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펜트하우스’를 비롯한 10여 편의 드라마가 동시다발적으로 촬영이 중단됐다. 보조출연자들이 여럿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진에서 보듯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들은 마스크를 끼고 있지만 출연 배우들은 마스크를 끼지 못한다. 사진=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홈페이지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을 하루 앞둔 11월 23일을 전후로 드라마 촬영 현장에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했다. 보조 출연자 가운데 확진자가 나오면서 시작된 확산세는 확진자가 출연한 또 다른 드라마 현장, 그리고 그와 동선이 겹치는 밀접 접촉자인 보조 출연자가 출연한 또 다른 드라마로 이어졌다.
단 이틀 사이 MBN 드라마 ‘보쌈-운명을 훔치다’, JTBC 드라마 ‘시지프스: 더 미스’,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펜트하우스’, 아직 편성이 안 된 새 드라마 ‘달이 뜨는 강’, JTBC 드라마 ‘설강화’ ‘허쉬’ tvN 드라마 ‘철인왕후’, MBC ‘나를 사랑한 스파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트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카카오M 오리지널 드라마 ‘도시남녀의 사랑법’ 등 11편의 드라마 촬영이 잠정 중단됐다. 배우와 스태프 등이 대거 코로나19 검사를 받았으며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거나 밀접 접촉한 관계자들은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또한 OC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은 촬영 장소 바로 옆 세트장에서 ‘달이 뜨는 강’ 촬영이 진행됐던 터라 23일로 예정돼 있던 드라마 제작발표회는 취소됐다.
아직까지는 몇몇 보조 출연자가 확진 판정을 받았을 뿐이다. 드라마 주요 출연진이나 제작진이 양성 판정을 받은 사례는 없다. 그렇지만 연예관계자들은 최근의 흐름이 매우 좋지 않다고 바라보고 있다. 다음은 한 중견 연예기획사 임원의 말이다.
“드라마 제작 현장에는 수많은 외주 인력들이 존재한다. 이번에 확진자가 나온 보조 출연자들은 물론이고 촬영과 조명, 의상, 분장, 소품 등 스태프들 상당수가 외주 인력이다. 이들은 여러 편의 드라마 촬영에 동시에 투입되기도 하고 같은 업체 직원들이 여러 드라마를 나눠서 일을 맡기도 한다. 보조 출연자들과 비슷한 시스템이다. 주연급 배우들과 PD, 작가 등 주요 제작진은 드라마 한 편에 집중해 전염력도 그 드라마로 국한되는 데 반해 외주 인력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이번처럼 여러 편의 드라마로 급속히 감염이 전파될 수 있다.”
야외 촬영보다 실내 세트장 촬영이 많은 드라마들이 더 위험할 수 있다. 밀폐된 공간으로 환기도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달이 뜨는 강’ 세트장 바로 옆 세트장에서 촬영이 이뤄진 ‘경이로운 소문’이 제작발표회를 취소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비교적 세트장 촬영이 많은 일일드라마와 주말드라마 출연진들이 이런 부분에서 요즘 걱정이 많다고 한다. 방역 기준에 따라 철저히 조심하고 있지만 드라마 촬영이 시작되면 배우들은 마스크를 벗어야 해 걱정이 클 수밖에 없다. 만약 세트장에 확진자가 있을 경우 마스크가 없는 배우들이 가장 먼저 감염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방송국 건물 내부의 세트장에서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방송국 건물이 아예 폐쇄될 수도 있다.
비교적 제작진이 자주 방송에 직접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만 봐도 제작진은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지만 출연진은 촬영 내내 마스크를 끼지 못한다. 사진=KBS ‘1박2일’ 방송 화면 캡처
더 큰 문제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번질 경우다. 예능 프로그램은 제작진 규모가 드라마보다 훨씬 크다. 제작진이 자주 방송에 등장하는 ‘1박 2일’을 통해 시청자들도 제작진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간접 경험하곤 했다. 여기에는 외주 인력이 상당수다. 방송국 소속 스태프들의 경우 여러 편의 같은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 제작에 동시 투입되기도 한다. 한 편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급속도로 같은 방송사의 다른 예능 프로그램으로 감염이 전파될 수 있다. 외주 인력이나 출연 연예인을 통해 타 방송사까지 급속도로 감염이 확산될 수 있다. 방송 출연 예능인이 여럿 소속된 한 연예기획사 대표의 말이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촬영했다는 자막이 자주 나온다. 그런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일정 면적당 사람이 몇 명 이상 모여 있으면 안 된다는 등의 기준이 있지만 촬영 현장에는 그런 게 없다. 출연자의 경우 많은 스태프와 관계자들에 둘러싸인 촬영 현장에서 마스크조차 못 낀다. 다행히 아직 촬영 현장에서 연예인이 감염된 사례가 없지만 상당히 불안한 게 사실이다. 지금 상황을 냉정히 보면 촬영현장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나 유명 연예인 여럿이 확진되는 최악의 상황이 당장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