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산업은행은 한진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추진을 위해 8000억 원을 한진칼에 투입하기로 했다고 16일 밝혔다.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사진=이종현 기자
지난 11월 16일 정부는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아시아나항공 정상화 방안을 논의하고 대한항공이 인수토록 하는 데 합의했다. 산업은행(산은)이 한진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한진칼에 유상증자로 5000억 원을 출자하고 3000억 원 규모의 교환사채(EB)를 인수하는 등 총 8000억 원을 투입한다. 한진칼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대한항공의 2조 5000억 원 유상증자에 참여한다. 대한항공은 유상증자 대금으로 아시아나항공 지분 63.9%를 인수해 최대주주에 올라설 계획이다. 아시아나항공 신주 1조 5000억 원, 영구채 3000억 원 등을 총 1조 8000억 원에 인수하는 방식이다.
최대현 산은 부행장은 연내 통합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 대해 “코로나19 장기화로 양대 항공사 체제 유지 시 2021년 말까지 양사에 4조 8000억 원 규모의 정책자금 추가 투입이 불가피해 채권단의 막대한 손실이 예상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내 조속히 시행함으로써 아시아나항공 자본확충 및 유동성 문제를 해소할 수 있고, 내년 초 대한항공의 유상증자를 바로 시행할 수 있게 돼서 정책자금 투입규모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가 사기업에 자금을 추가로 투입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올해 아시아나항공은 산은과 한국수출입은행(수은)으로부터 지원받은 3조 3000억 원을 이미 다 썼다. 결국 지난 9월 정부는 2조 4000억 원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추가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대한항공도 지난 4월 산은과 수은으로부터 1조 2000억 원을 지원받았다. 현재 대한항공은 추가 지원을 정부에 요청한 상황이다. 정부가 두 회사에 지원한 자금만 7조 7000억 원이다. 대한항공(4조 5000억 원)과 아시아나항공(1조 2000억 원)의 시가총액을 합친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인수 이후도 문제다. 올 상반기 매출만 보더라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각각 4조 원, 1조 9000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절반 수준이다. 올 상반기 기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부채비율은 각각 1099%, 2291%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의 부채 11조 5400억 원을 떠안겠다고 나선 셈이다. 1년 내 상환 의무가 있는 유동부채만 4조 7979억 원이다. 대한항공 단기 부채와 합치면 10조 원에 달한다. 만기를 연장한다고 하더라도 이자 비용을 견뎌낼지 의문이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박정훈 기자
독과점화로 인한 항공서비스 악화와 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대한항공이 아시나나항공을 인수할 경우 국내에서는 경쟁 상대가 없는 거대 항공기업이 탄생한다. 지난해 기준 국내선 여객운항 점유율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각각 22.9%, 19.3%다. 양사가 소유한 저비용항공사(LCC) 점유율까지 합치면 66%까지 올라간다. 국제선 점유율도 49%에 달한다. 두 항공사의 항공화물 점유율은 이보다 더 높다.
독과점을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심사에서 반대가 나올 수 있다. 공정위가 찬성해도 해외의 기업결합심사에서 승인이 나지 않는다면 인수안은 수포로 돌아간다. 양사 합병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이와 관련,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가격 인상이나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사실상 정부가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에 개입한 모양새가 되면서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1월 17일 국회 정무위원인 이용우·박용진·민병덕·민형배·송재호·오기형·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항공이 아닌 경영권 분쟁이 있는 한진칼에 자금을 투입하면서 결과적으로 총수 일가를 지원하는 거래가 될 수 있다”며 “아시아나항공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사실상 채권자관리기업이다. 부실기업의 대주주는 무슨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냐”며 꼬집었다. 이어 “혈세가 국가전략산업의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닌 대한항공 총수 일가와 아시아나항공 문제에 책임 있는 대주주와 채권단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