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오후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 11차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안상수 신임 당대표가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당선이 확정되고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는 안상수 대표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잘 웃지 않는 특유의 인상 때문이기도 했지만 선거 기간 내내 타 후보들로부터 1위라는 이유로 흠씬 두들겨 맞은 후유증이 쉬 가시지 않은 표정이 역력했다. 홍준표 의원이 제기한 군 면제와 지명수배 논란은 4선을 거치면서 충분히 단련이 되었던 논란거리였음에도 수세적인 변명으로 일관, 오히려 화를 키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그의 당선으로 “마침내 당(안상수)-정(정운찬 총리)-청(이명박 대통령)의 ‘면제 트라이앵글’이 완성됐다”는 비아냥이 터져 나오는 것도 그의 발걸음을 짓누르고 있다.
또한 이웃집과의 개 소음 송사 논란(1997년 이웃집 개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옆집 사람에게 2000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것)은 심심하던 선거전에 톡 쏘는 조미료 역할을 했지만 네티즌들의 조롱거리 대상으로 전락,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안 대표는 가볍게 웃고 넘기지 못하는 내적 엄격함과 섬세함 때문에 홍 의원의 잽 공격에 속절없이 당하는 미숙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전당대회 현장에 있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그냥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저런 송사에 휘말리기도 하는 게 인지상정인데 10년도 더 지난 일을 굳이 꺼내는 저의가 뭔지 의심스럽다’ 정도로 논쟁을 피하면 될 것을 조목조목 설명한 것이 구차한 변명으로 들려 더 안쓰러웠다. 홍 의원은 저격수로 내공을 가진 공격수인데 그가 짜놓은 진흙탕 프레임에서 빠져 나와 안 대표만의 정책 프레임을 만들어 그를 유도해내는 노력이 없어 안타까웠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당대회 당일 현장 분위기를 압도하지도 못했다. 여성 후보 3인방(나경원 이혜훈 정미경)이 카리스마 넘치는 연설로 큰 주목을 받은 반면 안 대표는 본인 스스로 “연설로만 평가한다면 내가 경선에서 꼴찌를 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열세를 인정하기도 했다.
이런 저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안 대표가 비교적 손쉽게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데는 ‘조직’의 힘이 컸다. 그는 2위 홍준표 의원에 649표(2%) 차로 신승했지만, 국민여론조사에서 재선의 나경원 의원은 물론 홍준표 의원에게도 밀리며 3위를 차지해 집권 여당 대표의 체면을 구겼다. ‘철밥통’ 당심이 민심에 부응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그들만의 선거’ 우승 트로피를 안 대표가 받은 셈이다.
그런데 한나라당 조직의 힘은 안 대표에게 양날의 칼처럼 다가온다. 그가 친이 주류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대표직에는 안착했지만 계파의 성에 갇혀 자칫 민심과 점점 멀어지는 ‘그들만의 대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당 장악력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임기 첫날 현충원 방문 일정에 불참, 안 대표에 대한 불신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또한 그는 조직 선거에 패한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연일 안 대표를 공격하고 있다. 홍 최고위원이 이렇게 대놓고 안 대표를 공격하는 ‘배짱’ 뒤에는 민심에서는 자신이 당 대표인데 ‘반칙’으로 대표를 강탈당한 듯한 불만 심리가 자리해 있다.
▲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두언·나경원 최고위원, 안상수 대표, 서병수·홍준표 최고위원. 유장훈 기자 |
만약 홍 최고위원의 공격이 장기화될 경우 안 대표의 당 장악력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일정기간 ‘냉각기’를 거친 뒤 안 대표가 본격적인 대응에 나선다면 당 지도부는 더욱 내홍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홍 최고위원이 원내대표를 지낼 때에도 청와대와 사사건건 충돌이 빚어진 점을 감안하면 안 대표가 홍 최고위원을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여당 수장의 성적표가 달라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안 대표의 또 다른 한계는 당과 청와대 사이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는 친이 세력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당 대표에 오른 이상 청와대의 ‘주문’을 적극 수용할 수밖에 없다. 반면 6·2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여당으로서는 ‘수평적 당·청 관계’를 요구하는 당 안팎의 요구도 적극 수용해야만 한다. 여기에 안 대표의 딜레마가 있다.
