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산업개발은 지난 7월 15일 최대주주 변경 공시를 통해 회사 최대주주가 정몽규 회장에서 템플턴으로 변경됐음을 알렸다. 7월 12일 현재 템플턴의 보유 주식 수는 1313만 6025주로 지분율은 17.43%에 해당한다. 현재 정몽규 회장 지분율은 13.39%(1009만 1820주). 여기에 정 회장 친인척과 임원 자회사 등이 보유한 지분을 합하면 의결권 행사 가능한 정 회장 측 지분은 17.06%(1286만 178주)다. 템플턴 지분율보다 0.37%포인트 낮은 수치다.
최대주주가 정 회장에서 템플턴으로 바뀐 것에 대해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최근 (현대산업개발) 주가가 다소 낮아지면서 템플턴이 추가 지분 매입을 하다 보니 정 회장 지분을 넘어서게 된 것 같다”며 “(템플턴은) 10년 가까이 현대산업개발에 지분 투자를 해온 우호적 자본”이라 밝혔다. 정 회장의 지배력엔 전혀 영향이 없을 것이란 설명이다.
템플턴은 현대산업개발을 비롯해 SK에너지 GS건설 CJ인터넷 등 국내 주요 재벌 계열사들의 지분을 두루 보유하고 있다. 템플턴이 현대산업개발 주주로서 공시내역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건 지난 2002년 8월부터다. 당시 6.10% 지분을 매입한 템플턴은 이후로도 현대산업개발 지분을 장내매수 방식으로 조금씩 사들이면서 지분율을 높여왔다.
현대산업개발은 최근 공시를 통해 이번에 최대주주가 된 템플턴의 지분 매입 배경을 ‘일반 투자 목적’이라 밝혔다. 현대산업개발 측은 “(템플턴이) 그동안 회사의 주요 경영 사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템플턴은 그동안 주주로 참여한 국내 회사들에 대해 꽤나 ‘까칠한’ 모습을 보여 왔다. 지난 2004년 정몽규 회장의 숙부인 정상영 명예회장의 KCC 정기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 반대의사를 밝힌 적이 있으며, 2005년 휴켐스 정기주총 때도 이사 선임 건에 대해 반대를 한 바 있다. 지난 2월엔 코스닥기업 티엘아이의 감사 후보 선임에 대해 반대 의사를 내기도 했다.
템플턴 측이 보유한 이들 회사들의 지분은 5% 이내였지만 주총장에서 반대 의사를 낼 때마다 오너 측을 긴장하게 만들곤 했다. 하물며 현대산업개발에선 최대주주가 된 템플턴이 ‘맘먹고’ 경영에 개입하려 한다면 정 회장 중심의 지배구조를 흔들 수도 있는 셈이다.
템플턴 측은 이미 현대산업개발 경영에 개입할 물꼬를 터놓은 상태다. 템플턴은 지난 2005년 6월 29일 지분 보유 목적 변경 공시를 통해 ‘회사 또는 임원에 대하여 사실상의 영향력 행사 목적’을 갖기로 했음을 알렸다. 지분 보유 목적을 이전까지의 ‘단순 투자 목적’에서 경영감시가 가능한 단계로 바꿔놓은 것이다.
템플턴은 현대산업개발 지분 투자와 관련된 공시를 통해 ‘최선의 기업지배구조 원칙 등에 따라 운영될 수 있도록 경영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적임자로 판단되는 이사 후보자를 지지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직접 이사를 지명할 의도는 갖고 있지 않다’는 입장도 덧붙이고 있지만 언제든 상황에 따라 경영에 개입할 수 있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그동안의 협력관계로 볼 때 템플턴이 경영권 행사 목적으로 지분을 샀다고 볼 수 없다”고 밝힌다. 정 회장 개인 지분과 친인척 임원 자회사 그리고 우호세력 지분까지 합하면 의결권 행사 가능한 지분 25%가 정 회장 측에 있으므로 유사시 경영권 방어에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산업개발 측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재계에선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했던 소버린자산운용(소버린)의 사례가 거론되기도 한다. 2005년 SK㈜ 지분 14.96%를 확보했던 소버린이 분식회계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최 회장을 이사 후보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맞섰던 바 있다.
템플턴이 최대주주 자리를 꿰찬 만큼 경영권에 대한 직접 개입까진 몰라도 대형 M&A 같은 주요 이슈와 관련해 정몽규 회장의 발목을 붙잡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행여 정 회장의 경영권이 위협받는 일이 생길 경우 범현대가가 백기사로 나설지에 대한 관측도 벌써부터 고개를 들고 있다. 정 회장이 추가 지분 매입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증권가에 파다한 가운데 향후 정 회장과 템플턴 간의 지분 변화 추이에 재계와 증권가의 시선이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