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옥 작가의 SBS ‘펜트하우스’가 승승장구하고 있다. 10월 말 9.2%로 시작한 이후 지난 11월 16일 14.5%까지 시청률이 치솟았다. 화제성도 높아 관련 기사가 쏟아진다. 문제는 극적인 설정과 피가 튀는 살인과 폭력이 난무하다는 점이다. 사진 출처=SBS ‘펜트하우스’ 홈페이지
#자극의 강도가 다르다?
김순옥 작가는 ‘막장극의 여왕’이라 불린다.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다른 사람으로 돌변했던 ‘아내의 유혹’을 시작으로 ‘왔다 장보리’와 ‘내 딸 금사월’을 거쳐 최근작인 ‘황후의 품격’까지 무엇 하나 조용히 넘어간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징계를 받기 일쑤였다. 대중도 이를 빤히 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더 시끄러울까.
자극의 강도가 전작들과 비교해 월등해 세졌기 때문이다. 최고급 주상복합건물 헤라팰리스를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는 한 소녀가 고층에서 떨어져 사망하는 것이 시작이었다. 사망한 소녀의 시신이 1층 동상에 널려 있고, 피가 낭자한 장면은 참으로 끔찍했다.
특히 ‘펜트하우스’에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적 장면이 많다. 주인공 주단태(엄기준 분)와 천서진(김소연 분)은 어린 소녀를 납치 감금하고 결국 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헤라팰리스에 사는 대다수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보니 그들의 자녀들도 문제다. 그들은 가난한 학생을 집단 폭행하고 수영장에 빠뜨린다. 이는 의도는 없을지언정 살인미수에 해당된다. 그리고 “세탁비에 보태쓰라”고 돈을 던지며 비릿한 웃음을 던진다.
이 외에도 총으로 머리를 쏴 살인을 하고, 시신의 손가락을 잘라내 보관하기도 한다. 시체 유기도 서슴지 않는다. 김 작가의 작품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출생의 비밀과 복수 등도 담겼지만, 이는 ‘애교’ 수준이다.
#왜 부자는 모두 악독한가
김순옥 작가의 작품에는 변하지 않는 공식이 하나 존재한다. 부(富)를 가진 자는 악(惡)이었다. 돈이면 뭐든 해결할 수 있다는 식으로 덤벼든다. 물론 세상에 그런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은 사회면 기사를 통해 대중도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돈 많은 이들이 모두 살인, 폭행 등의 악행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지는 않는다. ‘김순옥 월드’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물론 김 작가의 노림수는 자명하다. 그들이 일궈놓은 것을 모두 잃고 한순간에 나락에 떨어질 때 시청자들이 환호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드라마를 즐겨 보는 이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권선징악’이자 ‘사필귀정’이다.
하지만 ‘펜트하우스’는 이를 이뤄가는 과정 또한 찜찜하다. 오윤희(유진 분)가 교사를 폭행하는 자극적인 설정은 정당한 응징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복수를 위한 단초를 쥐게 되는 것이 부동산 재개발로 인해 목돈을 벌게 된다는 스토리 전개 역시 갑작스러운 동시에 뒷맛이 씁쓸하다.
‘펜트하우스’가 아쉬운 또 다른 지점은, 몇몇 작품을 연상시키는 클리셰가 난무한다는 것이다. 고급 주택단지에 사는 부자들이 입시를 놓고 경쟁한다는 것은 ‘SKY캐슬’의 향기를 풍긴다. 수작이라 평가받은 ‘SKY캐슬’에 눈높이가 맞춰진 시청자 입장에서는 ‘펜트하우스’의 허술함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펜트하우스’에는 유독 미성년자 대상 폭력 장면이 많다. 헤라팰리스에 사는 아이들도 문제다. 그들은 가난한 학생을 집단 폭행하고 수영장에 빠뜨린다. 이는 의도는 없을지언정 살인 미수에 해당된다. 사진=SBS ‘펜트하우스’ 방송 화면 캡처
#그런데 왜 보나
‘펜트하우스’의 시청자게시판에는 불만의 목소리가 들끓는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보기 싫으면 보지 말라”는 의견도 있다. 논란을 뒤로하고, ‘펜트하우스’를 즐겨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의미다. 15%에 육박하는 시청률이 이를 증명한다.
‘펜트하우스’는 김순옥 작가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전개가 매우 빠르다. 이야기를 질질 끄는 법이 없다. 출생의 비밀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하고 단 몇 분 만에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이를 입증한다. 매 회마다 수많은 떡밥을 던지고 회수한 뒤 또 다른 떡밥을 던지는 솜씨가 기가 막히다. 자극적인 장면과 구성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혼란스럽게 만든 뒤 속도감 있는 전개로 혼까지 쏙 빼놓는 셈이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김순옥 매직’이다.
배우들의 호연 역시 한몫한다. 물론 ‘펜트하우스’ 속 캐릭터는 대부분 과장됐다. 현실에 존재했다면 당장 쇠고랑을 차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게 뻔한 사회악들이다. 배우들은 이런 자극성 강한 캐릭터를 단단한 연기력으로 소화해내고 있다. 하지만 그 연기력을 이렇게 소모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 역시 크다.
시청자들이 ‘펜트하우스’를 찾는 또 다른 이유는 외부에서 찾아야 한다. 욕하면서 보는 ‘펜트하우스’를 빼면 볼 만한 드라마가 없다는 의미다. 강도 높은 설정과 표현만이 드라마의 시청률을 견인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동백꽃 필 무렵’은 ‘착한 드라마’라 불렸지만 시청률 23.8%를 기록했다. 결국은 ‘재미’다. ‘펜트하우스’보다 재미있는 드라마가 많다면 불편한 자극을 참아가며 이 드라마를 챙겨보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게다가 편성 방송사는 이를 묵인한다. SBS에 ‘지상파의 책무’를 묻는 것은 허울뿐이다. 각 방송사들이 경영난과 시청률 난조에 허덕이는 상황 속에서 ‘펜트하우스’와 같이 높은 시청률을 책임지는 콘텐츠는 그들에게 ‘효자’에 가깝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