사실 그는 원내대표 시절 야당의 강력한 저항에도 미디어관계법, 4대강 사업 예산안 등을 처리해내 청와대의 강력한 신임을 받고 있다. 청와대도 “안정감 있게 여당을 이끌어갈 적임자를 만났다”며 그의 취임을 환영하고 있다. 청와대의 지원에다 전대에서 뽑힌 5명의 최고위원 중 범친이계가 4명이나 되기 때문에 강력한 친정 체제가 갖춰졌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당·청 관계가 예전에 비해 훨씬 긴밀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청와대 거수기 역할은 친박 세력 등 비주류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홍 최고위원은 “당을 청와대 집행기구로 전락시키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한 압박에 나서고 있다. 이를 의식한 안 대표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자신이 ‘화합과 통합’을 이뤄낼 적임자임을 강조했다. 특히 그는 ‘박근혜’라는 골치 아픈 변수를 잘 관리해야만 한다. 안 대표의 취임 일성은 ‘박근혜 총리론’이었다. 안 대표는 “(조만간) 박 전 대표를 예방할 생각이다. 당 운영에 대해 조언을 받고, 총리직 의사가 있는지, 그런 부분도 논의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총리 제안에 대해 친박계는 즉각 “진정성이 없다”며 평가절하한 바 있다. 안 대표도 그 실현 가능성에 무게를 두기보다 상징적 의미로 했던 정치적 레토릭(수사)이었다. 일단 박 전 대표에게 협조와 화해의 모양새를 취해 명분을 쌓은 뒤 거절하는 그를 압박한다는 것이다. 특히 박 전 대표는 이번 전대에서 철저하게 발빼기 전략으로 일관했다. 점점 쇠락해 가는 이명박 대통령과 보조를 맞추는 것이 대권전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4대강 사업 등 이명박 정권의 굵직한 정책에 대해 예전보다 더 높게 반대의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안 대표로서도 ‘박근혜’라는 불안한 갈등 요소를 정치의 장으로 끌어들여 ‘관리’를 해야만 하는 필요성을 점점 크게 느끼고 있다. 여기에는 ‘계파 일소’를 명분으로 강력한 안상수 체제를 내세워 정국을 주도해 가겠다는 의도도 숨어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이번 전대에서 보여준 것은 철저한 비협조 및 방관 전략이다. 서병수 의원이 4위 이내에 들지 못하고 결국 여성 몫의 빈자리를 채워 들어간 것도 박 전 대표가 전혀 전대에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안 대표의 ‘박근혜 끌어들이기’ 전략은 더 이상 친박계와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는 선에서 머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는 결국 지금까지 반복돼온 친이-친박 간 갈등의 폭을 더 심화시키는 ‘무대책’이라는 점에서 그의 지도력은 출범하기도 전에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안 대표는 지금 6·2 지방선거 패배 이후 당내에 나타난 정권 재창출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극복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권력에 등을 돌린 민심을 목도한 의원들은 “대통령도 정권 재창출에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국민이 반대하는 모든 정책을 재고하는 등 철저하게 몸을 낮춰 민심 코드에 맞춰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는 1기 지도부와 달리 ‘수평적 당·청 관계’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친이계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대통령의 국정운영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정권 재창출이다. 집권 후반기에 여론의 비판을 무릅쓰면서까지 청와대를 옹호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게 당내의 대체적인 기류”라고 말했다.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수록 당과 청와대의 파열음이 커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거중 조정에 나서야 할 안 대표의 정치력이 주목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안 대표가 강경파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청와대의 ‘주문 생산’에 적극 협력했다는 점에서 그의 정치력에 의문부호가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안상수 신임 대표는 앞으로 홍준표의 몽니, 박근혜의 방관, 국민들의 외면 등 세 고개를 넘어서야 한다. 여당의 수장 자리에 올랐지만 정작 지금부터 ‘마산 촌놈’ 안상수 대표의 진짜 도전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입’ 때문에 죽다 살아나
안상수 대표는 전당대회 날 정견발표에서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담담하게 밝혔다. 지독하게 어려운 시절을 보냈기 때문인지, 안 대표는 평소에도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꼼꼼하게 일처리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그의 ‘관운’은 조금씩 길게 나아가는 스타일이었다. ‘낙하산’을 통해 벼락출세를 했던 것은 아니지만 꾸준하게 자신의 정치영역을 넓혀나갔던 것이다. 자신의 국회 ‘동기’(15대) 이재오 김문수 홍준표 등이 ‘저격수 트리오’로 활동할 때 그는 상대적으로 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17대 국회 마지막 원내대표로서 민주당 측의 BBK 의혹 제기 등 이명박 대통령 후보에 대한 공세를 막아내면서 친이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그 뒤 2008년 18대 총선에서 4선에 성공한 뒤 국회의장직에 도전했으나 김형오 의원에게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두 번째 원내대표를 맡으면서 미디어법, 4대강 예산안, 노동관계법의 일방처리를 주도하며 이명박 대통령의 깊은 신임을 받았다. 이후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을 만나 봉은사 명진 스님의 축출 필요성을 거론한 ‘좌파 주지’ 발언이 공개되면서 정치생명에 큰 위기를 맞기도 했다. 구설수에 오른 그는 6·2 지방선거 패배의 빌미를 제공해 낙마 일보직전까지 갔지만 친이 세력의 도움으로 결국 여당 대표의 꿈을 이루게 됐다.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그의 오랜 생존력 비결은 다른 동료 의원들의 경우 차례로 대권주자로 떠오르며 자신들의 정치를 한 것과는 달리 그는 철저하게 ‘주군’의 뜻을 따르는 ‘공무원’ 역할을 자임했다”라고 말했다. 큰 욕심이 없어 여당 대표에까지 올랐지만 이제부터 더 큰 꿈을 꾸려면 안상수만의 정치 그림을 새로 그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