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하회마을 골목골목이 전동카들로 가득 찬다. 흙먼지를 날리며 막무가내로 돌아다니는 전동카 탓에 도보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관람객이 많은 고택 앞으로는 전동카들이 줄을 이으며 정체를 빚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하고 때론 행인과 부딪힐 듯 아슬아슬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전기차라서 주행 시 소리가 잘 나지 않는 탓에 앞서 걸어가던 행인이 전동카에 치일 위험도 다분하다. 행인을 향해 경적을 울리는 일이 잦고 그로 인해 관광객들끼리 다툼도 일어난다. 하회마을에서 전동카는 주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의 눈살을 수시로 찌푸리게 하는 애물단지가 됐다.
하회마을에서 전동카는 주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의 눈살을 수시로 찌푸리게 하는 애물단지가 됐다. 사진=이송이 기자
#2세들, 먹고 살 일 필요하다?
이 수많은 전동카들은 어떻게 하회마을에 들어오게 된 걸까. 수십 년째 하회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에게 물었다. 72세의 이 주민은 “5~6년 전쯤부터 하나둘 전동카 운행이 시작됐다. 처음엔 마을 주민의 자녀가 업체를 운영했다. 마을 주민이 하니까 함부로 뭐라고 하기가 어려웠다. 당시엔 그저 어리둥절했는데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하회마을은 현대 사회에 흔치 않은 씨족사회다. 풍산 류씨 집성촌으로 조선 중기 정치가이자 학자로 후대에 이름을 남긴 서애 류성룡 선생의 마을로 유명하다.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류성룡 선생 집안의 후손이다. 마을의 외형도 600여 년 전 옛 모습을 상당부분 간직하고 있다. 2010년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됐는데 이는 마을의 외형적인 부분뿐 아니라 제사 등의 유교문화와 씨족사회의 특수성을 인정받은 결과였다. 해외 정상 등 외국의 귀빈이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 한국의 전통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자주 찾는 방문지이기도 하다.
하회마을이 씨족사회다보니 주민들끼리는 크게 보면 두루두루 가깝거나 먼 친척이다. 누구는 누구의 조카뻘이고 누구는 누구의 당숙이며 골목을 지나는 할아버지나 할머니도 영 남남은 아니다. 이런 씨족마을의 자손 가운데 한 명이 벌인 사업이라는 것이 발단이 됐다. 학업이나 직장을 위해 줄곧 외지에 나가살던 자손들이 고택을 지키겠다며 마을에 들어오면서 전동카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주민들 말처럼 ‘자식들이 외지에 나가서 고생하다 마을에 들어와 벌인 사업’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전동카를 막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됐다. ‘다 아는 사이’라 문제가 보여도 함부로 중단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마을 어른들은 하회마을이 문화유산이 되면서 집을 함부로 고치기도 어려워 생활하기 불편하고 먹고살 만한 일이 없어 자손들이 하나둘 외지로 떠나가는 것을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한 주민은 “전동카 사업을 하는 분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아니다. 원래 넉넉한 집 자손들이고 안동시와 서울에도 집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하회를 지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망치겠다는 것”이라며 “외지에서 사업하던 2세들이 사업이 잘 안돼서 집 관리한다며 돌아왔는데 마을에서 살려면 먹고 살게 있어야 되지 않느냐며 전동카 사업을 시작했다. 1년에 못해도 2억~3억 원씩 번다고 하는데 어디서 그런 돈을 벌겠나. 마을 주민들과 어르신들이 아무리 못하게 해도 한 번 돈 맛을 봤으니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하회마을에 살고 있는 72세의 한 주민은 “5~6년 전쯤부터 하나둘 전동카 운행이 시작됐다. 마을주민이 하니까 함부로 뭐라고 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한다. 사진=이송이 기자
#주민 vs 업체 수년간 다툼
하회마을 초입에는 몇 개의 전동카 업체가 늘어서 있다. 4개의 업체에서 총 150대 정도가 운행된다. 호객행위도 이루어진다. 전동카 한 대를 빌리는데 싼 곳은 평일기준 하루 종일 2만 원인 곳도 있고, 비싼 곳은 1시간에 2만 원도 받는다. 전동카 모양이나 성능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라진다. 이 가운데 가장 큰 업체 관계자는 “30~40대의 전동카를 운행 중인데 주말엔 빈 차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한 차가 하루에 3~4번씩 나갔다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전동카 사업은 처음엔 마을 주민이 시작했지만 지금은 이권을 좇아 외지인도 들어와 마을 주민과 일반 사업자가 섞여 있다.
