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등 계열사 사옥이 들어설 프로젝트B 현장. 아직도 ‘기초공사중’이다(위). 텅 빈 공사장엔 간혹 덤프트럭과 포클레인 몇 대가 오갈 뿐이었다. | ||
본지 취재진이 확인한 서초구청의 서류에는 삼성의 ‘서초 프로젝트’란 이름이 명시되어 있었다. A, B, C 프로젝트로 명명되어 있는 이른바 삼성의 프로젝트 사업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 때문에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제대로 공사 한번 하지 않고 노른자위 땅에서 포클레인 한두 대로 공사하는 시늉만 하고 있을까.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삼성 내부 관계자들도 정작 서초 프로젝트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삼성의 ‘서초 프로젝트’가 사업 시작 이후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현장은 의외로 보안이 허술했다. 넓은 공터 현장 입구에는 삼성 로고와 함께 각각 A, B, C 프로젝트 간판이 걸려 있었다. 그 안에서는 포클레인 두 대와 인부 몇몇이 모여서 한가롭게 오가고 있었다. 현장사무소도 있었지만, 근무자는 거의 없는 듯했다.
기자는 인부들에게 “무슨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인부들은 “우리도 잘 모른다.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며 자리를 슬며시 피하는 눈치였다.
취재 결과 ‘서초 프로젝트’란 강남역 사거리 일대 부지 10만여 평에 삼성그룹 계열사, 주상복합건물, 펜션센터 등을 잇는 초대형 단지를 건축하는 사업이었음이 밝혀졌다. 이를 위해 삼성은 지난 80년대부터 비공식적으로 이곳 땅을 매입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90년대 들어서는 공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공사는 아직까지 아무런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기초공사조차 하지 못하고 있어 세간의 궁금증을 자극하고 있다.
“저 비싼 땅을 왜 놀리는지 도대체 모르겠어요.” 강남역 인근 부동산 업자 김아무개씨(41)의 말이다. 이 업자에 따르면 이곳은 강남에서도 최고의 ‘노른자땅’으로 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몇 년째 아무런 공사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곳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건축을 허가한 서초구청을 찾았다. 하지만 구청 관계자들 역시 “기업의 보안 사항일 수도 있다”는 이유로 관련 서류 공개나 자세한 설명을 꺼려했다. 설득 끝에 가까스로 관련 서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서류 문건에 따르면 삼성의 서초 프로젝트는 크게 A, B, C로 구분되고 있었다. 이중 삼성전자 등 계열사 사옥 공사가 진행중인 B프로젝트가 6만2천평 규모로 가장 크다. A프로젝트는 3만3천여평 규모로 서초펜션을 지을 계획으로 잡혀 있었다. C프로젝트는 2만8천여평 규모로 주상복합건물이 올라갈 예정이라고 한다.
건축물의 규모도 초대형이다. B프로젝트가 지상 35층, 지하 9층, 그리고 C프로젝트가 지상 24층, 지하 8층의 초고층 건물이다. 삼성은 이 건축물 사이를 육교로 연결해서 잇는 하나의 대규모 단지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삼성은 지난 93년과 94년에 각각 건축 허가를 신청했다. 문제는 건축 허가를 받은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기초공사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인근 주상복합 건물 관리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공사를 할 때보다 안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며 “공사가 지지부진하다 보니 유독 이곳만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인근 상인들의 불만이 높다”고 토로했다.
삼성의 ‘서초 프로젝트’를 두고 갖가지 불협화음이 터져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 건축설계사 관계자는 “아마도 삼성이 공한지세를 물지 않기 위해 공사를 일부러 지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80년대까지만 해도 강남 일대는 곳곳이 허허벌판이었다는 것. 그러나 지난 90년대 초 정부가 빈 땅을 상대로 소유주에게 공한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갑자기 개발이 급속화됐다는 지적이다.
그는 “당시 땅주인들이 세금을 물지 않기 위해 너도나도 건물을 지어 값싸게 분양했다”며 “한국 벤처의 요람이 되고 있는 테헤란밸리도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의 추정은 실제 취재를 통한 확인 결과 정부가 공한지세 제도를 도입할 당시와 삼성이 서초구청에 공사신청서를 제출한 시기가 엇비슷하게 맞아떨어지고 있어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더군다나 삼성측이 구청에 제출한 건축 완료시점이 이미 상당기간 지났다는 점도 또 하나의 의문이다. 삼성은 당초 서초구청에 2002년까지 공사를 완료하는 것으로 신고했다. 그러나 건설 완료 시간이 2년여 가까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기초공사조차 마무리돼 있지 않고 있는 것. 아직까지 허가 취소가 되지 않은 부분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건축업자는 “공사가 진척이 없을 경우 시공사가 건축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 구청이 허가를 취소하는 게 관례”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공사가 취소되지 않은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삼성측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고 있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건물을 올리면 그 건물세만 받아도 현금이 들어오는 판에 그깟 세금을 아끼기 위해 공사를 지연시키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건물을 올리는 과정에서 용도가 바뀌는 바람에 공사가 지연되는 것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해명했다.
삼성의 설명대로라면 건물을 올리지 못하는 데에 남다른 속사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삼성측은 이에 대해 속시원한 사정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삼성 내부와 공사 현장 주변에서는 서초 프로젝트 건축주 간의 불화설이 흘러 나온다.
삼성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한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서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대표적인 건축주는 삼성물산으로 되어 있으나, 삼성물산 단독 소유가 아니라는 것. 즉 건축주에는 건축 시공사인 삼성물산 이외에도 일반인인 K씨, L씨 등이 포함돼 있다는 설명이었다. “아마도 이들의 불화로 인해 아직까지 건축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게 이 관계자의 귀띔이다.
이에 대해 삼성측은 “단지 공사가 예정보다 다소 늦어지는데서 오는 현장의 뜬소문일 뿐”이라며 “정확한 완공 날짜라는 것은 없다. 시공사가 임의로 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서초동 공사의 경우 적법한 절차를 거쳐 설계를 변경했고, 계속해서 관리를 하고 있는 만큼 취소 사유가 될 수 없다. 향후 공사는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