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걸그룹 AKB48은 아키하바라의 오타쿠들이 동경하는 제복 입은 만화 속 소녀를 콘셉트로 하고 있다. |
AKB48은 일본에서 현재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소녀그룹이다. 그룹 이름은 오타쿠들의 성지인 아키하바라의 줄임말 아키바에서 따온 AKB에 상품번호를 표현하는 48을 붙여 만든 것으로, 아키하바라의 오타쿠들이 동경하는 제복 입은 만화 속 소녀를 콘셉트로 하고 있다.
AKB48을 프로듀싱한 아키모토 야스시는 음악, 영화, 방송 등 종합 프로듀서이자 만화가, 탤런트, 각본가 등으로도 활약한 이력이 있는 재주꾼이다. 일본 연예계에서 ‘히트 뒤에는 반드시 이 남자가 있다’라고 거론되기도 한다. AKB48의 탄생배경에 대해서도 “명확한 계획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라이브하우스 같은 작은 극장에서 아이돌이 매일 공연하면 그들을 찾은 팬들이 조금씩 늘어나 유명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AKB48은 아키모토가 생각해낸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이란 명확한 콘셉트를 바탕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AKB48 팬들 사이에는 ‘총선거’라는 것이 있다. 총선거는 팬들의 투표로 멤버들의 인기 순서를 정한 뒤 인기 순위가 높은 순으로 신곡을 부를 수 있는 멤버가 정해지고, 무대에 서는 위치까지 결정된다. 즉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가 투표에서 많은 표를 획득해 상위로 올라가야 노래 부르는 모습이나 TV출연 모습도 더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에 팬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이벤트다.
또한 그들의 강력한 힘은 아날로그적 매력에 있다. 아키모토는 “지금 시대는 인터넷으로 음악을 다운로드해서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가능하다. 인터넷 상에서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공짜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에서는 절대 손에 넣을 수도, 복사할 수도 없는 것을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라이브극장”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활성화로 인해 영화나 CD의 판매량은 줄고 있는 반면, 콘서트나 발레 등 공연문화는 발전하는 것을 보며 생각해낸 것이 아이돌을 만날 수 있는 라이브극장이었다. 실제로 AKB48 전용극장 공연을 보면 멤버와 팬들과의 거리가 생각보다 더 가깝고, 공연에 반응하는 팬들의 열기에 압도될 정도다.
이나마스 교수는 “라이브라는 아날로그적인 행위는 인터넷 세계와 대립관계에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사실 이 둘은 상생한다. 팬들은 아이돌의 생생한 무대를 직접 접하며 잊지 못할 개인적인 체험을 하게 되고, 그 내용을 블로그나 게시판 등을 통해 퍼뜨린다. 라이브의 매력이 강력한 힘을 가진 인터넷 세대 집단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TV활동으로 인지도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극장 공연은 AKB48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정”이라고 설명했다.
아키모토는 “극장을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시한 부분이 AKB48은 관객이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극장 운영 방법까지 팬의 의견을 적극 수용할 수 있도록 극장의 간부는 팬들과 술자리를 갖거나 팬 게시판의 의견을 항상 체크한다.
도쿄후지대학 경영학부의 야마가와 교수는 이런 비즈니스모델을 ‘미완성 프로덕트’라 부른다. 그는 “미완성 상태로 기업이 상품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AKB48은 그 기법을 아이돌 그룹에 적용한 것으로 전용극장이라는 플랫폼에서 유저가 커스터마이즈(이용자가 사용 방법과 기호에 맞춰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설정하거나 기능을 변경하는 것)를 반복해 보다 자신들의 취향에 잘 맞는 상품으로 바꿔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덕분에 아키하바라의 AKB48 전용극장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티켓을 문자로 교부하는 판매방식, 공연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리지 않도록 온 순서로 ‘정리권’을 나눠주는 방식 등은 팬들의 충고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인기 3위인 마리코가 AKB48에 입단할 수 있었던 것도 건물 로비의 카페에서 일하고 있던 마리코를 본 팬이 “저 아이도 멤버에 넣었으면 좋겠다”는 요청으로 이뤄진 것이라 한다.
마지막으로 불황의 시대에 그들의 앨범만 수십만 장의 판매고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효과적인 이벤트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AKB48의 음반을 구매하면 ‘총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투표권 한 장이 들어있거나 멤버들과 직접 만나 악수를 할 수 있는 ‘악수회’ 참가권이 들어있다. 팬들은 투표권 혹은 악수회의 참가권을 얻기 위해 수십 장의 CD를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
경제 저널리스트인 요시다 씨는 이 현상에 대해 “AKB48의 CD는 음악이라기보다 캐릭터상품의 한 가지로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무료인 디지털 시대에 남는 것은 ‘리얼’한 것들이다. 그래서 현실적인 공간인 ‘극장’이나 ‘인기투표권’ 등 아날로그적인 새로운 가치가 추가로 요구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키모토는 얼마 전 AKB48을 세계에 ‘포맷 판매’할 것이라고 밝혔다. ‘포맷 판매’란 방송업계에서는 일반화된 비즈니스방식으로 방송 기획이나 노하우, 연출방법 등을 수출해 라이선스료를 받는 것을 말한다. 아키모토가 말하는 ‘포맷 판매’는 예를 들어 ‘노래는 100% 아키모토가 제작’, ‘제복을 착용’, ‘그룹 이름에 반드시 48을 붙일 것’ 등의 리스트를 매뉴얼화해 세계에 판매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AKB48의 아이돌 포맷이 세계에 진출했을 경우 승산은 있는 것일까. 경제 분석가인 모리나가 타쿠로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제복문화를 동경하는 ‘오타쿠 시장’이 존재하는 국가라면 반드시 팔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키모토의 ‘포맷 판매’가 현실화 된다면 서울48, 파리48, NY48 등 세계 곳곳에서 제복 입은 소녀그룹의 탄생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김지혜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