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성 높고 폭발력도 큰 예능이 때때로 ‘독이 든 성배’가 되는 일은 혜민 스님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저마다의 목적을 갖고 예능에 동참하는 출연자들 가운데 뜻밖의 논란에 직면해 위기를 맞는 경우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최근 개그맨 윤형빈은 아내 정경미와의 부부생활을 예능에서 공개했다가 악성 댓글 공격에 시달리기도 했다. 예능을 통해 유명세를 얻은 일반인 가운데 과거 행적이 폭로돼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많은 것을 가졌다는 의미의 신조어 ‘풀(full) 소유’는 조계종 ‘스타 승려’ 혜민을 상징하는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됐다. 사진=tvN ‘온 앤 오프’ 방송 화면 캡처
#남산 보이는 주택에서의 ‘이중생활’ 비판
혜민 스님은 대중친화력 높은 대표적 불교계 인사다. 1974년생으로 미국 국적자다. 2000년 해인사에서 사미계를 받고, 2008년 직지사에서 비구계를 받아 조계종 승려가 됐다. 스무 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간 그는 하버드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 석사, 프린스턴대학교 종교학 박사 학위 등을 받고 종교학 교수로도 활동했다. 국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건 2012년 출간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통해서다. 때마침 불어 닥친 힐링 열풍을 타고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전 세계 26개국에 판권 수출까지 됐다.
화려한 이력과 친화력, 게다가 책의 인기에 힘입어 혜민 스님은 그동안 방송 출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이름을 걸고 명상 콘서트를 진행하면서 불교 신자를 넘어 폭넓게 소통하기도 했다. 하지만 때때로 구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2015년 힙합가수 이센스는 앨범 ‘Anecdote’ 수록곡 ‘A-G-E’에서 “TV에 나오는 스님 말 안 믿어 난. 헌금들 어디로 가나 알고 싶어 난. 이런 말들이 금기냐?”는 등 가사를 통해 사실상 혜민 스님을 ‘저격’했다는 의혹의 시선도 받았다.
그런 혜민 스님에 대한 논란이 증폭된 결정적인 ‘사건’은 11월 7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온 앤 오프’에서 벌어졌다. 연예인과 유명인들이 출연해 남들이 모르는 일상을 보여주는 콘셉트의 이 프로그램에서 혜민 스님은 ‘남산타워가 한눈에 보이는’ 넓은 집을 공개했다. 제작진은 ‘스님은 절에서만 산다? 공기 좋고 풍경 좋은 도심 속 스님 일상 최초 공개’라는 내용까지 친절하게 덧붙였다. ‘스님의 스마트한 이중생활’이라는 부제도 달았다.
시청자와 소통하겠다는 제작진과 혜민 스님의 의도와 달리 시청자의 반응은 싸늘했다. 사찰이 아닌 서울 도심의 현대적인 주택에서 살아가는 낯선 스님의 모습이 이질감을 안겼고, 스님이 보내는 일상 역시 낯설었다. 스타트업 회사와 협업해 유료로 서비스하는 명상 애플리케이션(앱) 제작에 참여하는 활동에서는 특히 의견이 엇갈렸다.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이 예능에 출연하는 데는 대개 특정한 ‘목적’이 있기 마련. 평소 예능과 선을 긋다가 주연한 영화가 개봉할 무렵 예능에 출연하는 배우가 많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혜민 스님이라고 다르지 않다. 예능을 통해 얻으려는 나름의 ‘바람’도 존재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온 앤 오프’ 방송에서 혜민 스님은 명상 앱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소개했다. 이는 방송 직후 시청자들이 가장 크게 분노를 터트린 부분. 앱에는 남녀 주선 만남이나 타로 등 아이템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판은 더욱 커졌다. 속세를 떠나 참선에 집중해야 마땅한 승려의 모습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예능 출연을 계기로 증폭된 논란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른바 ‘건물주 논란’까지 제기됐다. 최근 ‘조선비즈’가 혜민 스님이 서울의 한 단독주택을 1억 원의 시세차익을 남기고 매매했다는 보도를 했다. 이에 따르면 2015년 8월 미국인 주봉석 씨는 서울 삼청동의 한 단독주택 건물을 8억 원에 사들였고, 2018년 3월 대한불교조계종 단체 고담선원에 9억 원에 매도했다. 주봉석이란 이름은 혜민 스님의 속명. 해당 주택을 매수한 고담선원 대표의 이름인 ‘주란 봉석’은 혜민 스님의 영어명과 속명을 합친 이름이라는 해석이 따랐다. 이에 혜민 스님은 이렇다 할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푸른 눈의 수행자’로 불리는 미국인 현각 스님은 혜민 스님이 ‘온 앤 오프’에 출연한 직후 SNS에 “속지 마 연예인일 뿐이다. 일체 석가모니 가르침 전혀 모르는 도둑놈일 뿐”이라는 글을 쓰고 맹공을 퍼부었다. 음식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 역시 “진정한 의미의 승려로 보기 어렵다”는 비판으로 가세했다.
