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마지막 호위무사 등장이 초읽기에 돌입했다. 시기는 이르면 11월 말 단행될 1차 개각 이후다. 청와대가 노영민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의 후임자 찾기에 들어가면서 여권 안팎에선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는다. 비서실장 임무는 ‘막강 권력’부터 ‘킹메이커’까지 다양하다. 공통점은 ‘막후 실세’라는 것이다. 국무총리 위 왕실장이란 말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퍼즐은 문 대통령의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부터 여권 권력구도의 방향타가 될 전망이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11월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실, 대통령경호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문 대통령 순장조의 핵심은 ‘박지원 모델이냐, 문재인 모델이냐, 제3의 모델이냐’로 요약된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과 문 대통령은 민주정부 1·2기인 김대중(DJ)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비서실장이었다. 이들은 같은 듯 다른 인물이다. 전남 진도 출신인 박 원장은 DJ 정부 시절인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밀사 역할을 맡았다. 정무 감각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정치인이다. 다만 박 원장은 DJ의 가신그룹 동교동계 핵심 멤버는 아니었다. 한 원로 정치인은 “동교동계에서 박 원장은 비주류였다”고 회고했다.
박 원장과는 달리, 부산·울산·경남(PK) 출신인 문 대통령은 정무 감각이 뛰어난 정치인은 아니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권변호사 시절부터 함께한 오랜 동지였다. 노 전 대통령 재임 5년간 청와대에서 동고동락한 친구이자, 금강파와 함께 친노(친노무현)계의 양대산맥을 이뤘던 부산파 핵심 멤버였다. 친노계 한 관계자는 “(당시) 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이 되리라고 다들 예상했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비서실장 취임사에서 “참여정부에 하산은 없다”고 밝혔다. 취임사 제목도 ‘임기 후반 하산 아닌 정상 향한 마지막 코스’였다. 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낮은 상황에서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자, 당시 정치권 안팎에선 “레임덕을 용인하지 않고 그립을 세게 쥐고 가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관전 포인트는 문 대통령의 최종 선택이다. 그동안 노 실장 후임으로는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비롯해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 우윤근 전 주러대사 등이 오르내렸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등도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거론됐다. 최근엔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이 점쳐지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자리 이동설도 나온다.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사진=박은숙 기자
노 실장이 재차 천거한 것으로 알려진 우 전 대사는 최근 단국대 석좌교수에 취임하면서 순장조에서 멀어졌다. 문 대통령이 우 전 대사 등을 전격 발탁할 수는 있지만, 후임 비서실장은 일단 ‘양정철·최재성’ 등 친노·친문 핵심 인사로 좁혀지는 모양새다. 지난해 1월 9일 임명된 노 실장은 해를 넘기면 꼬박 2년을 채운다. 노 실장도 주변에 “직에 연연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마평에 오른 인사 중 뜨거운 감자는 ‘역할론’이 부상한 양 전 원장이다. 그는 전·현직 대통령인 노무현·문재인의 복심으로 통한다. 양 전 원장이 마지막 비서실장 자리에 오른다면, 문 대통령을 택한 노무현 승부수의 데자뷔가 될 전망이다. 다만 양 전 원장은 친문 인사들의 청와대 입성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최재성 카드를 대체재로 추천했다고 한다.
