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1 강원 FC 소속 수비수 신세계는 2020시즌 말미, 구단 채널에서 뮤직비디오 콘텐츠를 만들어 눈길을 끌었다. 구단명과 같은 제목의 곡으로 영상을 만드는데 직접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손수 액세서리, 의상 등을 챙기는 열정을 보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개인 유튜브 채널까지 개설했다. 이번 시즌 이적, 주전 도약, 미디어 활동까지 다사다난한 한 시즌을 보낸 신세계를 직접 만났다.
강원 수비수 신세계는 이번 시즌 커리어 첫 이적으로 많은 새로운 경험을 했다. 사진=최진영 프리랜서
#10년차 선수의 첫 이적 “강원 축구에 대한 자부심 있다”
군복무 시절(상주 상무)을 제외하고 수원 삼성에서만 활약하던 신세계는 2020시즌을 앞두고 강원 FC 이적을 선택했다. 프로 입단 10년차에 처음 경험하는 이적이었다. 신세계는 이전까지 ‘수원색’이 강한 선수였다. 이번 시즌 강원 소속으로 수원 원정에서 경기 이후 자신도 모르게 수원 버스로 자연스레 향할 정도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쭉 소속됐던 수원이다. 팀에 대한 애정이 정말 강했다”면서도 “하지만 애정이 있다고 해서, 특별한 팀이라고 해서 계속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 있다. 구단과 내가 서로 좋게 이별했다”고 설명했다.
당초 그가 원했던 행선지는 해외무대였다. “은퇴하기 전 꼭 해외 생활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해외 이적을 알아보던 중 강원으로부터 제의가 왔다”며 “고민할 필요가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었지만 ‘국내 이적을 한다면 선택지는 강원 한 팀뿐’이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무엇이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을까. 강원 구단이 언급될 때면 언제나 사령탑 김병수 감독이 빠지지 않는다. 신세계의 이적 또한 김 감독의 존재가 큰 영향을 미쳤다.
“강원 소속 선수들이 인터뷰에 나설 때면 항상 감독님 이야기를 한다. 이전까지 이런 경우가 없었기에 상황 자체가 신선하다고 생각한다. 대학 시절부터 ‘동경’이 있었다. 고교 동기이자 ‘절친’인 임채민이 영남대에 진학해 감독님 지도를 받았다. 감독님이 이끌던 당시 영남대는 대학 무대를 휩쓸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나도 그런 축구를 배워보고 싶었다. 실제 경험을 해보니 정말 달랐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즌은 나에게 가장 재미있는 시즌이었다.”
강원은 타 팀과 차별화된 패스 축구로 팀컬러를 구축했다. 김 감독의 이름을 따 ‘병수볼(ball)’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실체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남아있다. 이를 경험한 선수들은 “표현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다”는 말을 반복한다.
이에 신세계는 “나도 정말 말을 못하는 사람이 아닌데 간단하기 설명하기가 어렵다(웃음).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적 이후 동계훈련에 가서 복합적인 패스 연습을 하는데 나를 포함해 새로 합류한 선수들은 버벅대며 훈련에 참여하기가 힘들었다. 기존에 있던 선수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잘한다. 나도 20년 넘게 축구를 했는데 적응이 어렵더라”며 “하지만 그 패스 게임에 적응을 하면 축구가 편해진다. 훈련했던 상황들이 경기장에서 실제 구현이 된다. 경기에서 맞아 떨어지는 순간 선수들은 신뢰를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뚝뚝해 보이지만 유머러스하고 거침없이 표현하시는 감독님 성향도 매력을 더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같은 강원의 축구에 대해 자부심을 드러냈다. “너무 자화자찬인 것 같지만 우리는 정말 자신감이 있다. 우리는 경기를 앞두고 상대팀 경기 장면을 보고 분석하는 미팅을 하지 않는다. ‘상대팀에 맞출 필요 없이 우리 것만 잘하면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병수볼’에 대해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가 분명 있다”며 웃었다. 사진=최진영 프리랜서
#기대에 못 미쳤던 시즌 성적
강원만의 축구는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파울루 벤투 감독뿐만 아니라 같은 리그에서 경쟁하는 조세 모라이스 전북 현대 감독의 찬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에 신세계는 “경쟁자 입장에서 그런 칭찬은 드문 일이다. 모라이스 감독님의 그런 태도가 멋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원의 2020시즌은 순탄치 못했다. 2019시즌의 선전으로 많은 기대를 받고 시작한 시즌이었다. 개막전 승리로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는 듯했지만 꾸준함이 부족했다. 하위권 팀들 간의 맞대결인 파이널 라운드를 제외하면 연승 기간이 없었다. 여름 한때 4연패를 기록했고 ‘내분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시즌 말미 안정을 찾았지만 결국 7위 이하의 성적으로 파이널B에 소속됐다.
“성적을 떠올리면 팬 분들께 죄송스런 마음뿐이다. 지난 시즌 강원의 성적이 좋았기에 기대가 컸다. 팬 분들도 그랬고 우리 스스로도 기대했다. 하지만 마음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선수단 내 문제는 없었다는 것이다. 베테랑 형들과 주장단도 선수들을 잘 이끌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나도 선배 축에 속하기에 수비 포지션 선수들과 따로 미팅도 많이 했다. 내년에는 어떻게든 좋은 성적을 보여드리도록 할 것이다.”
