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프랜차이즈 스타 윤성환이 ‘100억 도박빚’ 파문에 휘말렸다. 윤성환은 “빚은 있지만 도박과는 관련 없다”고 해명했다. 사진=연합뉴스
윤성환은 즉각 “내가 A다. 하지만 기사 내용은 말도 안 된다”며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기자들과 통화에서 “나는 잠적한 적이 없다. 도박 문제는 더더욱 사실이 아니다”라며 “정말 억울하다. 결백을 밝히고 싶다. 경찰이 조사하겠다고 부른 적도 없다. 경찰이 부르면 언제든 가겠다. 지금은 내 결백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호소했다.
#채무는 맞지만 도박빚은 아니었다
윤성환은 2015년 해외 원정도박 파문에 연루돼 한 차례 고초를 겪었다. 그해 정규시즌 17승을 올리고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돼야 할 만큼 파장이 컸다. 그러나 그는 “당시 나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지금도 나는 결백을 주장하지만, 내 이미지는 되돌릴 수 없었다”며 “선수로 더 뛸 수 없는 상황이란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오해를 받으며 선수 생활을 끝내고 싶지 않다. 나는 결백하다”고 거듭 주장했다.
또 “현재 채무가 있는 건 맞지만, 도박과는 무관하다. 조직폭력배와 연루됐다는 건 더더욱 사실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내가 도박과 전혀 무관하다는 걸 경찰 조사에서 밝혔으면 좋겠다. 사실이 아닌 소문이 사실처럼 퍼지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이날 오후 경찰청은 “대구 수성경찰서가 지난 9월 초에 윤성환에 대한 사기 혐의 고소장을 접수한 건 사실이다. 다만 고소인이 ‘윤성환이 3억 원을 빌린 뒤 갚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한 것일 뿐 도박과는 관계가 없는 사안”이라고 전했다. 채무가 도박과는 관련 없다는 윤성환의 주장과 일치한다.
#윤성환 잠적설이 흘러나온 이유
윤성환은 ‘잠적설’에 관해서도 “시즌이 종료되기 전에 2군 훈련장에 출근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게도 사연이 있다”고 했다. “9월에 삼성 구단 관계자가 ‘우리는 윤성환 선수와 2021시즌에 계약할 수 없다. 은퇴하거나 자유계약선수(FA)로 풀어주는 등 선수가 원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겠다’고 말했다”며 “정말 서운했다. 나는 삼성에서만 뛰었고, 우승도 여러 차례 했다. 은퇴는 삼성에서 하고 싶었다. 나는 ‘한 팀에서 오래 뛴 선수를 구단이 예우하지 않는다’고 느꼈다”고 토로했다.
이어 “선수 생활을 더 하지 못하더라도, 삼성에서 은퇴하고 싶었다. 최대한 좋게 마무리하고 싶어서 다른 직원을 통해 ‘대표이사와 면담하고 싶다’고 전했다. 하지만 구단에서 답이 없었다”며 “시즌 막판에야 다시 구단에서 연락이 왔다. 그땐 통화를 하고 싶지 않아서, 그 연락을 피했다. 다른 관계자와는 연락이 되는 상태였다. 이걸 ‘잠적’이라고 표현해도 되는가”라며 반문했다.
사실 윤성환과 삼성은 충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별할 수 있는 관계였다. 윤성환은 2004년 삼성에 입단해 한 팀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다. 구속은 빠르지 않았지만 제구력과 내구성 면에서 국내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선발 투수였다. 구단 투수 최다인 135승을 거뒀고, 2011~2014년 팀의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나이로 40세가 된 올해는 윤성환도 세월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 시즌 초반부터 성적이 썩 좋지 않았고, 8월 21일 SK 와이번스전을 끝으로 1군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그 후 구단과 은퇴 논의 과정에서 서운함을 느낀 윤성환이 고위 관계자의 연락을 피했고, 그 상황이 ‘잠적했다’는 말로 와전되면서 소문이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뻗어 나갔다.
결국 삼성은 부랴부랴 윤성환에게 방출 통보를 한 뒤 “윤성환을 자유계약선수로 방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KBO리그 100승 투수 중 한 명이 최악의 상황 속에 떠밀리듯 은퇴하게 될 위기에 놓인 셈. 그는 “선수 생활을 더 하지 못하더라도 삼성에서 은퇴하고 싶었다. 최대한 좋게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앞서 2015년 윤성환(왼쪽), 안지만 등 삼성 선수들의 해외 원정도박 스캔들이 큰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사진=일요신문DB
#채무를 도박빚으로 둔갑시킨 2015년 사건
윤성환의 채무 관련 소송이 ‘도박빚’으로 확대 해석된 이유는 충분히 추측 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2015년의 해외 원정도박 스캔들이다. 그해 정규시즌 우승팀 삼성은 17승 에이스 윤성환, 홀드 1위 불펜투수 안지만, 세이브 1위 마무리투수 임창용 없이 한국시리즈를 치렀다. 포스트시즌 준비로 여념이 없던 시기에 전력의 핵심인 투수들이 해외 원정도박설에 휩싸였고, 여론이 악화되면서 이들을 모두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해야 했다. 결과는 한국시리즈 준우승. 삼성은 도박 스캔들의 여파로 전무후무한 통합 5연패에 실패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시즌 종료 후에는 이들 가운데 한 명이던 임창용이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창용과 삼성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오승환(당시 한신 타이거즈)도 같은 이유로 검찰에 소환됐다. 둘은 조사 과정에서 혐의를 일부 시인했다. KBO는 이들에게 한 시즌 경기 수의 50%인 72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 이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임창용과 오승환은 해당 징계를 모두 소화한 뒤에야 다시 국내 마운드를 밟을 수 있었다.
