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구자는 홈팀에서 섭외한다. 정규시즌은 물론이고 와일드카드 결정전,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까지 이 원칙이 유지된다. 한국시리즈는 다르다. 홈팀이 아닌 KBO가 직접 선정한다. 그만큼 상징성과 화제성, 그리고 시대정신까지 고려해 시구자가 선정된다. 요즘 KBO는 시구에 감동을 줄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담으려 애를 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주 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7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시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청와대 제공
2019 한국시리즈 1차전 시구자는 임채청 고성소방서 소방장과 권하나 강릉소방서 소방교가 맡았다. 그해 4월 동해안 산불 진화에 기여한 강원도 남녀 소방관 2명이 시구자로 선정된 것이다. 2018 한국시리즈 1차전 시구자는 야구원로 어우홍 전 감독이었으며 2017 한국시리즈 1차전 시구자는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박정아가 수원구장에서 열린 2004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시구를 하는 모습. 2003 한국시리즈 7차전 시구자였던 박정아는 애초 예정된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가 갑자기 불참하게 돼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시구자로 서게 됐다. 사진=연합뉴스
2015 한국시리즈 1차전 시구자는 이종명 예비역 대령으로 그는 2000년 경기도 파주 인근 DMZ(비무장지대)에서 수색정찰 작전 도중 지뢰 폭발로 두 다리를 잃었다. 이후에도 군에 남아 후학 양성에 힘써오다 2015년 9월 전역하고 바로 시구를 했다.
2014년에는 여성 스포츠 지도자인 홍양자 이화여자대학교 체육학부 명예교수, 2013년에는 암벽등반 김자인 선수가 시구자가 됐다. 2012년에는 ‘사회인 야구단 서이수 심판’이 시구자가 됐다. 사실은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서이수 역할을 맡았던 배우 김하늘이 시구자다. 드라마의 높은 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시 뜨거운 사회인 야구의 인기를 반영한 결정이기도 했다.
2011년에는 고 장효조 감독 아들 장의태 씨가 시구자였다. 이처럼 지난 10년 동안의 한국시리즈 1차전 시구자는 대부분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는 스토리텔링이 있는 인물들이 주로 섭외됐다. 한국시리즈 시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연예인은 김하늘인데 이 부분 역시 그가 극 중에서 사회인 야구단 심판 역할을 소화했다는 부분이 컸다.
과거 한동안은 연예인 시구가 대세였다. 1992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고 최진실 씨가 처음 시구를 한 뒤 점차 그 수가 늘어나 2009년에는 1차전부터 7차전까지 모두 연예인이 시구를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상징성이 큰 한국시리즈 1차전 시구자가 연예인이 되는 경우는 드물어 채시라 박정아 박시연 김하늘 등 일부만 그 영광을 누렸다.
가장 드라마틱한 주인공은 박정아로 2003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 이어 2004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도 시구를 맡았다. 한국시리즈만 놓고 보면 2경기 연속 시구 등판이다. 사실 2004년 1차전 시구자는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였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 위헌 결정으로 대책회의에 돌입한 이 총리가 불참하게 되면서 급히 대체 시구자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박정아가 다시 마운드에 서게 됐다.
현직 대통령이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시구를 한 경우는 단 두 명뿐으로 고 김영상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4년과 1995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연이어 시구를 했다. 그리고 1차전은 아니지만 2013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시구자로 나섰다.
지금은 많이 개선됐다고 해도 프로야구는 지역색이 강할 수밖에 없다. 바로 지역연고제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 되는 지역과의 연관성을 갖는다.
현직 대통령이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1차전 시구자로 나선 1994년 한국시리즈는 태평양 돌핀스와 LG 트윈스가 격돌했다. 당시 1차전은 김선진의 극적인 끝내기 홈런으로 LG가 이겼고 결국 LG가 우승했다. 이듬해인 1995년에는 롯데 자이언츠와 OB 베어스(현 두산)가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다. 롯데는 부산이 연고지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과 같다. 잠실에서 열린 1차전에 김 전 대통령이 또 시구자로 나섰고 롯데는 4 대 2로 승리했다. 그렇지만 한국시리즈 우승팀은 OB였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1995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시구하는 모습(왼쪽)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3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시구하는 모습. 사진=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이 깜짝 시구자로 등장한 2013 한국시리즈 3차전은 잠실에서 열렸다.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이 격돌했는데 홈인 대구에서 1, 2차전을 모두 두산에게 내준 삼성은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 잠실로 원정을 왔다. 박 전 대통령의 시구로 시작된 3차전에서 3 대 2로 이기며 기사회생한 삼성은 4차전까지 승리하며 2 승 2패를 만들었지만 5차전에서 다시 패배한다. 그렇지만 홈인 대구에서 6·7차전을 모두 이기며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은 삼성 연고지인 대구다.
2017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시구자로 나섰다. 부산 출신인 문 대통령은 롯데 팬으로 알려져 있지만 광주 등 호남의 지지를 많이 받아 정치적 연관성은 크다. 게다가 이날 시구는 대선 과정에서 ‘투표 인증 1위 팀 연고지에 가서 시구를 하겠다’는 공약을 지킨 것이기도 했다. 이날 경기에선 KIA가 두산에 5 대 4로 패했지만 2·3·4·5차전을 내리 이겨 결국 우승했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