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15일 아베 신조 당시 총리와 부인 아키에가 신주쿠교엔에서 진행된 ‘벚꽃을 보는 모임’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EPA/연합뉴스
‘벚꽃을 보는 모임’(벚꽃모임)은 매년 4월 도쿄 도심공원인 신주쿠교엔에서 정부 주최로 열리는 봄맞이 행사를 말한다.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것은 행사 전날 마련된 일종의 ‘전야제’다. 아베 전 총리의 지역구인 야마구치현에 사무소를 둔, 정치단체 ‘아베 신조 후원회’가 전야제를 개최해왔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도쿄 특급호텔에서 전야제가 열렸는데, 특히 2018년 4월 행사 때는 아베 전 총리의 지역구 주민들이 대거 참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회비는 1인당 5000엔(약 5만 3000원). 그러나 야당 측은 “특급호텔에서의 전야제 비용치곤 회비가 너무 적다”며 “실제 비용에서 회비 총액을 뺀 차액을 아베 측이 부담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만약 아베 측이 보충했다면 유권자에 대한 금품 제공, 즉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 아울러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에도 2015년 이후 전야제에 관한 기재가 없다는 점이 수상하다”는 지적이다.
아베 전 총리는 일련의 의혹과 관련해 “저녁 만찬을 포함한 모든 비용은 참가자 본인이 지불했다”며 “사무소의 수입, 지출이 일절 없어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에 기재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펼쳐온 바 있다. 야당 공세가 시작된 2019년 11월부터 아베 전 총리는 줄곧 이처럼 의혹을 강하게 부인해왔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반전됐다. 참가비용 일부를 아베 측이 부담했음을 나타내는 호텔 영수증과 명세서가 발견된 것.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도쿄지검 특수부는 지난 5년간 ‘아베 전 총리 측이 최소 800만 엔(약 8500만 원) 이상을 대납해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사실로 드러날 경우 아베 전 총리는 국회에서 여러 차례 거짓 해명을 한 셈이다.
무엇보다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에 관련 기재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화두로 떠올랐다. 아베신조 후원회 사무소 측이 호텔에 비용을 지불했다면 수지가 발생한 것이므로 정치자금규정법에 의한 기재 의무가 생긴다. 이를 어겼을 시 명백한 위법 행위가 된다.
올해 5월 일본 변호사와 법학자 660여 명은 아베 전 총리를 정치자금규정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도쿄지검에 고발한 상태다. 고발에 따라 검찰은 “지금까지 아베 전 총리의 비서 2명과 지역구 지지자 등 20명 이상을 소환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 아베 전 총리가 8월 사임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니겠느냐”는 추측도 나온다.
NHK는 “전야제 식비 부족분을 ‘아베 측이 대납했다’는 관계자의 증언도 나왔다”며 “검찰이 아베 전 총리를 상대로 사정청취(事情聴取)를 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서는 “아베 전 총리 본인을 입건하는 건 장애물이 많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행사 비용 부담금을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은 주체는 회계 책임자로, 아베 전 총리의 관여가 입증되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저널리스트 아오키 오사무는 “아베 전 총리가 형사 책임을 추궁당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도된 내용을 요약하면 아베가 국회에서 허위 보고를 반복했다는 건 분명하다. 정치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포털사이트 야후재팬에도 “아베 전 총리가 국회에 거짓 보고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라면 다른 의혹들에 대해서도 재차 진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라는 의견이 많은 공감을 샀다.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는 2019년 10월 13일자에서 ‘벚꽃모임 예산 3배 낭비’라는 제목으로 벚꽃모임 사유화 의혹을 특종 보도했다.
논란의 시작은 “2014년 이후 초대자 수와 지출금액이 급증했다”는 데서 비롯됐다. 초대 기준도 불투명해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 공산당을 중심으로 하는 야당 측과 심지어 여당 자민당 내에서도 비판이 흘러나왔다. 특히 2019년 4월 13일 개최된 벚꽃모임의 경우 당초 예산의 3배인 5200만 엔(약 5억 5000만 원)을 웃돈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었다.
참가자 또한 매년 증가해 2019년에는 약 1만 8000명을 기록했다. 여기엔 햐쿠타 나오키, 아리모토 가오리 등 극우 성향의 문화인들과 자민당 후원회원들이 다수 참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아베 총리가 국가행사를 사유화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가중됐다. “세금이 들어가는 행사를 아베 총리의 개인 후원회 친목행사로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벚꽃모임 스캔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건 일본 공산당 기관지인 ‘아카하타(붉은 깃발)’의 특종이 결정적이었다. 매체가 2019년 10월 13일 보도한 ‘벚꽃모임 사유화 의혹’ 기사는 올해 일본저널리스트 회의(JCJ)에서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어째서 다른 미디어가 아닌, 기관지가 특종을 터트렸을까. 아카하타 편집장 야마모토 도요히코는 이렇게 언급했다.
“그동안 정치권의 스캔들은 대부분은 밀실에서 일어났고, 소수 관련자들만 아는 의혹이었다. 하지만 벚꽃모임은 공식행사로 약 1만 8000명이 참가했다. 대형 언론사 기자들도 취재하는 ‘공공장소’였다. 우리는 기자클럽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아무도 벚꽃모임에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특종을 낸 계기는 태풍재해를 취재하던 기자가 우연히 본 SNS 게시물이었다. “태풍재해는 안중에도 없고 벚꽃모임에는 혈세 퍼주기”라고 쓰여 있었던 것. 조사를 해보니 ‘벚꽃모임이 자민당 의원 및 각료들이 지지기반을 강화하려는 데 이용하고 있다’는 의혹이 일어 취재에 돌입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벚꽃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나쁘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도 비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야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취재를 하면 할수록 점점 진실이 드러나게 됐다.
총리 자리에서는 내려왔지만, 여전히 벚꽃모임 스캔들은 아베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11월 24일 국회에서 아베는 기자단의 질문에 “고발로 수사가 진행되는 것으로 안다”면서 “사무소 차원에서 전면 협조하고 있다. 아직 수사 도중이라 현 단계에서 말씀드리는 것은 삼가고 싶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