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 소녀 죽음으로 몰아넣은 ‘카톡 감옥’
중학생 A 양은 입학 2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배경에는 동급생과의 다툼으로 시작된 사이버폭력이 있었다. 사진=연합뉴스
2017년 3월 14일 한 중학생이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당시 A 양의 나이는 14세. 중학교를 입학한 지 2주일이 채 되지 않은 신입생이었다. 유가족에 따르면 A 양의 중학교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중학교 친구들은 몇 되지 않았는데 대부분은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사이였다. 한 친구와의 사이가 틀어지면서 괴롭힘을 당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이때까지도 A 양의 아버지는 동급생끼리의 사소한 다툼인 줄 알았다고 했다.
경찰 조사 결과, A 양은 초등학교 동창인 B 양으로부터 욕설 등의 괴롭힘을 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A 양의 카카오톡에는 B 양이 보낸 욕설이 일부 남아있었다. B 양은 A 양과 다툰 이후, 카카오톡 오픈채팅이나 비밀방을 개설해 욕설을 하기도 했다. A 양이 방을 나가면 지속적으로 A 양을 초대했다. 이른바 ‘카톡 감옥’이었다.
또, 일부 친구들에게 A 양을 두고 ‘주제도 모르고 나댄다’ ‘지난해에 걔 좋아하는 애가 한 명도 없었다’ ‘미친X’ ‘손버릇이 나쁘다’ 등 A 양을 비방했다. B 양은 A 양에게 한 아이돌 그룹의 CD를 생일선물로 미리 달라고도 요청했다. A 양이 B 양의 연락을 피하자 A 양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전화를 받으라’고 한 사실도 있었다. 이에 대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는 2017년 6월 B 양에 대해 특별교육이수조치를 내렸다. 2018년 6월 이어진 형사재판에서도 B 양은 보호처분을 받았다. 학교폭력이 실재했음이 인정된 셈이다.
A 양의 아버지는 “아이가 입학 1주일 만에 울면서 ‘이사를 가자’ ‘다른 학교를 가고 싶다’ 등의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가 얼마나 괴로웠으면 학교를 조퇴하고 옥상에 올라갔겠나. 그런데 학교에서는 부모에게 아이가 조퇴한다는 말 한 번 하지 않고 아이를 보냈다”고 말했다.
A 양의 아버지는 4년이 지난 지금도 홀로 법적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학교안전공제회에 학교폭력과 학교관리 소홀로 인한 사망으로 공제금을 신청했으나 거부당한 탓이다. A 양에 대한 학교폭력이 있었다는 사실은 학폭위와 가정법원 판결로 증명되었음에도 학교안전공제회는 A 양의 사망이 학교폭력 혹은 학교안전사고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까다로운 학교안전공제금
사이버 폭력에 대한 교육부 자료. 사진=교육부 제공
그럼 도대체 어떤 경우에 학교안전공제회로부터 공제금을 받을 수 있을까. 공제회가 지급하는 공제금은 요양, 장해, 간병, 유족급여와 장의비 등이 있는데 지급 기준은 학교 활동에 제한된다.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학교안전법)에서 규정하는 ‘학교안전사고’는 ‘교육활동’ 중에 발생한 사고로서 학생·교직원 또는 교육활동참여자의 생명 또는 신체에 피해를 주는 모든 사고 및 학교급식 등 학교장의 관리·감독에 속하는 업무가 직접 원인이 되어 학생·교직원 또는 교육활동참여자에게 발생하는 질병일 경우 공제금을 지급하도록 돼 있다.
여기서 ‘교육활동’은 학교 교육과정에 따라 행하여지는 수업 또는 체육대회 등의 활동 등으로 규정돼 있다. 최근 한 재판부는 쉬는 시간 교실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교육활동 중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제금 지급을 거부하기도 했다. 한편 학교폭력으로 피해를 입었을 시에도 공제금을 받을 수는 있다. 피해자가 상해에 준하는 피해를 입었을 때 이에 대한 치료비를 지급하는 형태다.
다시 말해 법리적 다툼 없이 원만하게 공제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은 △학교에서 △학교 교육과정에 따른 교육활동 중에 △학교안전사고로 인하여 생명·신체에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 명확하게 인정됐을 경우다. 해석에 따라 등‧하굣길에서 발생한 사고가 인정되기도 하나 그 인과관계를 밝히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공제금의 사각지대다. 앞서 나열된 기준으로는 ‘카톡 감옥’ 등 최근 늘어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학교폭력 피해자를 온전히 구제하기 힘들다. 특히 서울시교육청이 학교안전공제회로부터 받은 답변에 따르면 자살은 공제금 지원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상해보다 더 큰 피해라고 할 수 있는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에 대해서는 상당한 인과관계를 밝히지 않는 한 공제금을 인정받기 힘들 가능성이 높다.
A 양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법원은 A 양의 자살이 학교폭력과의 인과관계를 찾기 어렵다고 봤다. 서울남부지방법원 민사 재판부는 “B 양이 학폭위에서 특별교육이수 처분을 받았으나 이 사실만으로 A 양이 학교폭력을 당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정보통신망을 통해 A 양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가 학교폭력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학교폭력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사망 당일, A 양이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버스정류장과 지하철역 등을 서성이며 시간을 보낸 것을 두고 재판부는 “통상적인 하교가 아니었기에 학교안전사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당시 A 양은 조퇴한 뒤 약 2시간가량 학교 주변을 맴돌다 자택인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 스스로 몸을 던졌는데 여기까지의 과정이 오래 걸렸으므로 정상적인 하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A 양의 아버지는 “아이가 자살을 결심했다면 결정 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긴 시간을 고민하고 망설였을 텐데, 곧장 옥상으로 가지 않았다고 통상적인 하교가 아니라는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공제금 부지급에 대한 부당함은 소송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는 입장이다.
반면, 2016년 대법원은 자율학습 후 화장실에서 사망한 학생에 대해서는 망인이 수업과 시험 등을 통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교육활동 중에 발생한 사고에 해당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사망 인과관계를 해석함에 있어 A 양과 달리 폭넓게 인정된 셈이다.
이를 두고 법무법인 사월의 노윤호 학교폭력전문변호사는 “A 양의 사건의 경우 통상적인 하교 중 발생하였거나, 사이버폭력과 자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었다면 공제금 지급이 가능했을 것이다. 다만, 이 사건(학교폭력)이 아니었다면 피해학생이 자살할 이유가 없는데 법원이 인과관계를 엄격하게 해석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고 답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