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1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무위원석에 앉아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추미애 장관이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대면 감찰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에 대해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사실상 ‘윤석열 찍어내기’ 수순으로 본다. 감찰에 응하지 않으면 법무부 규정에 따라 징계사유가 되는데 이를 근거로 추 장관이 윤 총장 징계절차에 착수할 것이란 전망이다. 윤 총장과 가까운 한 변호사는 “(윤 총장이) 감찰 불응에 따른 징계를 받느니 차라리 직을 내려놓을 것”이라고 했다.
윤 총장 측은 라임 사건 검사 봐주기 의혹, 특정 언론사 사주와의 만남 등에 대한 진상 조사엔 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평검사의 대면 감찰 시도 등 일련의 절차 등이 부적절할 뿐 아니라 ‘망신주기’에 불과하다는 판단이다. 검찰 내에서도 법무부 감찰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을 두고 추 장관이 무리수를 뒀다는 견해가 우세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능성은 낮지만 윤 총장이 감찰을 받더라도 운신의 폭은 좁다. 현직 검찰총장으론 최초로 감찰 대상에 올랐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부담스럽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2013년 ‘혼외자 논란’이 불거진 직후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이 감찰을 지시하자 곧바로 사의를 표한 바 있다. 어찌됐건 추 장관이 꺼내든 감찰 카드가 윤 총장을 압박하기 위한 용도로는 효과를 거둘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정치권에선 이번 감찰을 둘러싼 갈등이 올해 하반기부터 정국을 달궈온 ‘추미애-윤석열 전쟁’의 끝이 될 것으로 점친다. 그 결과에 따라 둘 중 하나, 또는 둘 다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여권 인사들은 윤 총장 자진사퇴 후 추 장관이 연말 또는 원포인트 개각 명단에 포함되는 시나리오에 무게를 둔다(관련기사 ‘대통령 결단만 남았다?’ 추미애-윤석열 동반퇴진론 수면 위로).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추 장관 교체설이다. ‘윤 총장 사퇴’가 전제로 달리긴 하지만 친문 진영에선 추 장관 거취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개각 명단에 추 장관이 포함될지를 수소문하는 의원들도 자주 목격된다.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청와대가 정치권뿐 아니라 세간의 추 장관 관련 여론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면서 “윤석열 총장이 언제까지 버틸지가 변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는 내년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추 장관이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친문 진영 내부 기류와도 맞닿아 있다. ‘추미애 비토론’이다. 친문계 한 인사는 “선거에서 확장성이 힘들면 집토끼라도 잘 지켜야 한다”면서 “그런데 최근엔 지지층 결집도가 느슨해지고 있다. 진보 진영에서조차 일련의 추 장관 조치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검찰개혁 필요성과는 별개로 추미애-윤석열 간 감정싸움이 길어지면 결국 집권 세력과 문 대통령이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10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가 잠시 중지된 후 국감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여권의 이러한 기류는 군데군데서 표출되고 있다. 11월 10일 정세균 총리는 추 장관을 향해 “절제된 언어를 사용했으면 한다”는 취지로 말했고, 이낙연 대표도 11월 17일 “스타일 쪽에서 아쉽다는 말을 듣는 것”이라고 완곡히 비판했다. 여권이 추 장관 취임 후 윤 총장에 대한 일방적인 공세를 쏟아냈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스탠스다.
국회 예결위원장인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1월 12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과 설전을 벌이던 추 장관에게 “정도껏 하세요”라고까지 했다. 이를 두고 여권의 속마음이 반영됐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윤 총장과의 대립 구도에 대해 피로감이 커졌음을 암시하는 발언이었다는 얘기다.
최근 나온 추 장관 발언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여권 분위기에 대한 감정을 엿볼 수 있다. 추 장관은 11월 16일 국회에 출석, 대선 또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검찰개혁을 하기 전까지는 정치적 욕망, 야망을 갖지 않기로 맹세했다”고 답했다. 자신의 행보가 문재인 정부 최우선 과제인 검찰개혁을 위한 것임을 밝힌 것인데, 여권에서 거론되는 교체설에 대한 섭섭함을 털어놓은 것으로도 읽혔다.
추 장관은 11월 19일에도 개인 SNS를 통해 자신의 심경을 털어놨다. “법무부 장관 취임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몇 년은 지나버린 것 같다”고 말을 꺼낸 추 장관은 “해방 이후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하고 좌절했던 검찰개혁의 과제를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는 절박한 국민의 염원을 외면할 수 없다”고 했다. 다시 한 번 자신이 검찰개혁의 선봉임을 강조한 것이다. 앞서 추 장관은 자신에게 핀잔을 줬던 정성호 의원에게는 ‘친애하는 정성호 동지’라는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추 장관 측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추 장관이 페이스북에 남긴 글을 보고 지금 상당히 심적으로 힘들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야당이 아닌, 여권에서조차 자신을 흔드는 듯한 말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추 장관이 지인들에게 ‘나 아니면 누가 조국 뒤를 이어 윤 총장을 상대할 수 있었겠느냐’라는 의미로 하소연했다고 들었다. 검찰개혁 총대를 멘 것인데 이제 와서 부담스럽다고 하니 서운한 감정이 들 법도 하다”고 귀띔했다.
여권에서 추 장관 리스크가 오르내리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친문 진영과 추 장관 사이에 파열음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게 주요 골자다. 당장 장관직 교체를 두고도 추 장관이 반발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뒤를 잇는다. 이 경우 문 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는 연말 개각, 청와대 개편 등의 퍼즐 맞추기 역시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한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추 장관이 고생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한다. 하지만 이젠 일을 벌이는 것보다는 수습을 하고 정리를 해야 할 시기다. 그런 측면에서 추 장관 교체는 불가피하다. 다만, 추 장관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문제가 남아 있다. 물론, 향후 정치 일정에 따라 서울시장 출마 또는 정세균 총리 후임 발탁 등이 대안으로 거론될 수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둘 다 녹록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추 장관으로선 친문 진영에게 ‘팽’당했다고까지 생각할 수 있다. 앞으로 추 장관과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가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