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칼 경영권 분쟁에 산업은행이 등장하면서 동력을 상실한 3자연합의 향후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2011년 권홍사 반도건설 회장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17일 공시에 따르면 반도그룹은 반도개발과 대호개발, 한영개발 등 3개 계열사를 통해 한진칼 지분 총 20.06%를 보유하고 있다. KCGI와 조 전 부사장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은 각각 20.34%, 6.31%다. 조 전 부사장이 배당금과 주식담보대출에 의존하고 KCGI가 투자금을 모집해야 하는 데에 반해 반도그룹은 뛰어난 자금 동원력으로 짧은 기간 많은 지분을 확보하며 사실상 3자연합의 자금줄로 떠올랐다.
반도그룹은 지난해 10월 한진칼 지분 5.06%를 확보하며 존재감을 드러낸 이후 꾸준히 한진칼 지분을 사들였다. 당시 반도그룹은 지분 매입에 대해 ‘단순투자’라고 선을 그었고, 권홍사 반도건설 전 회장 역시 언론 인터뷰 등에서 고 조양호 회장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단순투자 목적으로 한진칼 지분을 매입했다고 밝혔다.
이후 반도그룹은 지난 1월 31일 KCGI, 조현아 전 부사장과 입장문을 발표하며 3자연합 결성을 공식화하면서도 ‘전문경영인제도 도입’ 등을 강조하며 경영일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진칼은 반도그룹 측이 지난해까지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라고 보고했다가 올해 1월 중순 갑작스럽게 ‘경영참가’로 변경한 것을 두고 이를 허위 공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진칼은 권홍사 전 회장이 2019년 12월 조원태 회장과 두 차례 만나 자신을 한진그룹 명예회장으로 선임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부터 사실상 경영참여 의사가 있었고, 보고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3자연합은 결성 당시 작성한 3자간 계약서까지 공개하며 경영참여 의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허위 공시 여부는 지분 경쟁을 펼치는 상황에서 주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공시 위반을 한 경우 5% 이상을 초과한 의결권은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원 재판에서 상황이 정리됐다. 반도건설이 제기한 의결권 관련 가처분 신청은 결국 한진칼의 승리로 끝났다. 반도그룹 측 보유 지분 8.2% 중 5%를 초과하는 3.2%에 대해서는 의결권 행사가 제한됐다.
반도그룹 측은 “임원 선임에 대해 단순한 의견을 전달한 것에 불과하고 이를 영향력 행사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주식 매수 후 임원 선임에 대해 구체적인 요구를 한 것을 영향력 행사의 목적이 배제된 단순한 의견 전달에 불과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3자연합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입성에 실패했다.
더욱이 지난 11월 10일 권홍사 회장의 퇴임으로 반도그룹이 3자연합에서 발을 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반도그룹이 당초 사업 확장과 승계를 염두에 두고 한진칼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었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그룹이 차익 실현만을 노리고 한진칼 분쟁에 뛰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했지만 이번 계기로 중앙(서울)에 진출해 입지를 다지려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나 산업은행의 등장으로 반도그룹은 차익 실현 외에 다른 방법을 생각하기 어렵게 됐다. 더욱이 정부의 SOC(사회간접자본) 예산 확대 정책에 발맞춰 공공 공사 수주 등으로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노리는지라 정부(산업은행)와의 갈등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일각에서는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투자금을 회수해 신사업에 투자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반도그룹이 지난 6월 건설부문과 투자운용부문으로 나눠 조직개편을 실시해 책임경영체제를 강화한 것도 이 같은 전망의 배경 중 하나다.
이와 관련, 반도건설 관계자는 “한진칼과 관련해서는 3자연합(KCGI)에서 담당하고 있고, 공유된 내용이 없어 회사에서 별도로 언급할 것은 없다”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