그리고 단장으로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류지현 신임 감독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팀을 명문 구단으로 올려놓을 수 있도록 만반의 지원과 노력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류지현 감독이 내년 시즌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 차 단장의 입지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2018시즌을 앞두고 부임한 조계현 KIA 단장은 오는 12월을 끝으로 3년 계약을 마무리한다. 아직 구단에서는 조 단장의 재계약 여부와 관련해 정확한 입장 표명은 없지만 재계약 가능성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