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대교에서 개성공단 재개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선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 사진=김재환 기자
[일요신문] 남북평화의 상징이자 햇볕정책의 산물인 개성공단.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가 빗장을 걸어 잠근 이후 5년째 중단 상태다. 2017년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는 공단 폐쇄로 입은 손실이 1년간 2500억 원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재가동의 희망이 돌기도 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신년사에서 아무 조건 없이 개성공단 재개 용의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이 저물어가는 현재까지 개성공단의 재개는 불투명하다. 올해 발생한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도 개성공단 입주기업과 평화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타들어 가게 했다. 그러던 중 11월 10일 경기도 이재강 평화부지사가 승부수를 던졌다. 개성공단 재개를 촉구하며 임진각으로 집무실을 옮긴 것이다. 이 부지사는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고 평화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으로 개성공단 재개를 제안했다.
―집무실을 도라산 전망대로 이전하려 했다고 들었다.
“개성공단 재개는 국제사회와 북측, 그리고 남측 모두에 평화협력 의지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다. 경기도 평화부지사로서 개성공단 재개를 선언하는 일이 평화를 앞당기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11월 9일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이다. 남북의 장벽을 허물어뜨리는 첫걸음을 평화부지사실에서 해야겠다는 생각에 집무실 설치를 계획했다. 북한을 바라보는 국제사회는 비핵화 프레임에 갇혀있다. 비핵화 하면 개성공단도 되고 금강산 관광도 되고 남북평화가 된다는데 그 전제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평화가 먼저다. 평화 프레임을 장착하면 비핵화도 되고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도 해결된다.”
―도라산 전망대 설치가 무산된 이유는.
“1보병사단에서 도라산 전망대 집무실 설치 허가를 받아 이전을 준비하던 중 다시 연락을 받았다. 유엔군사령부의 승인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는 통보였다. 유엔사의 이 같은 해석은 자의적이고 관행적인 해석이다. 정전협정에 의하면 유엔사의 승인은 군사적 성질에 한정돼 있다. 군사적 목적이 아닌 비군사적 행정 사무용 집기(책상, 의자) 설치가 유엔사 승인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니 납득이 안 된다. 지난번 남북이 경의선과 경원선 철도 복원을 위한 조사를 추진할 때도 유엔사가 막았던 일이 있다. 유엔사의 월권이다.”
―유엔사 관할권 문제가 언론에서 주로 다뤄지다 보니 일각에서는 개성공단 재개보다 유엔사 관할권 문제 제기에 무게를 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본래 유엔사 문제는 계획에 없었다. 도라산 전망대로 집무실을 옮겨서 눈으로 개성공단을 매일 바라보면서 세계와 남과 북의 동포들에게 평화 의지를 알리고, 또 남북 정상들이 개성공단 재개 선언만이라도 해달라는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본의 아니게 유엔사가 막아서는 바람에 이 문제가 돌출했지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다.”
―개성공단 재개는 경제적 효과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주는 의미도 크다. 개성공단 재개의 의미는.
“개성공단은 2000년 6·15 남북공동성명이 낳은 옥동자다. 2004년에 문을 열어 2016년 문을 닫을 때까지 32억 달러(3조 8000억 원)에 달하는 누적 생산액을 기록했다. 또 개성공단은 남한 노동자 1000명과 북한 노동자 5만 5000명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이었다.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토지와 노동력이 결합해서 남북경제공동체를 실험하는 장소였다. 매일매일 통일이 이뤄지는 곳이었다. 하지만 2016년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한반도의 평화도 후퇴하게 됐다. 그래서 개성공단 재개는 남북평화의 시작을 알리는 첫 신호다. 개성공단 재개를 선언하는 그날까지 국민적 의지를 모아 평화의 길을 열어가려 한다.”
―이재명 지사가 DJ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며 9월 △남북 공동방역 및 의료협력 △임진강 수계관리 협력 △접경지 사업 남북 공동 조사·연구 △남북 공동 삼림복원 및 농촌종합개발 △대북 수해복구 등 5대 평화협력사업 제안을 내놨는데 준비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했던 ‘햇볕정책’과 ‘평화번영정책’은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남북공동선언’ 등 남북의 소중한 약속으로 이어졌다. 경기도가 계승할 수 있다면 당연히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올 8월 유엔 제재 면제 승인을 받은 온실 건설 지원 사업을 비롯해 개풍 양묘장 사업 등 경기도는 북한과 협력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 있다. 교류와 협력이 평화로 이어지도록 앞으로도 꾸준히 제안하고 대화해 나갈 것이다. 현재는 인도주의적 협력과 보건의료 협력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손을 내밀고 있다.”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
―경기도 평화부지사로 임명될 당시 한반도 평화통일 전략과 관련한 구상이 있었나, 또 임명 이후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사업은.
“경기도는 지정학적으로 북한과 인접해 있고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접경 지역이다. 전국 지자체의 부지사 중 ‘평화’가 붙은 곳은 경기도가 유일하다. 한반도의 평화, 남북관계의 진전이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고 나아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도 보장한다고 생각한다. 평화부지사로서 이재명 지사의 3대 도정 지표인 복지, 공정, 평화 중 평화를 담당하며 6·15 20주년 기념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비대면으로 진행한 렛츠 디엠지(Let’s DMZ) 행사는 26만 명이 함께하며 평화를 기원했다. 무엇보다 지난 6월 대북전단 살포 원천 차단을 통해 접경지 도민의 안전을 지킨 일이 기억에 남는다.”
―미국 대통령이 바뀌었다. 바이든 당선인과 미국 민주당의 집권으로 국제 정세의 변화가 예상되는데 이런 계기를 통해 유엔사의 불합리한 관여를 시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지.
“유엔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로 탄생한 미군의 통합 군사령부로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에 주둔하고 있다. 유엔사는 1978년 한미연합사에 지휘권을 넘겨준 이후 정전협정과 관련한 군사적 임무만 관할해야 하지만 2018년 정부가 추진한 북한 철도 시범 운항 등을 위한 방북과 2019년 보건 협력을 위해 타미플루를 보내는 일을 불허하며 협력을 무산시킨 일이 있다. 이런 행위는 월권이라고 판단한다. 얼마 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바이든 당선인 측과 접촉을 통해 우리 입장을 전달하는 등 정부에서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속적인 협의와 설득을 통해 주권 침해 부분은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땅인데, 심지어 군사행위가 아닌 행정을 하는데 유엔사가 이렇게 방해를 한다면 우리 손으로 평화를 만들어가기 쉽지 않다. 남과 북이 주도적으로 평화를 위한 길을 모색해야 한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