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엄마는 하루하루가 희망이었다. 마당에서 모이를 먹는 씨암탉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했고, 마당에서 잘 자라주는 씨암탉이 암소로 보이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씨암탉은 이번 주에도 아주 커다랗고 탐스러운 달걀을 낳았다. 엄마는 그 달걀을 팔아 집안형편을 개선할 종잣돈을 마련할 생각에 시장까지 가는 길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엄마가 집을 나서는 순간 글공부를 하는 남편에게 맡겨놓은 아들이 눈물 콧물 범벅이 돼 시장으로 향하는 엄마의 치마폭에 매달렸다. 이날 따라 아이는 절대로 엄마를 놓아주지 않았고 비명에 가까운 처절한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엄마는 아이를 달래고 달래다 마침내 마당에서 모이를 쪼고 있는 씨암탉을 가리켰다. 엄마는 “너 엄마 시장에 다녀올 동안 아빠 옆에서 얌전히 있으면 엄마가 저 암탉으로 맛있는 백숙을 만들어줄게”라고 약속했다. 그제야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엄마를 놓아줬다.
엄마는 산에서 캔 나물과 ‘집안의 보물’ 씨암탉이 낳은 달걀을 가지고 시장에 갔다. 일주일 고생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산나물도 제값에 팔렸고 달걀은 비싼 값에 팔렸다. 사람들은 다음에도 자기에게 팔아달라고 신신당부까지 했다. 엄마는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이제 정말로 집안 형편이 필 수 있다는 희망이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엄마는 집에 있을 남편과 아이를 위해 정말 큰맘을 먹고 떡과 먹을 것을 샀다. 그리곤 한달음에 집으로 향했다.
엄마가 집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엄마는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아이와 아빠가 집안의 희망인 씨암탉을 한 상 가득 차려놓고 있었다. 엄마는 그 광경을 보곤 모든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고 그간의 고생은 물론 앞으로도 아무 희망 없이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그려지면서 분노가 몰려왔다.
남편과 아이는 엄마 오기만을 학수고대했다며 어서 와서 같이 씨암탉 백숙을 먹자고 했다. 엄마는 장바구니를 집어던지며 남편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당신 도대체 정신이 있는 사람이냐. 이 씨암탉이 우리 집안에서 어떤 의미인지 모르지 않으면서 어떻게 잡아먹을 수 있는 거냐. 정말 정신이 나간 것 아니냐.” 엄마는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남편은 아내에게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당장 내일 굶어 죽는다 해도, 저 씨암탉이 없어서 우리 집안이 더 오랜 시간 고생을 한다 해도 그것이 우리 아이에게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소.”
더불어민주당은 ‘자신의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보궐선거를 할 시에는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을 바꿨다. 내년 지자체장 재보궐 선거에 후보를 내기로 했다. 당헌 개정의 옳고 그름을 논하고 싶진 않다. 당의 입장에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가올 서울·부산시장 선거는 당 입장에선 씨암탉이다.
그 씨암탉을 잡아먹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국민에게, 특히 아이들에게 “어떠한 약속도 자신에게 불리하면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선례를 만든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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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