윤성환과 안지만은 당시 무혐의 처분을 받고 그라운드에 무사히 복귀했다. 그러나 안지만은 이듬해 지인의 인터넷 도박 사이트 개설에 자금을 투자한 사실이 발각돼 다시 불구속 입건됐다. 안지만이 “용처를 모르고 돈을 빌려줬다”고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KBO로부터 1년 유기 실격 처분을 받고 그라운드를 떠났고, 다시 프로 선수로 복귀하지 못했다.
처벌을 받은 투수 셋과 무혐의로 풀린 윤성환까지, 한국 프로야구를 주름잡던 명투수들이 연루됐던 스캔들이라 야구계에 미치는 파장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부 관계자들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오래 곪아왔던 문제가 터졌을 뿐”이라며 “야구계 전체에 도박과 관련해 더 광범위한 의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실감한 사건이었다”고 밝혔다.
#파친코가 시작이다
실제로 과거에는 ‘도박’이 야구선수들의 생활에 깊숙이 개입돼 있었다. 스프링캠프지에서 주로 접하게 되는 일본의 합법적 도박게임 ‘파친코’가 대표적이다. 한 야구 관계자는 “어릴 때부터 운동만 해온 선수들은 여가 시간을 다양하게 보내는 방법을 잘 모른다. 특히 스프링캠프라도 가서 외국에 한 달, 두 달씩 있다 보면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훈련 기간이라 술을 양껏 마실 수도 없다. 그래서 대부분 파친코를 하러 갔다”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구단이 스프링캠프에서 휴식일 전날 야간 훈련을 면제해줬다. 그날만큼은 파친코에 다녀와도 좋다는 무언의 허가다. 이 관계자는 “감독이나 구단도 파친코에 대한 문제의식은 크지 않다. 파친코가 합법적인 도박장이고 밤늦은 시간이 되면 문을 닫기 때문에 오히려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며 “그보다는 그런 과정을 통해 다른 도박에 맛을 들이게 됐을 때의 후폭풍이 문제”라고 했다.
한 베테랑 선수는 “연봉이 적은 선수들이 너무 많은 돈을 잃거나 너무 푹 빠져들면 운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 선배가 연봉 많은 후배에게 돈을 꿔서 파친코에서 탕진하고 안 갚는 일도 생긴다. 결국 파친코도 ‘지나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파친코 선에서 끝내야 하는 이유
물론 파친코는 ‘애교’ 수준이다. 이미 은퇴한 B 선수와 C 선수는 야구계에서 도박 중독자로 유명했다. 둘 다 좋은 기량을 인정받고 팀에서 꼭 필요한 전력으로 활약했지만, 선수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하려 할 때마다 늘 도박에 발목을 잡혔다. 연봉이 오르고 돈이 생기면 그만큼 더 도박에 돈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B는 급기야 조직폭력배 자금을 조달 받아 쓰다가 잃기만 하고 갚지 못해 여러 차례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한 야구 관계자는 “이 선수 때문에 야구장이나 원정 숙소인 호텔까지 건달들이 찾아와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구단이 외부에 새어나가지 않도록 막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다른 팀으로 옮겨 가서도 결국 도박에 얽힌 사생활 문제로 은퇴했다”고 말했다.
C 역시 쏠쏠한 FA를 맺고도 억대 계약금을 1년 만에 날렸다는 풍문이 떠돌았다. 도박 탓에 이혼도 했다. 또 다른 야구 관계자는 “C는 필리핀에 체류하면서 도박을 하다 한국에 돌아갈 비행기 티켓 값이 없다고 후배 여러 명에게 연락해 송금을 받았다. 그런데 그 돈으로 비행기를 타지 않고 다시 도박을 해 모두 혀를 찼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 정도로 심각한 선수들은 다른 동료들에게 반면교사의 사례가 된다. 그러나 대부분 도박에 대해 크게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프로 선수 출신인 한 야구 관계자는 “선수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이른바 ‘내기’ 문화에 노출이 많이 돼 있다. 한 팀을 예로 들면, D 감독이 선수들의 사생활을 관리하려고 오후 11시가 넘으면 선수단 숙소 셔터를 내려버리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일찍 숙소에 들어온 선수들이 한 방에 모여 고스톱이나 카드를 치기 시작했고, 판돈이 점점 커지다 일부 선수들은 월급까지 다 걸고 게임을 했다. 그러다가 선수단 내부에서 채무 관계가 생기고 그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말도 많아진 일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도박의 재미와 짜릿함을 알게 되면, 점점 더 일상화된다. 이 관계자는 “파친코나 인터넷 도박으로 범위를 넓혀가고, 그러다 해외여행을 떠나 카지노까지 발을 들여 놓는다. 파친코는 영업 종료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카지노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곳에는 언제나 ‘돈 많은 고객’을 기다리는 전문 도박꾼들로 넘쳐난다”며 “물론 극히 일부 사례지만,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하우스’라는 곳에서 사람 대 사람으로 도박을 하는 단계에 이르면 이제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어진다. 그래서 무엇이든 적당히 하는 자기 절제가 중요하다”고 했다.
게다가 인기 야구선수나 연예인처럼 유명하고 목돈이 많은 사람들 주변에는 늘 검은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 조직폭력배들이 의도적으로 “돈을 대주겠다”며 접근하기도 한다. 또 다른 야구 관계자는 “일반인에게 알려진 사람들은 돈을 빌려줬다가 채무가 생겼을 때 협박하기가 쉽다. 요즘은 조금만 소문을 흘려도 명성에 치명타가 되고 금세 퍼지기 때문에 더 그렇다”며 “실제로 큰돈을 따고도 오히려 ‘세간에 알리겠다’는 협박을 받아 딴 돈을 받지도 못한 선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