예능 출연으로 불거진 걷잡을 수 없는 논란에 혜민 스님은 결국 무릎을 꿇었다. 여론이 악화되자 SNS를 통해 “모든 활동을 내려놓겠다”며 “대중 선원으로 돌아가 부처님 말씀을 다시 공부하고 수행 기도 정진하겠다”고 사과했다.
JTBC 예능 ‘1호가 될 순 없어’에 출연한 윤형빈은 임신한 아내 정경미에게 무심하다 못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일상을 여과 없이 공개한 뒤 비난에 휘말렸다. 사진=JTBC ‘1호가 될 순 없어’ 방송 화면 캡처
#굳이 예능 출연해…논란 자초
예능은 드라마 등과 달리 일상을 공개하고 배우자나 자녀 등 가족까지 보여야 하는 만큼 대중과 친밀해지는 기회이지만 그만큼 위험요소도 다분하다. 사적인 생활까지 공개해야 하는 탓에 자칫 예기치 않은 상황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최근에는 개그맨 윤형빈이 JTBC 예능 프로그램 ‘1호가 될 순 없어’에 아내 정경미와 출연해 호된 질타를 받았다. 이들 부부는 결혼 전 KBS 2TV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면서 방송을 통해 줄곧 애정을 과시해왔다. 윤형빈이 외친 “정경미 포에버!”라는 말이 유행어가 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1호가 될 순 없어’에서의 윤형빈은 임신한 아내에게 무심하다 못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일상을 여과 없이 공개했다. 임신 중인 정경미는 아들 육아는 물론 살림까지 도맡았고, 남편 윤형빈은 그런 아내가 임신 몇 주차인지조차 모르는 모습이 그대로 노출됐다. 심지어 아내가 다니는 산부인과가 어디인지도 몰라 공분을 샀다.
‘1호가 될 순 없어’는 개그맨 부부의 일상을 가감 없이 공개한다는 취지로 인기를 얻는 예능이다. 하지만 윤형빈, 정경미 부부가 출연한 방송 직후 시청자들은 윤형빈의 SNS에 몰려가 비난을 쏟아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도 이름이 오르내리자, 윤형빈은 SNS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일반인 출연 예능의 경우 위험은 더 크다. 출연자 검증에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올해 초 MBC 예능 프로그램 ‘부러우면 지는 거다’에 출연한 스타 셰프 이원일의 약혼녀인 김유진 프리랜서 PD는 과거 뉴질랜드 유학 시절 학교 폭력 논란에 휘말렸다. 김 PD로부터 학교 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A 씨의 일방적인 주장이 그대로 여론으로 확산하면서 결국 극단적인 시도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건강을 회복하고 A 씨에 대한 법적 대응을 하고 있지만, 예능이 가진 폭발력만큼 논란의 확산도 폭발적인 사례로 남았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