비교적 저조한 성적이었지만 우승팀 전북을 상대로는 2승을 거뒀다. 5월 홈과 8월 원정 모두 승리했다. 시즌 5패만을 기록한 우승팀 전북에게 2패를 안겨준 팀은 강원이 유일했다. 신세계는 “우리가 점유율을 가져가고 공을 잘 돌리기 때문에 많은 상대팀들이 수비를 내린 채 역습을 노린다. 우리가 그걸 극복해야 하는데 실수가 나오면 패배하는 것이다. 마음먹고 내려서는 팀을 뚫는 것은 어렵다”면서 “전북이나 울산은 강팀이라는 자존심이 있는 이들이다. 맞불을 놓는 경기 운영을 한다. 우리가 원하는 바다. 그래야 우리도 재미있어진다. 그렇게 전북 상대로 2승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올 시즌은 신세계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시즌이다. 시즌 초반 중용받지 못하다 11라운드부터 주축 선수로 나서기 시작했다. 경기에 나서기 시작하면서는 포지션을 가리지 않는 맹활약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그는 “아무래도 초반에는 적응에 조금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면서 “후반기에는 컨디션이 워낙 좋았다. 이제는 경험도 쌓였고 프로 10년차에 접어들며 컨디션을 관리하는 노하우가 확실히 생겼다. 오히려 전보다 스피드 등 몸상태가 더 좋아진 느낌이다. 덕분에 좋은 경기력을 보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중앙수비와 미드필드 등 포지션을 가리지 않았던 활약에 대해서는 “그만큼 팀에서 인정을 해주셔서 다양한 자리에 나갈 수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을 전했다. 이전까지 측면 수비, 중앙 미드필더를 겸하는 상황은 있었지만 올 시즌 중용된 중앙 수비 위치는 생소할 수도 있었다. 그는 “우리 팀 중앙 수비수는 전통적 개념과는 조금 다르게 움직인다. 중앙 수비를 맡았더라도 기회가 생기면, 상황이 마련되면 드리블로 공격에 가담하기도 한다. 나뿐만 아니라 덩치가 큰 수비수 임채민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팀은 어느 포지션이든 비슷한 콘셉트로 움직이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신세계는 구단 자체 제작 뮤비에 직접 출연하며 화제를 모았다. 원곡자 제네 더 질라에 대해 “조만간 밥 먹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진=강원 FC 유튜브 영상 캡처
#“강원을 가장 세련된 팀으로 만들고 싶다”
다사다난했던 한 시즌 동안 신세계는 ‘축구 외 활동’으로도 바쁜 나날을 보냈다. 구단이 운영하는 유튜브 영상에 적극 출연했고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며 선수와 팬들간의 ‘온라인 팬미팅’을 주선했다. 자체제작 뮤직비디오 출연에 나서는가 하면 개인 채널까지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처음 강원 구단으로 이적하면서 구단 홍보 담당 관계자에게 ‘강원은 K리그에서 가장 트렌디한 축구를 구사하는 팀이다. 축구 이외의 부분에서도 가장 세련된 구단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구단이 더 많이 알려지고 많은 주목을 받는 것은 선수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이전부터 이런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원래부터 팬들의 관심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웃음).”
코로나19로 인해 이번 시즌 경기장에서 팬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이에 구단은 선수가 온라인 라이브 방송에 나서 팬들과 대화를 하고 선물 등을 전달하는 ‘온라인 팬미팅’ 행사를 기획했다. 신세계는 ‘진행자’ 역할을 자처했다. 팬들에게 전하는 유니폼, 축구화 등 선물을 직접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준비하기도 했다. 그는 “자꾸 내가 돈을 쓰니까 주변에서 만류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앞으로도 지속할 의향이 있다”며 웃었다.
그는 “프로선수라면 경기장 밖에서도 팬서비스 등 다방면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최진영 프리랜서
“원래 힙합 음악을 좋아한다. 20살 때 가장 먼저 한 문신도 다이나믹듀오의 영향을 받아 ‘다이나믹’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그러던 중 관심을 갖고 있었던 래퍼 ‘제네 더 질라’가 지난여름 ‘강원FC’라는 제목의 노래를 발표하더라. 제목만 그런게 아니라 노래도 너무 좋아서 ‘미쳤다. 이게 힙합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강원 소속 선수로서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게 그 노래를 매일같이 듣고 있었는데 구단 라이브 방송 중에 뮤직비디오 한 번 찍으면 어떠냐는 제의가 나왔다. ‘무조건 좋다’고 했다.”
뮤직비디오 출연 의상, 액세서리는 신세계가 직접 준비했다. 학생 시절부터 용돈을 받으면 옷을 사러 동대문으로 달려갈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많은 신세계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힙합 아티스트 ‘트레비 스캇’이 디자인한 신발도 가지고 있다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은 그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가 알아서 준비했다. 유니폼 상의에 어울리는 옷이 뭘까 고민했다”면서 “뮤직비디오 결과물은 부끄러워서 차마 제대로 못 보겠더라. 나를 포함해 가족들, 주변 사람들은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반응이다. 그래도 팬분들은 좋아해주셔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돋보일 수밖에 없는 그의 ‘끼 방출’은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도 지속될 전망이다. 최근 ‘열려라 신세계’를 개설하고 첫 영상을 공개했다. 선수 신세계 말고 개인의 일상 등도 공개할 예정이다. 4살배기 큰아들 신후, 곧 태어날 둘째의 모습부터 패션, 음악 등 자신의 취향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담아낼 계획을 밝혔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유독 우리나라 축구계 문화가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것 같다. 겸손함과는 다른 부분이다. 앞으로도 ‘뻔뻔한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하겠다(웃음). 물론 본업인 축구에는 절대 소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선을 지키면서 최대한 다양한 활동을 해보고 싶다. 내년 시즌에는 올 시즌보다 좋은 성적으로 응원해주시는 팬들께 보답하겠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