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종은 시즌 마지막 등판에서 팬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는 해외진출을 염두에 둔 ‘작별인사’로 해석됐다. 사진=연합뉴스
양현종은 2014년을 마치고 포스팅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MLB 진출을 타진했지만 기대 이하의 포스팅 금액을 제시받고 꿈을 접었다. KIA 구단이 수용 불가 방침을 내렸기 때문이다. 2016시즌 후 생애 첫 FA 자격을 얻은 양현종은 다시 해외 진출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당시에는 미국보다 일본 요코하마 DeNA에서 2년 6억 엔(약 64억 원)을 제안했지만 가족과 상의 끝에 KIA 잔류를 택했다. 그리고 4년 후 다시 해외 진출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양현종이 두산 베어스전에서 마지막 등판을 마치고 양 팀 선수단, 관중석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했던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2021시즌만큼은 반드시 해외에서 뛰고 싶다고, 당분간 KBO리그 무대는 마지막이라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양현종의 해외 진출 도전과 관련해서 MLB 관계자들은 두 가지 시각을 나타낸다. 먼저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소속인 스카우트 A 씨는 몇 년 전부터 양현종 관련 스카우팅 리포트를 써왔다고 밝혔다.
“아시아 선수들을 담당하는 스카우트라면 누구나 양현종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뚜렷한 기량 하락을 나타냈다. 코로나19로 시즌 개막이 늦어지면서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은 면도 있겠지만 11승 10패 평균자책점 4.70은 예년에 비해 상당히 저조한 성적이다. 14년간 KIA에서 1986이닝을 소화한 걸 떠올린다면 올 시즌 기량 하락이 내년 시즌에도 이어질 거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더욱이 양현종의 나이가 내년이면 34세다. 고민 끝에 우리 팀에서는 양현종을 영입 리스트에 올려놓지 않았다. 물론 이 부분은 나중에 얼마든지 변경될 수는 있다.”
양현종은 2014년 171⅓이닝을 시작으로 2020시즌 172⅓이닝까지 7시즌 연속 170이닝을 돌파했다. 이는 정민태에 이어 역대 2번째이자 좌완 최초 기록이다. 이 기록이 MLB에서는 투수기 때문에 오히려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내용.
양현종은 2014~2020시즌 7시즌 연속 170이닝을 소화하며 장기간 리그 최상급 투수로 활약했다. 사진=임준선 기자
송재우 MLB 해설위원은 양현종이 꾸준함의 대명사고, 한 팀의 에이스로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가장 큰 단점은 주무기 부재라고 말했다.
“류현진은 체인지업, 김광현은 슬라이더라는 주무기가 있지만 양현종의 주무기는 내세울 만한 게 없다. 도전자 입장이라면 자신을 상징하는 주무기를 앞세우는 게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데 아쉽게도 양현종한테 그 부분이 부족하다.”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에 속한 팀의 스카우트 B 씨는 자신이 스카우트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탐냈던 선수가 양현종이라고 말했다.
“우리 팀의 선발진을 고려한다면 양현종은 지금 와도 5선발로 충분히 뛸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올해는 6이닝 이상 던진 경기가 많지 않았다. 대부분 5, 6이닝에서 교체됐다. 한편으로는 내년 시즌 해외 무대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기 위해 올 시즌 체력을 비축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부분이 스카우팅 리포트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김하성, 나성범, 양현종을 모두 영입 리스트에 올렸고, 관련 리포트를 작성해 구단에 제출했지만 구단에서는 단 한 번도 양현종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B 씨는 그럼에도 양현종은 MLB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했다.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 팀은 아니더라도 다른 팀에서 관심을 나타낼 만한 커리어의 소유자다. KBO리그에서 꾸준한 성적을 냈고, 김광현의 사례가 양현종한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광현이 올 시즌 포수 몰리나의 리드와 수비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MLB 선발투수의 가치를 마운드에서 보여줬기 때문에 KBO리그에서 김광현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양현종한테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더욱이 지금 미국은 코로나19로 인해 마이너리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즉시 선발이나 불펜으로도 활용이 가능한 양현종은 쓸 만한 카드다. 나이와 이닝 수가 많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되지만 그를 수천만 달러에 영입하는 건 아니지 않나. 계약 기간 2~3년에 연봉 200만~300만 달러의 규모라면 양현종에게 관심을 나타내는 팀이 있을 것이다.”
양현종의 해외 진출 도전은 미국만이 아니라 일본에도 문을 열어 놓고 있지만 선수는 MLB를 더 선호한다. 선발만 고집하지 않고 불펜도 수용하겠다는 양현종으로선 이번만큼은 꼭 해외에서 뛰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류현진도 처음 LA 다저스에 입단했을 때 지금과 같은 모습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김광현도 MLB에서 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있었지만 두 선수 모두 빅리그 첫 해부터 실력을 인정받았고, 선발 투수로 자리 잡았다.
MLB 스카우트들은 단지 한 시즌의 성적이나 단편적인 기록으로 선수를 평가하지 않는다. 양현종으로선 희망을 부풀릴 수 있는 상황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