마을 둑길에서 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주민은 “말도 마라, 매점에 있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사고를 목격한다. 인파가 몰리는 날씨 좋은 주말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119구급대가 드나들 정도다. 전동카끼리 부딪히거나 둑 아래로 넘어지는 사고도 빈번하다. 농사 때문에 경운기가 다녀야 하는데 경운기 한번 오가기도 쉽지 않은 길이 돼버렸다”고 전했다.
좁은 골목길에서 전동카 운전자들끼리나 전동카와 보행자 간, 전동카와 마을주민 간에 언성을 높이는 모습도 흔히 목격된다. 사진=이송이 기자
실제로 마을주민들과 전동카 업체 사이에는 수년간 언쟁과 다툼이 있어왔다. 하회마을보존회는 “전동카 사업을 제지시킬 법령이 없어 막을 방법도 없다”고 말한다.
일요신문이 문화재청에 문의하니 “안동시와 함께 고민 중이다. 마을의 관리 주체가 안동시라 안동시의 조례 등이 없이는 문화재청에서도 딱히 손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고 대안을 찾고 있지만 현행법상으로는 사업행위를 막을 법적인 근거가 없는 실정”이라며 “사업자 가운데 주민이 끼어 있어 마을보존회를 통해 주민 및 사업자와의 협의점을 찾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사실상 법적으로 손쓸 수 있는 부분이 없다며 안동시에 바통을 넘기고 있는 상태다. 그러면서 “민원을 접수한 경찰청에서도 단속에 대한 부분을 고민 하는 걸로 알지만 법령이 없는 게 문제”라고 전했다.
안동시 세계문화유산팀은 “하회마을에 관해서는 대부분의 관리를 하회마을 관리사무소에서 따로 하고 있다”며 바통을 다시 관리사무소로 넘겼다. 하회마을 관리사무소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전통을 이으며 마을에서 살아가려면 먹고 살 일도 필요하다고 하기에 생계를 막을 수도 없는 일”이라며 “처음 전동카 사업을 시작한 업체가 마을 어르신들께 허락을 받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하더라. 이제 와서 무작정 못하게 할 수도 없는 일이라 협의점을 찾고 있다”고만 답했다.
#문화재청·안동시 서로 대책 미뤄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협의점을 찾는다고 한 게 언젠데 문화재청이나 안동시나 몇 년 동안 아무런 대책이 없다. 하회마을은 민속촌이 아니다. 민속촌이라면 전동카가 운행되어도 문제없을 테지만 하회마을은 세계문화유산이자 동시에 주민들이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는 일상의 공간”이라며 “마을의 정신적 유산이 사라지고 외형만 보존된다면 민속촌과 다를 게 뭐냐”고 꼬집었다.
사실상 안동시에서 조례 등을 따로 제정하지 않는 이상 문제 해결은 어려워 보인다. 안동시 관련 과들에 문의해봤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나 방안은 없는 상태다. 문화재청, 안동시, 관리사무소, 마을보존회 사이로 바통만 왔다 갔다 하는 실정이다.
한 관광객은 “이대로라면 킥보드가 들어오지 말란 법도 없다. 킥보드가 들어온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으며 “관광객이 보기에도 하회마을은 나름대로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 때문에 마을 생활상 자체가 하나의 문화유산인데 그 정취가 전동카로 인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 관광객은 “이대로라면 하회마을에 킥보드가 들어오지 말란 법도 없다. 킥보드가 들어온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사진=이송이 기자
하루 2시간씩 종택 소개를 하며 소일하는 80세 마을 어르신은 “전동카를 볼 때마다 하회마을이 왜 이렇게까지 됐나 개탄스럽다. 처음부터 막지 못한 게 한이다”라며 “하회마을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10년 전 마을 내부에 흩어져 있던 식당들까지 모두 마을 밖으로 밀어내 정리하고 마을을 옛 모습 그대로 유지시켜 왔는데 세계문화유산 재심사라도 이루어지면 전동카 문제로 세계문화유산이 취소되지는 않을지 걱정”이라고 전했다.
관광객들은 전동카를 타고 두어 시간 관광을 하다 떠나버리지만 하회마을 주민들은 매일같이 전동카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안동=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