양정철 역할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최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비롯해 정세균 국무총리와 임종석 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 김경수 경남도지사, 민주당 이광재·김두관 의원 등도 두루 만났다. 여권 안팎에선 차기 대선 주자에 대한 ‘현미경 검증’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에 따라 양 전 원장의 마지막 비서실장설, 정권 재창출을 위한 권력 디자이너 역할론 등은 당분간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양 전 원장은 잠시 드러낸 행보에서도 권력 디자이너 본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차기 대선주자들과 회동에서 양 전 원장은 제2의 부엉이모임으로 불리는 가칭 ‘민주주의 4.0 연구원’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한 전제조건인 원팀을 흔들 친문계의 세력화를 사실상 반대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친문계 핵심 의원은 “양 전 원장은 그런 식으로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라며 “말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오해를 빚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민주주의 4.0은 계파 세력화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의원들이 최소 100만 원에서 최대 500만 원의 후원금을 내는 연구단체”라고 잘라 말했다. 여의도에선 양 전 원장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나타내는 정치권이 ‘과잉 해석한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이유로,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양정철’이란 명성을 소비한다는 것이다. 양정철 불가론을 내세우는 쪽에선 3철 중 한 명인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노 실장 후임으로 거론하기도 한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1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양 전 원장이 추천한 최재성 카드는 ‘정무통’과 ‘그립력’을 극대화한 인사다. DJ가 임기 말 ‘박지원 카드’를 내세웠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정세균(SK)계에 속한 최 수석은 원조 친노·친문과는 결이 다른 신친문에 속한다. 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당 대표 시절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최측근 인사로 분류됐다. 국회 문턱은 끝내 넘지 못했지만, ‘문재인·이낙연’의 합작품으로 알려졌던 전 국민 통신비 2만 원 지급도 최 수석이 밀어붙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정·청의 무게추가 청와대로 쏠렸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국회 한 보좌관은 “최 수석은 강점 중 하나는 장악력”이라고 말했다. 비서실장에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진 최 수석은 최근 측근들 전화도 받지 않고 로키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최 수석의 내부 승진은 정치 문법에 들어맞는 인사이기도 하다. 역대 마지막 비서실장은 정무 감각이 뛰어나거나, 부처에 대한 장악력이 강했다. 김정렴 전 비서실장은 9년 3개월간(1969년 10월 21일∼1978년 12월 22일)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김 전 실장은 정권의 최측근 인사는 아니었지만, 부처에 대한 강력한 장악력으로 ‘박정희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통했다. 재무부 장관 출신인 그가 역대 최장수 비서실장 기록을 세운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박정희 정권의 실세였던 차지철 등도 김 전 실장 앞에선 꼼짝을 못했다는 일화는 지금껏 회자된다.
제5공화국 땐 대구·경북(TK) 대부로 불린 김윤환 전 의원이 마지막 비서실장에 올랐다. 노태우 정부 땐 정해창 전 법무부 장관이 비서실장을 맡았다. 그는 박근혜 정부 때까지 실세로 군림했던 김기춘 전 의원과 함께 유신체제 법령 입법에 한 획을 그은 인사다. 문민정부 때부턴 정치인 전성시대가 열렸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김용태 전 의원,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광옥 전 의원을 각각 비서실장으로 발탁했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언론인 출신인 ‘하금열 카드’를 임기 말에 내밀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임종석·노영민’ 등 정치인 출신을 중용했다.
변수는 제3 모델의 출현이다. 친노계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비서실장은 재보선 등 내부 권력구도와 맞물려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끊이지 않았던 김현미 카드도 재점화되고 있다. 친문 핵심 인사가 ‘김현미 유임 가닥’ 보도 이후 주변에 “깜짝 놀랄 만한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관계자 발언의 요지는 새 국토부 장관만 결정되면, 김현미 카드를 노 실장 후임으로 내밀 수 있다는 것이다.
내년 4월 재보선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변수는 박영선 카드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여권 인사들이 가장 많이 베팅하는 서울시장 후보다. 다만 그는 친문은 아니다. 박 장관은 서울시장 출마에 대해 “생각 안 해봤다”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친문계 한 보좌관은 “서울시장 출마 여부는 박 장관만이 알겠지만, 최근 당 내부에선 비서실장 기용설도 들린다”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초선 의원은 “문 대통령의 의중을 모른 채 나오는 비서실장 후보군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여권 한 원로 인사도 “청와대 참모진은 그림자 권력에 불과하다”며 “내부에서 설을 퍼트리고 권력구도에 이용하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라고 전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